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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패권주의-활강

홍세화의 지역주의 인식을 비판한다

시민25 2016. 3. 17. 16:47

진보정당과 영남패권주의

부제: 홍세화의지역주의인식을비판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중 한 분인 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이하 경칭 생략)이 며칠 전 쓴 "진보 정당 콤플렉스"라는 글을 일부 발췌하여 살펴본 뒤 그와 한국의 일반 진보/좌파가 갖는 지역주의에 대한 시각을 비판하고자 한다. 내가 평가하는 한 홍세화의 논리와 주장은 진보좌파의 전범(典範)이라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글을 빌리긴 하였으나 그것을 자연인 홍세화만이 아닌 <진보/좌파 일반>의 인식이라 놓고 비판하고자 한다.

(인용 시작) "‘보수일색인 정치판에서 정책과 이념 상의 차이가 없으므로 차별성은 오직 지역에서만 나온다. 이 땅의 정치가 지역주의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렇게 쉽고 간단한 것인데, 지역주의 극복의 당위성을 거듭 주장하면서 진보 정당을 외면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정책과 이념의 경쟁이 지역주의 극복의 최선책임에도 진보 정당 육성을 애써 피하면서 지역주의 극복 방안들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실로 놀라울 지경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진보 정당에는 거리를 두다가도 개혁에는 선뜻 동참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진보 정당 콤플렉스 때문인가..."

"...진보 정당 콤플렉스는 레드 콤플렉스와 진흙탕으로 묘사되는 정치판에 몸담지 않고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타성이 만나서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그것이 낳은 기계적 중립성이나 정치에 대한 총비론적 시각은 또 하나의 탈정치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사회 변화와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은 진보 정당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금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입은 그 흐름을 가속시킬 것이다." (인용 끝)

여기서 그는 한국의 지역주의를 '지역이기주의'와 같은 선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인다. 그의 이해대로라면 그의 주장은 곧, '정책과 이념상의 차이가 없으므로 이 땅의 정치는 지역(이기)주의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라는 <인과 관계>의 진술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당간에 정책과 이념 상의 차이없음이 지역이기주의를 불러들인 선행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역주의의 본질은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 어느 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일방적 패권의 조건과 그것에 의해 억압받는 세력(집단)의 존재에 있다. , 영남패권주의가 그 본질이다.

한국의 지역패권주의는 군사파쇼정권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정치적 환경으로서, 정당간 정책과 이념의 차이 없음(혹은 차이 자체)을 배태하고 생성시킨 <선행조건>이 되는 것이다. 홍세화는 이 양자('이념상 차이''지역주의')간의 선행조건을 정확히 거꾸로 규정하고 있다. '정당간의 이념 상 차이없음'이 지역이기주의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지역패권주의라는 정치환경이 '이념 상 차이없음(혹은 이념 상의 차이)'을 결과적으로 야기시킨 조건이 된다.

홍세화는, 진보정당의 진출을 방해했던 것이 지역주의가 아닌 레드컴플렉스라고 진단하면서, 도대체 무슨 논리로 진보정당의 진출이 지역주의를 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가? 그의 비논리와 비약을 "보면 실로 놀라울 지경이다." 진보정당이 지역주의를 몰아내는 도깨비방망이는 아닐텐데 말이다. 그는 정치판에 아직도 지역주의가 횡행하는 이유가 정당간 정책이념의 무차별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보정당이 진출하여 정책이념의 차이만 정치판에 도입시키면 지역주의는 슬며시 자리를 뜰 것 처럼 말한다.

그의 비논리를 들여다 보자. 정당간의 정책이념 차이가 아무 문제가 안될 정도로 지역주의가 그 위에서 <결정력>을 가지고 있다면, 지역주의 정치문화는 이미 '정책이념의 무차별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완전한 독립적인 변수가 되어있음을 인정함이 된다. 그러니 이 지역주의 문화에 새로운 정책과 이념을 도입한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정치판이 정책이념 중심으로 돌아갈 거라고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만약 지금까지 진보정당의 진출이 지역주의에 의해 결정적으로 방해받아 왔다면, 이제 진보정당의 국민적 육성에 의하여 지역주의가 어느 만큼 혁파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홍세화의 주장처럼 레드컴플렉스에 의해 진보정당의 진출이 지체되어 왔다고 수긍할 때, 진보정당의 육성으로 인해 <레드컴플레스가 퇴치될 기회>는 맞았을지언정 <지역주의>까지 무너질 인과성은 하등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진출과 지역주의 혁파는 상호간 아무 상관이 없는 이슈다. 그가 진보정당의 착근을 방해한 이유를 레드컴플레스라고 진단한 이상, 이제 진보정당의 육성을 위해 할 일은 그 레드컴플렉스를 거둬들이는 캠페인을 벌이는 일 밖에 없다. 뻔한 말이지만 물론 이 전략은 그리 유용할 리 없다.

