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과 호남 그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영남의 공세적 '우월의식'과 비영남의 대응방식
1. 영남인의 무의식 결정론
영남패권주의 사고 방식에 깊이 동화돼있는 일반 영남민중에 대비되는 호남민의 의식은 反영남패권주의적일 것이며 이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하겠다. 여기에서, 사회 전체의 영남패권지배 체계를 공고히 하는 하부 체제로서 역할 분담을 하는 현상이 지적되는데 그것은, 비영호남지역민의 사고 방식이 反영남패권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準·親영남패권이데올로기적 이라는 점이다.
먼저 영남인과 호남인의 의식의 얼개를 비교해보면 영남인의 그것은, 위에서 "사고 방식"이라 표현했듯이 무의식의 영역을 상당 부분 포함하는 사고 체계인 반면, 호남인의 그것은 무의식의 영역이 아닌 깨인 의식이라는 차이가 두드러져 보인다. 아울러, 비영호남인의 사고는 이 중간 개념으로서 '의식'에 경도된 혼합적 사고라고 칭할 수 있겠다. 이 무의식과 의식간의 차이가 이 영남패권주의이데올로기의 본질과 사회현상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대부분 영남인은 자신 안에 내재된 패권의식에 대한 자각이 약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각하기를 기피하는 무의식이다. 그들의 우월의식, 가해자적 위치, 수구성, 이기심,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혜택의 제1차 수혜자라는 현실, 등등에 대한 자각을 한사코 거부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 싶어한다라는 부분이 이들에겐 무의식의 영역으로 존재한다.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그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숨 쉬어 왔었기 때문에 스스로 냉정한 자의식을 갖는다는 게 용이한 일이 아닌 점을 인정하더라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환경을 자기 합리화의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무의식도 이들의 사고체계를 고착시키는데 일조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영남인들의 사고 방식은 그들이 독점적으로 향유하는 사회적으로 우호적인 조건을 항구화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인 전술로써 현실 사회에서 작용하고 만다. 왜냐하면, 그들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행위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해악을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그것을 죄책감을 일으키지 않는 영역에 머물게 함으로써 스스로 면책을 부여하고 있으며, 따라서 개인과 타자 영남인간에 유사한 사고방식을 서로간에 부추기고 강화하여 이미 의문 제기를 탈각하는 자연스런 관습으로 녹아들게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독특한 형식의 영남인만의 관습은 오직 그들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이 점유한 사회적 강자라는 위치로 말미암아 자신들에 의한, 자신들만을 위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여타 하위 지역민들이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무의식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영역만으로 그들의 사고 방식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은 매우 명료한 의식의 영역에서, 이미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작동하는 편파적인 룰이 자기 개인의 적극적인 지지에 의해서 지금까지 작동되어 온 것이 아니라는 편리한 자기 합리화 (즉, 비영호남인들을 포함한 전 사회의 자발적 합의인 것으로 주장) 심리 속에 그 불공정한 룰이 그만 폐기되고 마는 것을 절대 지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무의식을 가장한 생득적 이기심이 의식의 영역에서 작용하고 있다.
2. 호남인의 의식 결정론
이와 같은 영남인들의 사고 방식과는 달리 호남인들의 반패권주의적 성향은 매우 분명한 의식의 영역에 의존해 있다. 왜냐면 이들의 사고는 영남인들의 자기 정체성 규정에 따른 반응으로써 형성된 후발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영남인들의 사고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혹은 그것의 개연성에 따라서 부단히 의식적인 활동을 통한 정체성의 再규정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그들이 선택하는 생존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영남인의 사고방식과 정면으로 맞부딪칠 경우, 손해나는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호남인은 늘 강자의 의중을 의식의 영역에서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물며 비영호남인이라는 주변인들도 강자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매 한가지이니 이들에게 우호적 시선을 기대하기도 사실상 어려운 형편인 이상, 호남인들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안되는 이중 억압의 조건 속에 갇혀있다.
이처럼 호남인들은 영남인들에 대한 관계 공학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매우 의식적 결단으로 재구성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그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영남인들의 성향에 대한 소상한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영남인이 우월의식에 젖어있다는 사실을 잘 앎으로써 갖게 되는 호남인의 반응은 매우 복잡한 심리적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영남인으로서는 이러한 호남인들이 설정하는 자신들에 대한 위치 선정에 대해 전혀 신경쓸 일이 없다. 그들은 사회적 절대 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으므로···.)
