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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지역주의 (로널드 마이나르두스)

시민25 2016. 4. 15. 10:16

바람직한 지역주의 (로널드 마이나르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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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긍정적 지역주의, 부정적 지역주의 (코리아 타임즈, 2000412일자 번역본)

 

내가 한국에 처음 왔던 때는 정확히 4년 전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때에도 국회의원 선거 준비가 한창이었다. 당시에 내가 독일에서 한국을 방문했던 목적은 정치계 인사들을 접촉하고, 내가 소속한 재단의 한국 사무소 대표로 부임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 대해 내가 받은 인상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 정당의 인사가 (그 정당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투숙하고 있던 호텔로 찾아와 자신의 소속 정당 당사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회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그분은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한국 지도 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는 지도 앞에 서서 마치 학교 선생님처럼 흥분된 목소리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알아듣기 쉬운 평이한 표현보다는 약어를 더 많이 써서 설명을 하였다. 그는 먼저 PK에서 시작하여 TK로 넘어가며 설명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에서 중요한 것은 YS이지만 물론 DJ도 항상 허를 찌를 준비가 되어 있으며 JP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약어들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무장지대 이남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자신도 정치적인 토론을 할 때 이러한 약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사에 걸려 있는 지도 앞에서 들은 즉석 연설이 내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사람으로서 한국 국내 정치 현실에 대해 받은 최초의 수업이었다. 그 이후 한국 정치를 이해하려면 지도 또는 기본적인 지리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 정치에서 지리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한국 정치에서는 정당의 공약이나 사회학적 기준보다 지역이 훨씬 중요하다.

 

얼마 후 한 대학교수와 토론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당시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 씨의 끈질긴 정치 생명력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교수는 김대중씨가 전라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답했다. 우스개 소리로 그 학자는 김대중 씨가 이 지역에서 워낙 영향력이 강해 심지어 견공을 광주시장 후보로 지명해도 당선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 말을 잊을 수가 없었고, 다른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 종종 이 이야기를 인용한다.

 

한국의 지역주의를 처음 접한 이후 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다신 한번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정치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논쟁에서 두 가지 사실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모든 사람들이 지역주의를 비난하고 심지어 공공연히 욕을 하기까지 하는 듯하지만 -- 그리고 이점에 있어서는 정치인이나 정당도 예외가 아니다-- 결국 바뀐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계속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있고, 유권자들은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 나라가 분명하게 갈라져 서부는 여당이 지지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동부는 야당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 최근의 여론 조사 결과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두 번째 사실도 분명하며, 역설적이다. 한국은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동질적인 국가 중의 하나라고 얘기되고 있지만 일부 정치인들의 말을 듣다 보면 불안정한 토대 위에 민족 통합이 이뤄져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의 정치적 지역주의를 상대적인 관점에서 고찰하며, 동서 갈등은 결코 오랜 역사적 갈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한 한국 언론인의 말대로 주로 1961년부터 1979년까지 경상지역 출신 정치 지도자가 이끄는 일련의 정부들이 취한 차별적인 정책의 결과로서 수년간 누적된 전라 주민에 대한 정치적 소외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2년 반전에 마침내 남서 지역 출신이 대통령에 선출되었을 때 이 지역 출신 지인 상당수가 느낀 기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가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래되지 않아 새로운 야당이 신임 대통령이 지역 연고주의라는 악습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내 견해로는 이러한 주장의 옳고 그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회 조사 결과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서간의 지역적 반감은 실제로 최근 들어 상당 부분 감소하였으며, 이와 같은 상황이 전개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지역적인 산업 발전의 불균형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역주의, 저명한 시민운동 지도자의 말대로 "지역주의라는 망령"이 왜 다시 추악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일까? 최근 선거 운동에서 이러한 현상이 재현되고 있는 한 가지 이유는 한국 정당 제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해에 걸쳐 정당 소속의 상당수 정치인들은 상대편 정치인과 합리적인 정치 논쟁을 전개하는 것보다 지역 감정을 조장하거나 부추기는 것이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국의 정당들은 오랫동안 이념적인 정체성이 결핍되어 있었다. 따라서 특정 정당의 정치 공약에 이끌려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와 같이 분명한 정책 노선이 부재한 가운데 지역적인 측면이 크게 부각되게 된다. 기존 정당은 이러한 상황에 안주하고 있다. 지역의 지지야말로 선거에서의 성공과 정치적인 영향력을 보장하는 권력 기반이다. 따라서 자신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쳐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정당들이 지역감정 타파에 앞장서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선거법 개혁 논의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정치학자들과 다른 전문가들은 비례대표제 요소를 강화한 선거 제도의 도입을 통해 지역 갈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정당들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1년 이상이 걸렸는데, 그것은 이러한 변화가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선거 제도의 개혁 외에 정치적 지역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한 수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도적으로 중앙집권화를 완화하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모순으로 들릴 수 있을 지 모르나 지역주의와 맞서 싸우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지역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능한 한 많은 권력과 권한을 중앙에서 지방 정부로 이양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과 달리 지역주의가 중요한 장점, 하나의 미덕으로 간주되는 국가에서 온 사람이다. 독일 통일 이후 지역주의야 말로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이 되었다. 지역주의를 통해 서독에 의해 "흡수"된 구동독 지역이 자치를 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주의는 통일 후 민족 화합 의식 조성에 도움이 되었다. 독일보다 한국에서 통일 후 민족 화합 의식을 조성하는 것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하는데 예언자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권한 이양이라는 제도적인 수단을 통해 한반도 남쪽에서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것이 남과 북이 다시 한 번 하나가 되어 살아가게 될 그 날을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 작업이 될 것이다.