그가 왜 이런 모순 논리를 주장하고 있는가? 그가 지역주의의 본질과 그것의 영향력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의 이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 정치판의 지역주의 문화는 이미 진보적 정책과 이념의 도입 정도로는 임팩트를 전혀 줄 수 없을 만큼, 홍세화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억센 위력을 가지고 정치행위 방식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세화를 비롯한 진보/좌파는 정작 영남패권의 존재 자체가, '극우와 보수의 공생'을 견인하는 환경을 제공함과 동시에 진보의 발아 자체를 극도로 억압한 조건이었다는 역사성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한 환경과 조건이, 바로 영남군사파쇼와 영남패권집단이 정책적으로 제도화, 구조화했던 그 산물이었음을 간과한다. 홍세화의 표피적인 진단처럼, 그저 정당간의 정책/이념 차이가 없다보니 자연적으로 정치판에 지역주의가 스며들고 말았던 것이라는 인식이다.

여기서 잠시, 진보주의자가 전형적으로 빠지기 쉬운 논리적 오류를 짚어보는 의미에서 위의 인용문 중 좀 더 사소한 점 하나를 지적한다. 그가 보수정당들 사이에 정책과 이념 상의 차이가 없었다고 단언하고 나서는데 이것은 전혀 진실에 닿아있지 않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보수>라는 멸시조의 딱지를 제 정당들 위에 한꺼번에 둘러씌우는 수법으로 정당 간 정책과 이념 상의 무차별성을 일방적으로 선언하려는 경향이 있다. 진보주의자 홍세화도 이와 똑같은(stereotypical)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그는 이 방식을 통하여 각각의 정당을 지지하는 수구냉전세력과 개혁민중세력 간의 첨예한 대립 구도의 의미마저 무로 돌려버리겠다는 논리를 천연덕스럽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걸어온 길에는 아무런 차이도 의미도 없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무지막지한 우김질이 된다. , 아직까지 수구냉전이데올로기의 포로로서 남아있는 영남대중과, 호남을 중심으로 한 민주평화개혁민중이 대립하며 그들 각각의 정당을 지지해올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인과성을 몽땅 무시하고 있다. 지지 정당 선택의 동기야 그저 그들의 지역이기주의의 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그 의미를 형편없이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이다. 대단히 자의적이며 몰역사적인 인식이다.

 

문서로서의 정강상에서야 정책과 이념 면에서 정당 간 별 차이가 없다고 해석한다면 일면 수긍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 각 정당이 국민을 상대로 정책입안과 입법행위를 펼쳤을 때는 '수구'정당과 '보수'정당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분명히 존재해왔던 것이다. 정책과 이념 면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지식인 홍세화의 터무니없는 역사인식이요, 사실왜곡임을 확실히 지적해둔다. 그러나 여기서 보수정당간 정책과 이념 상의 차이가 있느니 없느니 따지는 일에 더 이상의 지면을 할애할 수가 없다. 그의 한국 지역주의 문제에 대한 전면적이고도 도발적인 인식 오류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헤치지 않을 수 없는 소이에서다.

홍세화가 여기서 '지역', '지역주의'라고 말할 때, 그는 영남패권주의가 배태한 제 현상 즉, 그것이 한국 최현대사 40여년 긴 세월을 통하여 강고하게 구조화시킨 <정치 경제 사회적 권력의 독점, 불공정규칙과 권위주의로 대표되는 비틀린 가치체계, 호남민에 대한 강고한 사회문화적 차별주의> , 전 사회에 걸친 광범위하고도 근본적인 제문제임을 전격 무시하고 있다. 총체적인 한국 사회 병리 현상의 근본 연원인 <지역패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쳐두고, 그는 문제 영역으로서의 '지역'을 그저 '지역이기주의'나 지역갈등 정도, 혹은 지역간 '감정의 싸움'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겨우 "정치판"이라는 상대적으로 매우 협애한 분야에 국한된 병리현상인 것으로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러길래 그는 정치판의 패러다임 전이 하나로 악마적인 지역문제를 일거에 퇴화시키고 말 것처럼 선언적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지금 홍세화는 정치판의 지역주의라는게, 각 지역에 기생하는 정치권력이나 토호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철저히 봉사하는 도구가 되면서 서서히 고착되고 만 구도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각 지역세력들 간에 지역적 집단이기주의를 각각 좇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렇게 저급한 정치판이 형성되고 만 것이다라는 식의 현상파악이다.

그러나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역주의가 정치판을 지배하고 있는 원인이, 40여 년에 걸친 군사파쇼/수구냉전정권 기간을 통하여 영남패권집단이라는 주체가 일어나 자신의 기득권을 틀어쥐기 위해 지역간 불균형 구도를 인위적으로 제도화해 왔음에 기인한다라는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대립하는 두 주체(한나라당 플러스 열우당 vs. 민주당)가 지역이기주의를 놓고 대등하게 대결하고 있는 양상이 아니라, 패권세력이 약소세력에 대하여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고 있는 불평등 현실에 대한 외면이다.