예컨대, 호남인들로서는 영남인들의 행위 양태에 대해 놀람, 두려움, 미움, 증오, 비웃음, 현실인식, 무력감, 절망, 연민, 자기성찰,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기 위치 설정이라는 일련의 심리적 과정과 이성적 결단을 거칠 수 있다. 물론, 증오와 비웃음 등의 낮은 단계에서 그만 위치 설정을 함으로써 영남인들에 대한 적대적 자세를 최종의 정체성으로 갖고 마는 개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각 개인의 차원에 그칠 뿐, 집단적으로는 역시 평화적 공존이라는 공학적 위치 선정의 원리안에서 이성적인 사고 과정을 통한 정체성 정립을 결정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모두 의식의 층위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강조해둔다.
3. 호남인의 인식론적, 도덕적 우위와 그 이유
지난 번 글에서 요약한 영남인의 사고 방식의 단면들으로서 그들이 가진, 패권의 물적 토대가 와해될 가능성에 대한 공포, 선민의식의 와해에 대한 공포, 사회 질서 재편에의 적응력 결여에 대한 공포, 영남인들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에의 공포 등등에 대해 비영남인들은 깨어있는 인식을 가지고 가지고 있는 반면, 영남인들은 비영남인들이 가지는 자신에 대한 평가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속수무책으로 그 심리를 노출시키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호남인들이 영남인들의 심리를 읽지 않을 수 없는 사회 환경 조건에서 생성된 결과는 기대치 않게도, 영남인에 대한 인식 수준의 상대적 우세 점유이다. 이렇듯, 무의식의 영역을 포함하는 영남인의 사고 방식과는 달리, 순수 의식의 영역에서 이성적 사고 회로를 통과함으로써 호남인들이 갖게 되는 심리적 복합성, 사회적 정당성, 윤리적 우위는 의도치 않았으나 슬며시 스며들어온, 너무도 분명한 긍정적 부산물로 남는다. 이것은 호남인들이 태생적으로 도덕적 인자를 더 많이 가지고 태어났다는 억지 주장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가 도덕적 우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구조화된 사회적 조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4. 비호영남인의 상대적 자율성 확보 조건
그럼, 비영호남인들의 사고 패러다임은 어떤 패턴을 더욱 닮아 있을까? 이것은 언뜻 각 개인의 결단에 맡겨질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기 쉬우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사회적 조건에 수렴한다고 봐야 한다. 영남인에 대한 그들의 상대적 약자라는 위치로 인하여, 사회적 조건을 형성하는 결정권이 그들에게 없는 것은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영남과 호남의 관계 설정에서 결정적으로 파생되고 만 것이 아닌, 그들 지역인들의 능동적인 사회적 행위와 기존의 사회적 구조 간에 벌어진 타협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조건을 무의식으로 받아들이는 면과, 의식의 차원에서 타협적 관계 설정 과정을 거치는 양면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호남에 비해, 사회적 절대 강자인 영남에 의한 견제를 덜 받았고 그런 만큼 자신들의 독자적인 관계 설정의 여유가 더 풍부한 비영호남인들이 갖는 특성이다. 그러므로 비영호남인들의 사고 방식은 비교적 넓은 스팩트럼에 걸쳐 있다고 판단된다. 즉, 개인적으로 혹은 소규모 집단별로 영남패권의 우산 속에 들거나 아니면 그것을 거부하는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영남패권이데올로기에 편입되어 직접적으로 물적 정신적 혜택을 볼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적은 노력만으로도 영남패권의 해악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능동적인 위치 설정이 그만큼 용이한 조건 속에 있다. 비영호남인은 호남인의 위치와는 달리, 사회가 규정하는 강제력의 틀에서 자기 의지의 독자적 운용권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당연히 그들 각각이 속한 지역이 사회적 강자에 얼마만큼 깊이 종속돼 있느냐에 따라 또한 크게 영향받고 말 것이다.
