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패권주의는 영남인의 일부인가 전체인가

구조적 패권주의는 개인과 집단 모두 포함, ‘공공의 적일뿐

1. <영남 일반>이 패권주의의 한 축인가, 아닌가

여기에서의 영남패권주의는 지역감정, 지역갈등, 지역차별의 사회적 불안 요소에 대한 인식상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거기에, 각 개인의 선택적 문제로서 치환되고 말거나(소위 "지역감정"), 해당 지역주체를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갈등 유발요인을 모호하게 윤색하여 사회적 문제로서의 심각성을 완전히 왜소화해 버리려는 시도이거나("지역갈등"), 부당한 관습이긴 하되 당사자 지역을 빼면 여타지역에겐 해당사항이 없으므로 상대적으로 사소하며 기껏 사회 일각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로서 치부되고 말거나("지역차별”)하는 진실 가리기가 은밀히 숨쉬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인식은 역시 그 어휘 자체가 가지는 의미 영역을 뛰어넘을 수 없으므로, 대다수 우리는 자연스레 영남패권주의 용어가 가지는 영남의 가해자적 위치 존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물론 거기에, 이제까지 군부독재 정권으로부터 면면히 내려온 사회의 소수 권력/특권층이 누리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두고 그 기반이 영남지역에 있다라는 사실을 모를 리는 없었으나, 그들 소수만이 아니라 그들의 패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며 공동 혜택의 수혜를 탐하는 '상대적' 기득권 집단이 또한 그 지역의 평범한 일반 시민들이라는 사실까지를 개념화해 낼 수는 결코 없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야 (‘97년 대선을 전후하여 동국대 황태연교수가 용어를 개념화하였으나 일반화되는데까지는또다시 많은 시일이 걸렸다) 비로소 영남이라는 지역과 지역민을 분명히 명시함으로써 문제의 핵심과 그 주체가 영남인 일반 (특권층, 중산층, 기층민 모두 포함)이라는 사실의 인식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 영남이란 지역을 명시하지 않았을 적엔 영남권력/특권층만이, 지역과 관련한 문제와 갈등의 주체라고 막연히 추론하고 말았었으나, 영남으로 제자리 매김하고 나서부터는 그 지역사회의 구성원인 일반 대중들도 문제의 한 축을 떠받들고 있는 주체라는 사실을 명쾌히 개념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의 패권주체가 겨우 영남을 지역적 연고를 가진 한 줌의 무리에 불과하다면 그 거대한 실체로서의 지역 이름을 굳이 그들에게 관형사로서 붙여준다는(:'영남' 패권주의) 것이 전혀 비상식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패권주체가 오직 극소수엘리트 권력 집단에 머무는 일이라면 '영남'이란 어휘는 이미 사장, 폐기되었어야만 했다. 만약 패권의 실체가 극소수 집단에 한정된다면, 그것은 영남패권 '집단'이라는 어휘로서 충분했을 것이며, 거기에 '주의'라 하는 이념의 한 형태를 갖다 붙이는 것이 패권주의와는 무관한 가치중립적 영남지역민 일반을 끌어들이는 억지가 되고, 결과적으로는 그들을 이유없이 무고하는 행위가 되고 말았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 용어가 정당한 지위를 예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얻어 누리고 있다는 현실 용인의 사실 자체로써, 패권의 주체는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영남인 거의 모두와 또 그들이 구축한 시스템에 부역하는 비영남인들까지를 포함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연역적으로 증명하게 되었다.

영남패권주의 주체의 한 축으로서 일반 영남인이 필히 포함된다는 위의 논리를 뒤집으려는 반박의 시도를 예로 들어 보자.

 

2. 논리적 증명 : 사회안에 있는 패권주의 존재성

 

영남패권주의의 사회적 환경을 일정 부분 인정하거나 아예 부정하거나 상관없이, "영남패권주의란 용어 자체가 아직 전 사회적으로 검증된 용어가 아닌 문제제기형에 머문다"라고 주장하면서, 그것도 "어디까지나 영남 출신의 소수 엘리트 권력만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필요충분하므로 거기에 영남 대중까지 절로 포함되어 있다라고 개념 규정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반박이다.

