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표논쟁을 너머 국민화합의 단초를 찾아서

미국으로부터의 편지

 

호남 결집표에 대한 해석에 있어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하시는 분, 그러나 95%의 몰표는 역시 받아들이는데 곤혹감을 떨칠 수 없다고 토로하시는 분들을 위해 씁니다.

이 번 대선의 몰표를 우려하는 분들이 자신의 출신지역(.호남과 무관하다는)을 내세우며 지역감정에 중립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곧 지역감정을 가지지 않은 사람임을 알아 달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출신배경 하나로써, 자기들의 주장이 지역감정을 담고 있지 않노라는 근거를 삼으려 합니다. 이런 주장은 그럴 듯 하게 보이지만 참으로 위험한 논리입니다.

출신배경과는 무관하게 얼마든지 지역감정에 절어 있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의에서의 자유를 표방하는 자체가 오해일 경우가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40여 년에 걸친 수구냉전세력의 집권에 의해 얼마나 길들여지고 뇌세척을 당해왔는지, 그 예를 보이려고 합니다.

 

영남을 지역적 근거로 한 그들은 지역주의를 자의적으로 조작 확대 유포하여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이용하는 매국적 전략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 결과 영남 출신자는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 호남출신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자리하는 구도가 강고해졌습니다. 강자의 주장은 여론을 주도하기 마련입니다. '2등 국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호소와 주장은 그것이 대단히 절박하고 말 그대로 정당성이 있을 때 마저도 반향 없이 늘 허공에 흩어지고 맙니다. 그 예를 이번 '몰표 논란'의 현장에서 똑똑히 보게 됩니다. 지역감정에서 자유롭다는 사람들마저도 얼마나 현 지역주의의 틀 속에서 자유스럽지 못한지도 극명히 보여줍니다.

(이 글은 '중립주의자'이신 M형의 주장을 내내 생각하며 쓰게 되었음을 밝힙니다. M형은 1225일 한겨레 토론방에 '중립적 시각'이란 아이디로 "지역감정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을 썼었지요)

저는 여기서 호남표에 대한 논란의 현상 자체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왜 호남표를 문제 삼는가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입니다. 왜 호남표에 대한 의구심이 많은 사람에게 드는 것인지가 나에겐 오히려 큰 의문입니다. 스스로 편견속에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중립임을 표방하며 공정함을 호소한 뒤, 굳이 호남표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 하는 지 사회심리가 그것이 매우 궁금합니다.

님들은 문제제기시 스스로 매우 불편부당한 정보라고 믿고 있는 근거들를 제시합니다. (대선 이후 수도 없이 쏟아지는 반론의 글들이 95% 몰표의 정당성과 당위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으므로 여기서 굳이 더 보태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님들이 굳이 치우친 정보만을 수집했을까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님이 지금까지 지역감정과 관련하여 절대적으로 편향된 정보에만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언론의 권력을 40여 년간 독식한, 영남을 지역적 근거로 한 세력들이 만들어 낸 왜곡된 정보들에 매우 길들여져 있다는 뜻입니다.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님()은 언제 호남의 입장에 서보신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 지를 자문자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님이 이제까지는 수구냉전 기득권층이 생산해낸 정보만 접해 왔을테니, '중립'을 견지하기 위해서라도 호남인들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정보도 접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남인의 목소리는 편견에 가득 차 있어서 들으나 마나 한 거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40년 영남 기득권층이 생산해낸 정보들만은 편견이 없노라고 자신하겠습니까. 만약 현재까지 생산된 정보들이 가치중립적인 것들이라고 우기신다면 님은 수구세력에 의해 이미 구제불능 상태로 세뇌 돼 있는 증거일 뿐입니다.

그럼 님이 어떤 면에서, 편견의 질곡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지를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문제제기의 시각입니다. 바로 님이 글을 쓴 동기 자체란 뜻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경악할 사실은 영남표의 수구성입니다. 그런데 네티즌의 대부분이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합니다.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아무도 놀랄 일이 아니라는 듯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반면, 놀랍게도 오히려 호남표를 가지고 왈가왈부합니다. 호남표에 문제 있다고 아우성입니다. 님의 문제제기도 이와 동일한 선상에 있습니다.

