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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18일도 어김없이 찾아 왔건만, 못다 핀 넋들이 누워있는 묘역에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불협화음을 내며 울려퍼졌다.

80년 5월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목숨과 맞바꾸며 지키려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던가?

같은 인간에게 총부리를 겨눈데 대한 분노요, 같이 분노하는 인간에의 동질감이요, 외부와 격리돼 소외됐다는 두려움이요, 눈과 귀를 닫은 KBS나 MBC에 대한 배신감이요, 산업화 과정에서 지속되는 경제적 소외라는 차별에 대한 분노가 보태어진 것이다. 같은 인간이면서도 교감하지 못하는 다른 인간에 대한 분노가 더해진

곧 삶을 누리는 전제인 존엄한 생명이요, 억눌려서는 안되는 자유요, 까닭없는 차별과 소외를 온 몸으로 부정하는 평등이 그것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향기와 빛깔을 지녔던 꽃다운 넋들이 그 유일한 생명마저 활활 불사르며 구하고자 했던 것들은 결코 상징적인 제의나 세속적 감투가 아닌 평등한 인간다운 삶 – 호남태생이라는 것이 불이익으로 작동되지 않고 호남 거주가 불이익으로 작동되지 않는 – 을 추구한다.

그런데, 오늘 문재인은 37주년 5.18 공식 기념 제의에서 가장 선명하게 5.18을 왜곡되게 규정한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은 기념사에서 “···촛불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주권은 이미 제헌헌법부터 우리가 선언하고 추구해 온 가치이다. 3.1운동, 4.19의거, 그리고 6월항쟁 등은 결코 반복되어선 안될 소모적 사건들이다. 

이른바 문재인이 말하는 ‘위대한 촛불혁명’은 사실 우리가 천명한 법치주의를 유린한 데 대한 항의였다. 불가피하게 나서야만 했던 준법요구를 혁명이라 칭한다면, 법을 존중하며 살아내는 일상의 우리 삶이 모두 혁명인 것이고 급기야 진정한 혁명적 사건을 ‘혁명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될 것이다. 이러한 소모적인 사건들에 편승하여 권력을 추구하는 불나비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왜곡하고 훼손하게 됨을 경계해야 한다.


역사는 과거의 몸부림의 기억과 현재의 존재들이 뒤엉켜 만든다. 문 대통령의 역사의식과 그것을 칭송하는 미디어가 있고 맹목적 추종자가 있는 한, 민주주의나 5.18정신은 계속 왜곡되어 제대로 빛날 수 없을 것이다.

37돌을 맞은 5.18정신이 제대로 헌법 전문에 놓여지는 맨 마지막 사건이기를 간절하게 소원한다.


물리적 공간인 호남, 그리고 그 곳과 연고를 가진 호남인

이 둘이 결합되면 소위 호남 변방인이 된다.


한국에서 파행적 산업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60년대 이후 

규모의 경제로 인한 수출주도형 대미,대일 의존적 영남 퍼주기식 경부축 경제성장정책이 선택되어졌다.

   거기다 친일부역배 독재자 박정희의 꼼수로 인한 장기집권의 일환인 정략적 지역소외가 가세해


급기야 지역격차는 심화되고 고착되어 버렸다.


이리하여 영,호남간 대립은 일상화되었는데...  곧 망국적 지역주의라고들 한다.

'우리가 남이가,  기왕 얻은 거 그대로 지켜내야 한다'는 영남 지역주의와

'우리가 다르냐! 왜 정당한 몫을 되돌리지 않느냐?! '라는 호남 지역주의의 대립을


한국사회는 지역감정, 지역정서, 지역차별, 망국적 지역주의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영호남 대립을 단순한 감정이니 정서니  혹은 정치적 색깔로만 다루는 것은 엉터리 역사인식이다.


정치외, 경제, 사회, 문화, 언론, 지식과 얽힌 복합적 관계이며 일상적 이슈이다.


이러한 한국사회에서 변방인 호남인들은 평상시에도 불리한 사회간접자본들 때문에 반 세기 넘게 불이익을 강요당하며

호남 몫이 영남에 투입돼 파행적으로 고착된 탓에 희생을 강요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즉 호남에서의 삶, 호남인으로서의 태생 자체가 영남에서의 삶 보다 사회적 비용이 더 들고 불리하다는 것이다.


호남의 몰표는 이런 불공평함을 적극적으로 교정하라는 열망인데,  이 열망을 등지고 몰염치하게도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인간이 민주화가 뭔지 알 만한 노무현이 택한 노선이 지역주의 양비론이다.  운동권이 택한 노선이기도 하고 좌파들이 택한 노선이기도 하다.


지역주의 양비론은 호남 지역주의를 영남지역주의와 동급으로 다뤄 '지역주의는 나쁜 거잖아!  모두 닥치고 조용'이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결국 기득권을 가진 영남만 만족하는 지역주의 양비론은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영남편들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가?



'72년도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었는데 호남고속도로는 2001년도에 완공됐다고 하지만서두 그럼에도 고속도로 지선으로 경부고속도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왜소하고 초라하다.  거의 1세대 뒤쳐진 SOC의 수혜가 경제학상의 산업연관효과로 따지면 천문학적 차이로 귀결된다.


한일합방전후의 영호남의 총체적 생산력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면 현재는 거의 더블스코어로 격차가 생겼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남인이 호남인보다 부지런하고 머리좋고 수완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선민의식이나 유사인종주의적 편견에 불과하다.



따라서, 호남인으로서 문재인류나 노무현, 노빠들, 좌파에게 우호적이며 지지하는 입장이라면

일제강점기때 약자인 동포를 짓밟고 강자에게 빌붙은 친일부역배와 다를 바 없는 영남패권주의자를 지지하는 것과 다름 없다.


계급적 이해관계 때문에 좌파를 지지하는 것보다 지역적 소외가 훨씬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다.  계급적 이해야 개개인의 차원이지만 지역차별이라는 이해는 공간과 결합돼 임의로 끊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의 계급적 이해는 지역적 이해보다 선명하지도 않다.


즉, 호남인이 노무현류의 지역주의양비론자를  지지한다는 것은 자기 몫을 찾기는커녕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르는 어리석은 행태라는 얘기이다.  역사의식이나 호남인이라는 자아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자이다.  

오늘 이 시각에도 호남인이라는 자기정체성을 잃고 노빠짓꺼리를 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그 닭짓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의 영남패권주의가 만연하고 지속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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