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이제는 넘자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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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민주화이후 선거 때면 의례 찾아오는 지역주의가 올해도 벌써부터 그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민운동의 낙천, 낙선운동에 대한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의 음모론을 시발로 부산 경남지역의 한나라당 공천탈락자들을 중심으로 한 신당구성을 통해 서서히 수위가 높아지던 정치권의 지역주의적 선거전략은 김종필 명예총재의 충격적인 지역주의 발언을 통해 전면화하고 만 것이다.
사실 지역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천년을 맞아 시민단체들이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하는 등 낡은 정치의 청산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드높은 상황에서 다시 지역주의적 선동이 전면적으로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특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 만해도 공동정권의 두 지도자중의 한 사람이었던 당사자가 김대중대통령이 71년 대선에 출마함으로서 지역주의가 생겨났다고 김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선 데에는 정말 할 말을 잃게 된다. 게다가 이 같은 주장은 71년 대선당시 3선개헌에 대한 비판여론으로 승리가 어렵게 되자 경상도대통령을 통해 지역주의를 선동한 것이 김 명예총재를 포함한 공화당이었다는 사실을 은폐한 역사에 대한 후안무치한 왜곡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나 사실 불행히도 이 같은 사태는 공동정권의 출범 속에 이미 내장되어 있었다. 즉 대선 당시 김 대통령진영에서는 지역주의에 대한 비판은 소시민적 도덕주의에 불과하며 오히려 지역주의를 극대화하는 호남과 충청의 지역주의연합에 의해 지역간 정권교체를 이끌어내야 하며 이 지역간 정권교체가 지역주의를 해결할 것이라는 잘못된 논리를 내세워 디제이피연합을 성사시킨 바 있다. 결국 이 논리에 따르면 김 명예총리의 지역주의적 선동은 정당한 저항적 지역주의의 발로이기 때문에 비판할 이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소외지역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는 지역주의의 현실은 패권적 지역주의이건 저항적 지역주의이건 지역주의는 결코 지역주의로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제 어떠한 지역주의도 단호히 심판하는 국민적 결의가 필요하다. 이 점에서 총선시민연대가 지역주의를 선동하는 정치인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리겠다고 나선 것은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92년 대선당시의 초원복집 사건처럼 지역주의의 비판과 쟁점화가 오히려 지역주의적 투표를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엉뚱한 사태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사실 진보대 보수와 같이 정당간에 차별성을 부여하고 지역주의를 대치할 수 있는 새로운 건설적인 정치적 경쟁구조가 생기지 않는 한 지역주의는 끈질기게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 같은 가능성은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유권자 개개인의 현명한 선택뿐이다.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향신문], 2000년 3월 8일자
[ 촌평 ]
지역주의를 정서나 감정적 차원으로 다루는 한편, 모든 유권자들이 지역맹주인 정상배들에 휘둘린다는 그릇된 전제위에 서 있다. 이는 지역주의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학자로서의 천박한 인식틀을 내보이는 것이다. 때문에 외국인 학자가 보는 식견보다 지역주의는 사소한 것으로 다뤄지고 있으며, 패권적, 저항적 지역주의를 모두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라는 점에서 지역주의 양비론의 아류에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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