누워침뱉기의 대중화의 완성 – 문재인의 현충기념사
국가는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국가는 공간적으로 특정 영토를 기초로 한다. 그 국가에서 살다간, 사는, 미래에 살아갈 구성원들의 보다 나은 생존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청사진에 따라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하나의 도구적 존재이다.
구체적 현실에서 그 청사진을 구체화하는 수장이 곧 대통령이다.
헌법을 부정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은
이라고 했다.
과거의 대통령 중 독재자로 비명횡사한 박정희가 오로지 돈독이 올라 베트남에 파병하여 숱은 인명을 희생케 한 바 있다. (과거의) 우리는 베트남 참전용사들에 대해 항상 부끄러움을 감출 길 없다. 우리가 만든 헌법을 유린하고 베트남에 파병하여 우리들을 전쟁의 제물로 바치게 방치한 것이 부끄럽고, 그 부끄러움으로 인해 부채의식으로 고엽제 등 후유장애를 배상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상찬거리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고통에 대한 위로 및 부채의식인 것이며 아울러 강대국 미국에 앞잡이로 참전한 약자의 비애를 절감하고 부국자강의 다짐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월남전 참전은 본질적으로 애국일 수 없고 위정자의 반헌법적 망동으로 참전희생자들로부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온전한 기회를 빼앗은 것이며 아울러 그것을 방관한 (과거의)우리들의 책임으로 (오늘의) 우리들이 배상하는 일환의 성격인 것이지 애국을 위한 희생의 대가로서 예우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문재인은 또
이라고 했다.
이런 인식은 우리들이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차별이 깔려있다. 파독광부나 파독간호사들의 애국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가난한 (과거의) 우리들의 잘못으로 서럽게 머나먼 이국땅에서 기꺼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하게 만들었다는 과거의 우리들에 대한 반성이요, 각오여야 했다. 파독전사들은 결코 애국의 차원으로 미화시켜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제 필자는 예기치 않은 노력 봉사를 하느라 낮에 매스컴에 한눈 팔 여유가 없었는데 뉴스를 접하는 순간 부끄러움과 장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문 대통령은 1970년대 여공(女工)을 언급하면서
이라고도 했다.
이는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당한 희생을 애국으로 변질시키려는 불순한 시도로써, 전태일 열사의 정의로운 노동운동, 그 불의 열정을 부정하는 망발인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과거의) 우리들의 누나의 희생을 매개로 탐욕을 채우던 착취적 산업구조나 인간소외를 부채질하던 사악한 자본가들을 오히려 예찬하고 숭모하는 망발인 것이다. 점입가경이다.
이러한 발언은 세월호 방명록에 문재인이 쓴
와 같은 맥락이다. 한 마디로 문재인은 대단히 기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뿌리의 DJ와 노무현을 부정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라고 말했다. 당시 한나라당과 베트남참전전우회 등에서는 이를 '망언'이라고 반발했다. DJ의 이 말은 베트남 참전용사를 부정한 게 아니라 베트남 참전의 성격을 정확히 간파한 합헌법적 발언이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2004년 베트남을 방문해
고 했다.
그리하여 베트남 참전을 애국이라고 주장한 문재인은 입으로는 DJ와 노무현을 계승한다고 외치지만 DJ와 노무현 부정했으니 이제 노선까지 부정하고 상대진영에 부합하는 아첨을 자행함으로써, 그리고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함으로써 준비된 대통령이라며 현란하게 국민에게 속삭였던 열정은 오로지 대권을 향한 권력욕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우리 헌법전문에 “불의에 항거 ···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헌법 제5조 ①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운동권의 민주 수호 정신을 부정하다.
운동권의 민주화를 위한 정신은 다름아닌 우리의 집단의지인 헌법적 가치를 지켜내려는 투쟁이었다. 그것은 반제 항일독립투쟁의 역사와 반민주투쟁인 4.19, 반독재 투쟁인 5.18 반민주 투쟁인 6.10 항쟁등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 모두 우리의 집단의지인 헌법정신을 부정하지 않는 합헌법적 행동들이었다.
문재인은 국민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도전을 감행했다. 식장에 앉아있던 참석자, 그 중에 헌법을 수호하기로 선서한 국회의원들 –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 노동자를 위한다는 심상정 노회찬 의원, 보수적 가치를 위해 정치하는 보수인사들 – 과 그곳에 참석한 유가족들을 모욕한 것이다.
그것을 듣고도 무슨 의미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존재들이 필자는 부끄럽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란 그러한 약체민족으로서 강자들에게 유린당해 삶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런 때문에 남은 자들에게 슬픈 기억을 안겨 준, 그리하여 삶을 신산하게 만든 우리의 무능함에 대한 반성이어야 했다.
감사보다 참회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그나마 오늘이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 아니라 참회요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한 참회 위에 다시는 불행한 일들을 우리가 되풀이하지 않기로 하는 다짐의 장이 되어야 했다.
라이프니쯔 류의 변신론을 들여다 보도록 하자.
A : 세상에 사악한 현상들의 즐비하다. 왜 신은 사악함을 만들어 놓았을까?
B : 신은 전지전능 완벽해
A : 완벽한데도 악을 만들어? 실수 아냐?
B :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필연적으로 악을 시전하지!
A : 인간도 완전하게 만들지 왜?
B : 인간과 신은 같지 않아. 다르지.
악이 없다면 선이라는 것의 귀한 가치를 어떻게 알아챌 수 있겠어?
A : 그러니까 신은 차별의식을 가진 존재고 선을 부각시키기 위해 악을 등장시켰다구?
신은 완벽한 자신과 다른 불완전한 존재를 통해 자긍심을 확인하고
선의 가치확인을 위해 악을 만들어 불완전한 인간이 고통스럽도록 만들었다.
필자는 문재인의 현충일 기념사를 보고 라이프니쯔의 변신론을 떠올렸다. 오로지 스스로의 신앙을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저돌적인... 문재인의 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차기 문재인을 위한 반대진영을 위한 아첨인 것인가? 아니면 문재인의 변절인가?
살펴본 바와 같이 문재인의 반헌법적인 대국민 도전을 자행한 발언을 통해, 문재인의 천박한 철학과 전후 상충한 체계화되지 않은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좌충우돌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를 우리가 대통령으로 부리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기념사를 세상에 선 뵈게 방치한 청와대 참모들의 의식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지지자를 모욕한 것인가? 지지자의 지지를 반영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필자는 판단을 보류하겠다. 문자폭탄을 열호하는 태도며, 청문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며, 부정적인 권위(권위주의) 부정, 곧 탈권위를 서민이나 인간 코스프레하는 사진으로 이해하고 열광하는 수준들...을 보면
문재인의 현충일 기념사는 지지자들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의 지지자들이 바른 민주시민의 안목으로 제대로 사안을 본다면 아마 문재인을 절대로 지지하거나 지지자들 모욕하는 저러한 행태를 방관할 리 없다고 본다.
끝으로
DJ와 노무현을 부정하고 운동권을 부정하고 순국선열을 욕되게 하고 희생자를 애국자로 바꾸는 등 문재인의 신통력이 좌충우돌 현란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열화같은 문재인을 지지하는 자들의 누워 침뱉기는 식을 줄 모른다. 하늘의 우중충함이 내 맘같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더 모욕해야 본래의 우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한겨레 신문의 문재인의 현충일 기념사 기사를 읽었다. 한겨레신문이 맞는 지 눈을 부비며 다시 봐도 ..... 한겨레신문을 읽을 가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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