그에게는 각각의 지역 세력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힘의 차이가 정치판에서 보이는 지역주의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 하등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 영남과 여타 지역이 똑같이 이기주의자라는 점에서 거기에 차별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타파의 대상인 점에서 완전히 평등하게 보인다는 거다. 하나는 패권적 지역주의자이고 하나는 생존을 위한 방어에 나선 형국이라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그 둘을 싸잡아서 똑같이 지역주의자 나쁜 놈이라고 매도한다면 거기엔 한 조각 정의가 들어설 틈이 없다. 이것은 영남패권세력이 아직도 철벽처럼 버티고 선 채 사회의 모든 개혁을 사사건건 거부하는 주체라는 현실 분석이 실종된 인식인 것이다.

 

이런 사정이니, 지역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권의 부조리 현상을 타개하기 위하여 정치패러다임을 '정책과 이념' 중심으로 판갈이를 하기만 하면, 지역이기주의에 기대는 그들 소수 정치권력이 퇴출되면서 자연히 한국의 정치는 이제 전혀 새로운 시대를 구가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라는 나이브한 주장을 그가 하고 있는 거다.

그는 '정책과 이념'이라는 패러다임으로의 정치권 판갈이 문제라는 게, 우리가 이제까지 그것의 필요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완강히 막아서는 영남패권세력의 존재 때문에 늘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그 엄연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철벽이 막아서고 있는데 그것을 부수거나 뚫지 않고 어떻게 그 너머에 있는 파라다이스에 닿겠다는 것인가? 한국의 대표적 진보지식인 홍세화의 지역주의 인식이 이토록 낭만적인 수준이라면 한국의 자칭 좌파일반의 생각은 과연 어디에 머무르고 있을지 대단히 궁금해진다.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분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유보다는 평등에 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이념으로서의 진보주의를 표방하려면 우선, 우리 사회의 이른바 사회적 마이너러티(소외층)가 생성된 <역사적 과정>을 왜곡없이 정면에서 바라보고 정직하게 진술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것은, 한국의 마이너러티가 산업화 과정을 통하여 희생타로서 발생한 노동자/농민이라는 소외계급만이 아니라, 이와 동시에 역대 군사독재정권들의 지역차별 정책에 의해 대규모로 발생시킨 수백만의 호남대중이라는 사실을 절대 부인하지 않는 양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소외층은 계급적 요소 하나로만 설명되지 못하고 계급적 요소와 지역적 요소와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정식으로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 사회가 진보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체하지 말고 곧바로 그 길을 트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진보를 꿈꾸는 사람들에겐 먼저, 이 나라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과연 무언가에 대한 성찰이 좀 더 치열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홍세화를 포함한 일반진보좌파들이 거의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진단하듯, 레드컴플렉스와 같은 보수적 사고가 진보의 의회진입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리만 계속 할텐가? 결코 그 까닭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나는 그것이 진보진영의 한국 지역주의에 대한 진단과 인식이 영남패권주의자들과 동일선상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보수/좌파를 표방한 자로서 영남패권주의를 똑바로 질타하는 지식인이 이 땅에 겨우 한 손 안에 꼽힐 정도라는 게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민주당 지지자 중엔 수많은 반영패자가 있는데 반하여 왜 노동당 지지자 중엔 그리도 귀한 이유가 과연 무언가! 계급론적 인식은 한국의 지역패권주의-, 약자를 억압하는 기제-를 그저 무로 돌려야 할 만큼 유일무이한 사회 인식체계여야만 하는가?

 

위에서 지적했듯이, 지역주의를 이념과 정책이 빠진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종속변수> 쯤으로 치부하는 한, 그래서 한국 사회에 수구와 극우가 여지껏 득세하며 신자유주의의 광포한 파고에 서민과 기층민이 온 몸을 내맡겨버릴 수 밖에 없게 된 현실이 근본적으로는 영남패권주의라는 <독립변수>에 의하여 생성되고 구조화된 사회체제 때문임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한, 그리고 강고한 영남패권과 분명하고 확실한 대립각을 세우는 용기가 없는 한, 우리는 그 정당을 가르켜 진정한 진보라 이름 붙여줄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사회 제 분야에서의 권력을 한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는 영남패권을 정면에서 제대로 질타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오히려 패권에 맞서고 있는 사회의 절대 약자인 호남민에게 호남지역주의자라는 딱지나 붙이고 있는 진영을 진보좌파라 불러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정녕 사이비 진보일 뿐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주의자들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호남주민이 민주노동당에 18%의 표를 던졌던 사실의 의미를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될 줄 안다. 호남은 진보라는 뿌리를 내리기 좋은 옥답이다. 왜냐하면 호남은 사회적 소수집단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진보 정당의 존재 의의를 사회 약자들간의 연대와 이들의 권익 확장에서 찾고자 한다면 진보좌파들은, 약자를 억누르며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원흉인 영남패권주의 혁파를 제일의 시급한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패권에 대항하는 세력은 당연히 진보를 지향하는 것이고 패권에 눈감는 세력은 사실상 진보를 훼방하는 반동집단에 다름 아니다.

이 나라의 진보좌파는 낭만주의적 지역주의 접근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라! 낭만적이기 보다는 차라리 기만적이라고 해야 할 그 인식으로부터 이제 그만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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