이 방식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이 사회의 정치 경치 행정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의 헤게모니를 영남 카르텔집단이 틀어 쥐고 있는 실증적 현실에 대하여 역사적 인과관계를 건너 뛰어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그러한 패권을 장악했다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 이런 시도의 경우,

1) 그들 영남인 집단의 패권 장악이 오직 그들의 불가사의하게 뛰어난 개인 능력에 의했을 뿐이라거나,

2) 전혀 의도치 않은 중에 사회 구조가 오직 영남인들에게만 유리한 조건을 어느 날 일시에 형성하고 말았다거나, 아니면

3) 비영남인이 영남인에 대한 일방적인 특혜 부여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결과였다는 등의 주장, 그리고 <동시에>

4) 영남인 일반과 그들의 적극적 써포트(support)에 의해 형성된 영남패권적 사회 구조라는 결정적(critical and unrivaled) 요인이 없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 상황을 무의 상태로 뒤집어 엎겠다는 이 가설은 실증하기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영남인 개개인이 타지역 출신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 뛰어날 리 없고, 영남인에게 훨씬 유리한 사회적 조건이 비영남인의 자발적 지지로 형성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 상황이 역사적 인과관계 속에서 전진적으로 진행, 형성, 구조화한 영남패권 구도를 사회 체제 속에서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이것은 우리 사회의 성격을 결정짓는 영남패권이데올로기의 존재를 명백히 증명하는 것이 된다.

이렇듯 영남패권주의와 그 이데올로기가 영남 대중을 제외한 채로 논해져야 한다는 주장은 가소로운 위선에 다름 아니다. 영남패권주의에서의 '영남'이 지시하는 것은 영남이라는 지역과 영남 대중, 그리고 '영남패권에 기생'하는 모든 세력과 개인이라는 주체를 모두 포섭하고 있다.

 

위와 같은 논리는 정당하며 적합하다. 영남인 일반을 뺀 채 극소수 영남 특권계층만으로는 도저히 영남패권주의를 설명할 수 없음을 사회의 현실 조건이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이다. (실증적 현실은 이미 수많은 자료가 뒷받침하고 있는 바이며, 그것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이 글의 촛점을 벗어나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영남 일반의 적극적 참여가 없으면 절대로 소수만의 영남패권 조차도 결성되거나, 또 다시 장기간 존속시킬 수 없었을 것임은 당연하다. 하물며 그것이 거대한 조직이라는 내면의 본 모습을 확인해 간다면, 더 이상 미시적 증명의 필요성은 없어지고 만다.

(, 패권주의의 주요 구성 요소로서 '영남 일반'을 규정한 것은 위에서 논증한 바와 같이 부인할 수 없는 테제이되, 각 계층과 각 개인이 감당해야 할 <패권에의 기여도>라는 눈금분류에 있어선 물론 <차등>이 따라야만 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연작의 후속 편에서 논할 것임)

 

3. 영남패권주의 실체 가리기의 동기 : 영남 일반과 개인 모두

 

매우 촘촘히 짜여진 사회적 난관의 조건을 겨우 겨우 뚫고 찾은 사회과학적 용어로서의 영남패권주의가 또 다시 더딘 걸음으로 일반에 다가오고 있는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저들 패권 담당자와 그 지지 영남민들이 영남이란 주체와 패권이란 실체를 기어이 몰각시키고자 얼마나 치밀하고 집요한 방해 공작을 지속해왔는지에 대한 이면의 동기가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돼 있으며, 그것들은 또한 하나같이 현실에서 관찰 가능하기도 한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 일련의 <동기>란 것은

1) (영남 일반에게 모두 해당되지만 특히 특권/지배 계층에게 '더욱' 적용되는데) 패권 상실정치 경제적 기득권 양보-에 대한 공포다. 더 들여다 보면,