예를 들어, 호남과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가까운 제주민들이 갖는 호남에 대한 적대감이 전국평균을 넘는다는 사실이나, 충청민에 비해 강원민이 호남에 대해 덜 우호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경기인들이 가지는 정체성 규정이 역시 '영남우호'이면서도 각 개인차가 타지역인에 비해 훨씬 크다는 사실 등이 그러한 사회적 조건의 결정력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제주와 강원이 정치 사회적으로 독립성이 그만큼 덜하고 동시에 사회의 주류(강자)인 영남권에 더 깊이 종속돼 있는 조건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런 결과라 하겠다.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각 지역별 주민이 영남패권이데올로기에 대해 반응하는 양태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그 스펙트럼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각 개인이나 소집단이 갖는, 정체성에 대한 자기 결정력도 상당 부분 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
영남패권주의를 분쇄하라!
인터넷 논객들은 '영남패권주의'라는 유령을 공론화해야
12월 19일 대선 이후 노무현정권의 수구로의 회귀를 목도하며, 터지는 분노와 때때로의 절망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신의 시대에서도, 작지만 또렷한 희망의 불씨가 오롯이 지펴오르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좀 거창하게 말해서 문화의 대변혁의 단초입니다. 사회의 거짓과 부정의 뿌리로서 버젓이 행세해온 군사파쇼문화의 또 다른 양식인 영남패권문화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까발리는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작게도 혹은 크게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문제 자체가 얼마만큼 거대하고 심대한 사안인가 아닌가의 인식도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겁니다.
그저 영남패권주의를 지금까지 개인의 출세와 영달의 도구로써 맘껏 향유해온 정치모리배 즉 한나라당 극우 보수주의자들, 호남의 지역맹주 역할을 자임하며 정치생명을 연장시키는 소위 민주당 정박후, 개혁당의 유시민과 김원웅, 청와대 참모들, 그리고 노무현 등을 현실적인 공격타겟으로 잡고 본다면, '문화의 대변혁' 운운 조차도 낭만적 수사가 돼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눈앞의 적들이 바로 위에 적시한 정치권이긴 하되 상식적인 가치, 즉 자유와 평등이 우세한 시민 사회의 도래를 꿈꾸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영남패권주의가 바로 자유와 평등이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짓밟는 봉건사회의 유물이라는, 거대한 악의 문화임을 상기하게 될 겁니다. 이럴 때 정치 지형의 변화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을 지배하는 문화의 변혁이 되리라는 걸 인정하게 되리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문제는 정치개혁이란 이슈로 시작을 하지만 결국은 문화개혁의 문제가 되고 말리라는 얘깁니다.
저는 영남패권주의의 극복을 위한 문제점으로 다음을 꼽습니다.
1. 영남인들은 물론이지만, 영남인들만이 결코 아닌 전/국/민은 40여 년의 영남지배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 거의 체질화된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2. 영남의 반민족, 반역사, 반민주적인 패권주의 문화와 행위에 대해 대부분의 호남인들을 제외한 전국민은 지금까지 그것을 일방적으로 감싸고 대신 변명해 왔으므로 모두 각자가 공범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 희생양인 호남인의 부당한 불이익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다.
3. 그 공범자됨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행위에 대하여 반성해야 한다.
4. 반성과 극복을 촉구하는 일환으로,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문제의 핵심은 이겁니다.
모든 /개/인/개/인/이 자성(自省)-자발적이건 강제적 환경조성이건-을 통하여 영남패권주의 사고를 깨부숴나가야 한다.
즉, 이것은 정치권을 깨부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각 개인의 사고를, 그래서 전 사회의 문화를 새로이 갈아엎는 근본적 문화개혁까지 이뤄내야 할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얘깁니다.
제가 여기 대자보와 동프라이즈(www.dongprise.com), 시대소리(www.sidaesori.com)에 쏟아지는 정치적 목표를 염두에 둔 논의들로 인해 매우 크게 고무돼 있습니다. 엄청난 논의의 진전입니다.
그러나 문화적 목표를 절대 놓쳐서는 안되리라는 저의 믿음 때문에, 향후 영남패권주의 논의의 방향에 대하여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1. 정치권의 영남패권주의와, 특히 지식인을 포함한 일반 시민 개인의 골수에 박힌 영남패권주의를 지나치게 분리하여 비판하지 않아야 한다.