왜 영남 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합니까. 영남은 수구꼴통집단이니 아예 논의에서 제껴 놓자는 합의입니까. 아니면 영남에게 무슨 큰 죄를 졌습니까, 큰 부채를 졌습니까. 영남이 그렇게 무섭습니까. 아니면 영남은 그렇게 우리가 감싸고 돌아야만 할 지치고 천대받는 소외지역이라도 되는 겁니까. 무엇 때문에 침묵합니까. 너무 거대한 권력이라 두렵고 겁난다는 겁니까. 그렇지만 호남은 어차피 늘 눌려왔으니 좀 추궁해 본들 큰 일이야 벌어지겠나 하는 기회주의적 발상은 아닙니까.

호남의 표는 관제화된 표, 동원된 표가 아닙니다. 각각의 개인이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상식과 비상식 중 그저 상식을 지지했던 결과일 뿐입니다. 95% 라는 숫자가 아직도 영 께름칙하다고 느끼신다면 이 나라 정치사회 구조가 얼마나 참혹할 정도로 비틀린 지경이었는지를 먼저 살피셔야 할 겁니다. 95%는 대한민국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고 상징입니다. 더구나 지지받은 노 후보가 호남지역의 패권을 부르짖은 인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무랄 구석이 없습니다.

반면 이회창 지지 영남유권자 75% 중 절대다수가 영남패권주의를 선택했습니다. 20%, 30%, 40%도 아니고 전체 75% 중 절대다수가 영남 패권주의의 기치에 떼로 몰려든 겁니다. 호남표를 분석해 보십시오. 거기 호남패권주의의 흔적이 있습니까. 5%라도 있습니까. 어떤 호남 유권자가 부산출신 후보를 지지하면서 호남 정권 재창출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꿨겠습니까.(영남표가 갖는 지역패권주의의 표심을 읽는 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그것이 유권자의 몇 %인지를 따지자는 유치한 얘기가 아닙니다. )

대한한국의 수준이 아직 이 정도입니다. 이만큼이나 한국은 정의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불공평이 지배하는데도 님과 같은 사람은 나서서 중립임을 자랑스레 외칩니다. 영남표에 대한 가감없는 이해를 위해 며칠 밤인가를 꼬박 지새우고 난 뒤 호남표에 대해 얘기해야 합니다. 도무지 봉건주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지역패권주의가 75%의 수치 속에 극명하게 드러났는데도 그 무지막지한 집단주의는 논의에서 면제를 받고 도리어, 상대지역 출신이지만 노 후보의 탁월한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상식'을 택했던 호남인은 트집잡히고 추궁당하는 이 현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세상입니다. 이게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침묵하는 여러분 모두가 바로 공범입니다. 영남표에 대해 문제제기 하지 않은 여러분이, 비상식이 버젓이 상식 행세를 하고 있는 이 나라를 만들고 있는 협력자입니다.

 

호남인은 자기방어를 하기에 급급하다 못해 이제 지쳐 있습니다. 왜 그들이 떳떳한 일, 자랑스런 일을 했으면서도 수세의 입장이 되어 자기변호에 내몰려야 합니까. 경제적인 차별보다 몇 배나 더 깊고 질긴 상처는 사회적 차별에서 비롯됩니다. 70년대 초 산업화과정과 더불어 본격화된 박정희정권의 지역감정 조작 범죄는 호남인들을 간사하고 음험하고 의리 없고 뒤통수치고 천하고 교활하고··· 등등의, 부정적 인간상의 표본인양 이미지조작을 자행해 왔습니다.

그 결과 영남인 뿐만 아니라 호남인을 제외한 전 국민은 호남인들을 멸시의 눈으로 흘기고 냉소하며 배타적 소외와 천시를 일삼는데 동조해 왔습니다. 이런 행태가 무려 한 세대를 훨씬 너머 이어져 오고 있는 겁니다. 그 동안 비호남인 중 문제제기를 했던 지식인이 과연 몇이나 됩니까.

이제, 호남인들이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나마 방어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기막힌 심정에 울고 있는 것, 공감하십니까.

호남인들은 범수구세력을 포함한 영남의 지역패권주의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왕따 당하지 않을까 늘 두려운 겁니다. 쪽수에서 형편없이 밀리니, 모종의 구실로 비틀려 왕따를 당하고 말 지 겁나기 때문입니다. 호남인이 정당한 어떤 연유로 인해 왕따라도 당한다면 차라리 정의의 도가 살아있음을 보며 감사라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음모에 의해 영문도 모르고 차별당하고 멸시받아온 호남인들은 바르게 행동하고도 칭찬은커녕 세상모르고 시건방졌다는 괘씸죄를 상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게 어디 살 세상입니까. 이게 어디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 줄 세상입니까.