2) (특히 일반 민중 개개인에게 '더욱' 해당된다) 전 국민에 대하여 상대적 우위의 사회문화적 지위를 점했던 선민우월의식의 와해에 대한 공포이자 동시에,

3) 열등 시민인 호남민과 동등한 선으로 내려와 실질적 지위 강등의 경험을 한다는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에의 공포,

4) 사회 질서의 재편 가능성과 영남지역민의 수구적인 문화 양태가 가지는 적응력 결여라는 자각에 따른 극심한 심리적 위축에 대한 공포,

5) 진실 규명과 바로 잡기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이 받게 될, 피의자에게 던져지는 사회적 시선(혹은 편견, 그리고 소위 '왕따')과 대우에 대한 공포,

6) (비영남인으로서의 영남패권주의자에게 해당되는데) 변절과 배신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말 것임에 대한 공포 등이다.

이와 같은 이유(동기)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언가? 영남인 개개인은 자신과 그들 지역민들이 쥐고 있는 패권의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선 들 수 있다. 누가 먼저 그렇다고 인정하기도 전에 그들 스스로가 그 사실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4. 논리적 증명 : 개인이 가진 패권주의 존재성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필요하다. 영남인들에게, "영남인들은 2등 국민이다, 영남인들은 부당하게 사회적으로 소외받아 왔다, 호남이나 강원, 충청, 제주 중 하나가 한국 사회의 주류를 점한다" 라고 말해주고 이들에 동의하는지를 물어볼 일이며, 만약 그렇다고 대답할 경우엔 그 상태로 얼마나 오래 견딜 의사가 있는지를 다시 질문할 일이다.

위의 질문에 ''라고 긍정할 영남인이 단 하나도 없음을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위 질문에 대해 영남인 중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부정을 한다는 사실은, 너무도 명백하게 그들이 사회의 주류임을 뼈 속 깊이 각인한 채 살아오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혹, "이 사실은 패권의식의 존재가 아니라 높은 자존심의 표현일 뿐이다"라고 누군가 말할지 모른다.

그런 사람은 다시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 "호남과 충청, 경기, 강원, 제주 등은 영남과 동등한 수준의 정치적, 경제적 수혜와 사회 문화적 지위를 누려왔는가?" 이 질문에는 중학생 정도의 지적 수준이라면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아니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서울은 이미 전국의 축소판일 뿐 하나의 지역으로서의 대표성이 없다). 이것으로써 영남인의 현실적인 물리적 토대에서의 상대적 우위와 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토대에서의 상대적 우위라는 인식은 자연 증명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물적 토대의 상대적 우위라는 지위를 <누릴>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더우기 그 현실 조건을 항구적으로 유지, 보전시키고자 한다면, 이러한 집단적 이념의 상태를 무엇이라 불러준단 말인가? 그것은 정확히 영남패권주의에 합치되고 말 뿐이다. , 자신의 존재로 인한 상대적 열등 집단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신의 우위의 조건을 항구화하겠다는 의식은 바로 패권주의란 말 외엔 부여해 줄 어휘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영남패권주의는 각 개인안에 내재된 면과 그리고 전 사회에 구조화된 두 가지 면을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품고 있음이다. 그 중의 한 면을 부인하는 것은 이미 오류이다. 패권주의란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독점하기를 꿈꾸는 이상이므로 전 사회 공동의 이익을 해치는 행태를 피할 수 없다. 이것은 현재 한국인의 의식과 한국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결정적 인자로써 작용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영남패권주의와 상반된 멘탈리티(mentality)와 물적 토대를 가진 집단의 내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영남인의 대부분이 수혜적 영남패권주의-급수의 차등은 필요하지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적/정신적 혜택에서 제외되는 비영남인의 대부분은 영남패권주의적 사고와 사회체제, 그리고 그 문화에 저항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관찰을 통하여 왜 영남패권주의의 논의가 이제야 본격화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 현상이 어떠한 유형의 사회 변동을 몰고 올 것인지가 좀 더 뚜렷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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