 

 

2. 바람직한 지역주의 (코리아 타임즈 2000412일자 번역본)

 

정치 용어에는 문제가 있다. 국제적인 그리고 다문화적인 배경에서 이뤄지는 정치적인 논의가 정치 용어 때문에 복잡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두 사람이 동일한 표현을 사용할 때 서로 다른 개념을 갖고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예로 들어 보자. 자유주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재단에 속한 나에게 있어서 자유주의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나는 자유주의를 떠올릴 때, 예를 들어, 자유에 대한 사랑, 자유로운 사고, 열린 마음, 그리고 관용과 같은 개념을 연상한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유주의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자유주의를 탐욕, 이기주의, 그리고 심지어 비도덕성 또는 성적인 타락과 연결짓는 사람들도 있다. 몇 년 전 한국에 오기 전까지 "지역주의"는 내게 전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정치학자로서 나는 대학에서 국제 관계에 있어서의 지역주의에 대해 배웠다. 국제 관계에 있어서 지역주의는 일군의 국가들이 힘을 합하여 국경을 초월한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했다. 국내 정치에서 "지역주의"는 지역 단위에서 이뤄지는 정치 체계 또는 운동을 지칭하였다. 정치 제도에 있어서 "지역주의"에 대응하는 개념은 "연방주의"였다. 한국에서 "지역주의"는 이와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지역주의를 특정 지역 출신 정치 지도자들이 다른 지역 출신 사람들을 착취하고 차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부도덕한 무기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기고문 (2000327일자 Liberal Times)에서 나는 지역주의에 대한 상이한 개념을 비교하고 논의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지역주의가 내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정치와 경제 발전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한국에서 "부정적인 지역주의"라고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상에 관한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가 팽배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독일의 지역주의에 관한 두 번째 기고문을 이곳에 싣는다. 그리고 나는 독일의 지역주의를 "바람직한 지역주의"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독일 연방 공화국은 민주사회주의 연방국가이다." 이는 국가의 토대가 되는 원칙을 정의하고 있는 조항이기 때문에 독일 헌법의 가장 중요한 조항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연방주의란 모든 국민의 이익을 위해 통일되게 처리되어야 할 모든 사항에 대해서는 연방 정부가 책임을 지고 나머지 모든 사항은 하위 정부에 일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하위 정부란 16개의 연방 주 (Laender)를 의미하며 연방 주정부는 다시 책임의 상당 부분을 최하위 단위 정부에 일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연방주의는 권력과 통제력의 공유를 의미한다. 정치권력의 공유와 견제는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요소이다. 따라서 견제와 균형의 제도가 제대로 발달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그리고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으면 있을수록 민주주의의 수준이 높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민주적인 정치 여건에서 권력 분립은 전통적인 세 개의 권력, , 입법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 간에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수평적 권력 분립과 아울러 수직적인 권력과 권한의 분립이 이뤄져야 한다. 중앙집중화된 정부의 지배를 견제하는데 권한과 권리를 하위 수준으로 이양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 이미 입증되어 있다.

 

독일에서 16개의 연방주는 실제로 상당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연방주들은 연방 주 의회를 선출하고, 다시 주의회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수상을 수반으로 하는 자치 정부를 선택한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치인들이 실질적인 정치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문화, 경찰, 언론, 지방 정부, 그리고 지역 조세 제도에 대해 책임을 진다. 이처럼 다양한 범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지역 자치 정부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독일의 용어를 사용하여 말하면, "Laender"는 국가적인 차원의 사항에 대해서도 상당한 결정권한을 갖고 있다. 한국과 달리 독일은 양원제 의회를 두고 있다. 독일 연방 의회는 미국 의회의 상원에 대응되는 기관으로서 지역 정부를 대표하는 기구이다. 의미 전달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독일 용어를 사용하자면, "Bundesrat"는 지역의 이해 관계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법안에 대해 동의를 해야 한다. 50 퍼센트를 훨씬 넘는 연방 법안은 지역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통과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메커니즘은 연방 정부에 의한 지역 권리의 침해 또는 특정 지역 권리의 침해를 효과적으로 에방해 왔다.

 

한국의 지인과 동료들과 가진 지역주의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나는 한국에서 지역주의는, 정치적인 차별이라는 용어보다 좀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정치적인 이익이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결국 이것은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돈과 관련되어 있다. 한국에서 지역주의의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역이 중앙정부로부터 경제 개발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소외되었다고 주장한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 헌법에서 모든 지역의 균형된 경제 개발을 당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지리적인 요인 그리고 다른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 특정 지역이 다른 지역 보다 발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는 실제적인 차원에서 독일의 보다 발전된 지역이 그렇지 못한 지역을 항상 지원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방 차원의 연대는 국가 전체적으로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인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것을 예방해 왔다. 이처럼 경제적 격차를 완화하려는 제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 것이 10년전에 이뤄진 통일이다. 구 서독이 구 동독을 도와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정치적인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헌법에서 규정한 당위이다! 수년간 수천억 마르크가 구 서독에서 구 동독으로 이전되었고 앞으로도 추가적으로 수천억 마르크가 지원될 것이다. 구 동독 지역은 밑 빠진 독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들어간 엄청난 규모의 자금 덕분에 동독의 경제 전망이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이러한 지원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수십 년간의 분단과 소외를 겪고 난 이후 국가를 재건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다시 한국 상황으로 돌아가자. 통일로 예상되는 문제점들과 비교할 때 현재 호남과 영남간의 격차는 분명 미미한 수준이다. 이러한 차이는 실로 기묘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겪게 될 도전을 생각한다면 바로 지금이야 말로 남쪽의 "부정적인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할 때라 할 수 있다. "바람직한 지역주의"의 특징적인 수단들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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