우리는 모두 호남인에게 빚진 사람들입니다. 호남인이 아니었으면, 이 땅에 사는 우리 대부분은 아직도 군사독재의 질곡에서 신음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엄연한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들 덕에 이만큼의 민주화가 되었고 더구나 그들의 상식적인 투표행위란 공헌에 힘입어 우리 노 당선자가 탄생한 것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차별과 소외의 어두운 그늘에서 무려 40년 넘게 가슴을 졸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던 우리 형제인 호남인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이 땅의 민주화를 향한 험난한 노정에서 뿌린 그들의 피의 희생에 커다란 부채감을 품어야 합니다. 이들의 한을 풀어주지 않고서는 한국인의 한이 풀리지 않습니다. 이들의 응어리를 풀지 않고서는 이 응어리가 끝내 우리 각자의 족쇄가 되어 국민화합을 저해할 것입니다. 호남인의 소외를 슬그머니 모른 척 하고 사회통합을 운위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것은 위선이요 속임수입니다. 그 화합은 말뿐인 통합이고 어거지입니다. 그것은 호남인의 가슴을 아리도록 멍울지게 할 뿐입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어느 유명 논객은 그러합니다. 아주 당당하며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전라도 깽깽이들, 그만 징징거리고 아예 전라민국으로 하나 떼서 독립이라도 하라고요. 국민 화합이 이 나라가 당면한 최고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마당에 그런 막말을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부당하게 차별받아 왔던 호남인들을 위무하는 것은, 국가의 현안 어쩌고 하기도 전에, 저 인간의 양심을 지키는 자의 따뜻한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떨림이요, 영혼의 맑은 목소리입니다.

하물며 희망을 싹틔울 새 정권의 여명을 맞아서까지 호남인을 몰아세우는 잔인성은 그만, 동작 그만! 으로 끝내세요.

중립을 주장하신 님 이하 여러분은 지금이라도 영남표에 대해 문제제기 하시기 바랍니다. 휘어진 것은 바로 펴야 합니다. 그들이 다수여서, 이 사회에서 힘이 있으므로, 아니면 긁어 부스럼이므로 영남표에 대해선 눈 질끈 감자라고 하는 멘탈리티를 끝내 견지하는 이상 이 땅은 계속해서 전근대주의의 진구렁에 갇혀 헤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영남인들이 스스로 하면 더욱 좋을 것이요, 우선은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영남인을 도매금으로 매도하자는 게 천만에 아닙니다. 영남인을 양심불량 집단으로 몰아넣고 나는 빠져나와 카타르시스나 즐기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목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지역감정에 대해 치열하게 자성하는 기회를 갖자라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호남과 비호남이란 대립구도 속에서 '상대'의 입장을 비판하는 것만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을 비판해보자는 겁니다. 이 일은 당연 영남인이 주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호남인이 함께 나서야 합니다. "내가 해봤자 '라도'애들은 안 할 텐데 뭐," 라며 책임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몸 안에 암세균처럼 스멀거리는 지역편견을 청정하게 세탁해내는 일이, 개인이 마음 한번 바꿔먹겠다는 결심으로 가능해질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이 병은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전 사회 구성원들 뇌촉수 곳곳까지 깊숙히 침투한 전염병입니다. 따라서 나 하나만 득도하여 깨어나고 병을 치유 받는 게 아닙니다. 주위의 전염병 환자의 몸에서도 동시에 병원균을 박멸해야만, 나 또한 병의 재발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우리가 '공론의 장'에서 토론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 질병은 수치스러운 병이므로 쉬쉬하다가 그저 나 홀로 아스피린 먹고 치유되는, 그런 병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대명의 햇살 아래 거침없이 펴놓고 공개방송으로 토론하여 균들의 행방을 추적하고 각 균에 최적의 치유제를 개발하여 우리가 동시에 복용하는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번도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이 지난한 수고를 건너 뛰어 국민간 화합을 꿈꾸는 것은 허황하기 짝이 없습니다. 국민화합이 어디 대~한 민국 한 달 외쳤다고 내게 달려와 주었습니까. 월드컵 함성 속에서 국민화합에의 열망만은 확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공개토론을 통한 자성입니다.

님들. 지식인, 그리고 개혁의 논객들이여, 입을 열어 말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결코 쉬쉬하지 말고 공론의 장에서 토론을 시작합니다.

오하이오 작은도시 실베니아에서

이경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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