당장은 전선이 선명하여 타격하기에는 신이 날 일이지만 정치권만을 크게 부각시킬수록 그 뒤의 공생관계에 있었던 개인은 자연 면책되어 버리고 결국은 그들의 머리 속에 든 차별주의(이제는 영남패권이 아닌 여러 형태로 진화하고 말 차별주의)라는 사고를 영영 치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만약 요즘 논의되는 '역영남포위론'이 성공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문화적 목표라는 마인드가 없는 채로 실현되고 말 때에는 그 환상적인 목표 달성에도 불구하고 이후 반목과 투쟁의 여지를 너무 크게 남길 수 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우리의 전술은 각 개인이 의식 무의식으로 갖고 있는 영남패권주의의 폐해, 반인륜성, 공격성, 정신분열성 등등 인문학적 의미를 고스란히 투영한 해악성을 정치적 논의와 함께 끊임없이 논해야 합니다. 이는 정치적 논의를 조금이라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아니고, 그 논의의 완성을 위하여 제언하는 것입니다.
2. 지식인들의 영남패권주의 논의 참여를 '강제'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것은 어찌보면 하나 마나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 시점에선 뚜렷한 전술이 없을 망정 이 주장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논제는 동프나 시대소리 안의 논의가 아직까지는 매우 제한적인 단계라는 현실을 인정하며 내는 말입니다.
교수나 학자들은 세상 눈치에 빤하면서도 '비겁자'가 되기 쉬운 조건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선명한 목소리를 내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비겁자'들이 선선히 공론의 장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치인 못지 않게 시류에 민감하기 마련인 지식인, 교수 학자 부류들은 어느 정도 대세가 보인다 싶으면 너도 나도 뒤질세라 커밍아웃할 겁니다.
이러한 자발적 참여를 '강제'케 하려면 역시 일반 대중의 공감대라는 여론을 먼저 형성해야 하는데 이것을 위해서 영남패권주의 폭로의 정의로움을 선전해나가야 합니다. 정치 공학적 차원에 지나치게 매몰된 투쟁 위주가 됐을 때는 그 역작용으로 일반인의 논의 참여를 차단하는 결과를 빚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론의 환기와 그 광범한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는 우리 주장의 정의로움이라는 인문사회학적 가치를 더욱 강조하는 게 효과적 전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줄기찬 선전활동으로 공감대가 형성될 때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지식인들을 끌어들여 좀 더 효율적인 선전 운동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지식인의 참여를 강제하기 위한 조건 형성으로서, 우리는 이 논의의 정의로움과 도덕성을 중점적으로 알려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지나치게 '정치'지향적으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3. 영남 지식인과 영남 일반인에게 지금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의 짐을 지워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 되게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영남 출신 지식인의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대담한 비판을 몹시도 경이롭게 평가해왔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이 대선전 시민들의 희생적이기까지 한 절대지지를 누린 환경조건에는 그가 영남출신이라는 단 하나의 사실이 엄청난 프리미엄으로 작용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영남인이 '영남에 비판적이다'라는 것과, 서울인이 '서울에 비판적이다'는 것과, 호남인이 '호남에 비판적이다'는 것들간의 가치부여 차이는 아주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노무현은 그 전도된 혜택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유시민, 노혜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영남패권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했을 때 그들은 그 한 번으로 정의의 화신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에 와서 이들이 구제불능급 영남패권주의자임이 입증되고 말았습니다(이 말에 이의를 달고 싶은 사람은 저의 이전 글을 읽어보시거나 딴 자료들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반영남패권주의라는 인증을 받으려 한다면 한층 더 철저하고 엄격한 일반의 검증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불공평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습니다만 그것도 이들이 짊어져야할 책임의 일부입니다. 영남패권주의로 인해 부당하게 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 말에는 당연히 정치인 추미애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일반 영남 시민들도 포함됩니다.
4. 마지막으로, 인터넷 매체와 정치담론사이트들이 영남패권주의 비판의 공동메카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은 당파주의적 배타성으로 해야한다가 절대 아닙니다. 이들 싸이트보다 더욱 효과적인 토론장이 만들어질 때도 배타적으로 여기를 고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영남패권주의 비판의 논의를 연중 365일, 주7일, 끊임없이 지속함으로써 이들 세 싸이트가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그 역할을 선도적으로 해나가도록 늘 각오를 다지자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빼야할 논제도 혹 있을지 모르겠고 더구나 보완해야 할 논제는 각자의 머리 속에 쌓여있을 정도이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영남패권주의 타도에 천착하는 여러 논객들의 의견과는 상충하는 점도 더러 있으리라고 봅니다.
꾸준히 이 논의에 참여하실 것을 기대하고 또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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