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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패권주의-활강

영남인조차 억압하는 영남패권주의를 깨야

시민25 2016. 3. 17. 16:40

영남인조차 억압하는 영남패권주의를 깨야

각 지역민의 집단심리구조, 비영호남인들이 움직여야

 

각 지역민의 집단 심리 구조 살피기

 

1. 호남 : 중층적

 

먼저 호남인들의 일반적 멘탈리티를 살펴보자. 이들의 심리 구조는 중층적이다. 영남인들처럼 단선적이지 않다. 이들은 정치적 차원의 사회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하나가 아닌, 서로 상충되는 가치로서의 두 개의 규범을 동시에 터득해야만 한다. 이 사회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자연히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되기 쉽다. , 사회 전체가-정확하게는 사회 전체가 아니라 사회의 극히 소수 지배층과 그 권력의 의지로서 대표되는 전체 사회인데-요구하는 질서로서의 규범을 익혀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믿는 가치가 자기가 속한 지역과 집단을 벗어난 '전체 사회'로부터는 경원되고 비하되는 가치라는 것을 깨달아 나가면서 혼돈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가 애착을 가져왔던 자신의 고향, 방언, 자랑스럽다 믿어왔던 역사와 문화, 심리적 일체감을 이뤘던 정치인, 정당, 사회단체, 문화단체 등이 전체 사회로부터는 모두 경멸과 기피의 대상이 되어있음을 깨달을 때 이들은 이 가치들을 버리느냐 아니면 타협하느냐의 곤혹스런 결단의 시간을 강요받는다. 이것을 버리려거든 당연히 평생을 주류사회와 고통스럽고 지리한 싸움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이 선택하고 마는 것은 결국 자기 분열적 가치 체계의 수립이다. ,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라는 명령을 담고 있는 전체 사회의 규율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아니면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도) 이미 자기 안에 수립돼 있는 가치를 소중히 간직하기를 선택하지만, 이 사실을 자기와 가장 밀착된 일차집단을 이루는 사람들 외에게는 가능한 한 비밀에 붙여두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후 사회와의 치열한 불화를 각오하든지, 아니면 아예 자신의 정체성향을 뜯어서 완전 개조시키든지, 그도 아니면 사회에 대해 자신을 위장하든지 해야만 하는 기막힌 현실을 두고 쩔쩔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회와 불화하지 않기 위해선, 자기 안에 자기만의 고유의 가치를 심어놓은 채 대외적으로는 그것과 대치되는(타협할 수 없는), 사회로부터 강요받은 주류의 가치를 자신의 대표가치로 내세우게 되는 분열을 체험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천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자연스런 자기 방어의 메커니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을 피할 수 없는 호남인 각 개인에겐 대단히 비인간적인 인격적 강간의 체험이며, 사상의 자유를 유린당하는 체험으로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굴욕의 시간인 것이다.

 

사회가, 다른 것을 일단 제쳐두고라도, 가장 일차원적으로 호남인의 지역 자체를 첨부터 따지고 문제 삼고 나오는 데서 호남인은 일찍 이 사회적 질서에 대해 환멸을 느껴버리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만큼 사회의 제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깨어질 기회를 풍족히 부여받은 셈이고, 따라서 사회와의 타협의 필요성을 깨달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각 개인의 사회의식은 부쩍 자라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있다.

 

 

2. 영남 : 단층적

 

반면, 영남인들의 멘탈리티는 단층적이다. 어느 누구도 그들 영남인이 가진 사상과 정서와 호불호에 대해 시비걸 사람이 없다. 왜냐면, 이들이 속한 집단의 정치 사회 경제적 유력자들이 이 사회 전체의 규율과 가치를 결정짓고 있으며 그들 권력집단은 자신들의 외형적 상전이자 실질적 볼모인 영남민중의 정서에 영합해야만 하는 공생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영남인이, 호남인이 맛봐야만 했던 혹은 맛봐야 하는, 인간적으로 비참해지는 경험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행운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체성 설정을 위한 갈등이나, 고민해야 할 자극, 동기부여의 경험이 대단히 희소할 수밖에 없는 그들 평균적 영남인의 사회의식은 사회의 전도된 가치체계의 틀 안에서 내내 헤어날 수가 없는 숙명을 부여 받는다.

 

게다가 정작 무서운 것은, 그들이 곡해된 가치체계--반인륜적인 패권, 특권, 차별, 배타, 이기, 불공정 등--에 안주하는 결과가 겨우 대외(타 지역인들에 대한) 경쟁력의 약화 정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들이 누리는 신성불가침의 질서가 호남인이나 일부 비영호남인으로부터 도전받을 때 나오는 영남인들의 응전의 방식은, 상대를 하수로 낮춰 멸시하는 자세로부터 시작하고 있으므로 비타협적이고 폐쇄적이면서도 동시에 공격적인 것이어서, 우선 스스로의 방어논리를 견고한 철벽으로 쌓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이 구성해놓은 기존 질서가 일부만이라도 균열이 일도록 만약 허용될 경우 이어지고 말 점증하는 반격의 수위와 그에 따른 방어논리의 궁벽함에 급작스레 직면하고 말 상황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그들로서는, 추호의 타협도 허용하려 하지 않을 뿐더러 도전하는 세력을 아예 사회의 공적으로 몰아가는 극단적 수구집단의 공세적 방식으로 줄달음질 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외부에 대한 벽을 높이 침과 더불어, 내부에 있는 잠재적 질서 파괴자 준동에 대해서는 그만큼 더욱 가혹한 벌을 준비해두고 그 싹을 미리 자르는, 파쇼적 내부 사회 환경과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유지토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파쇼적 단일가치 체제에서는 이단아(저항세력)가 나올 가능성이 미리 차단되고, 또 그 체제 유지를 위한 공포의 수위는 늘 호남인들이라는 희생양에게 사회적으로 무거운 댓가를 치루는 모습을 시범보임으로써 항구적 싸이클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 수구의 방식으로 벽을 높이 치다보면 그 곳 안에 안주함으로써 기성의 사회 질서를 공고히 하는데 동조해왔던 영남인들의 <사회적 인성>은 자신들이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가운데 갈수록 피폐해져 가고 스스로의 인격적이고 온전한 삶의 기회도 그만큼 지배 세력으로부터 박탈당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는 갈등의 골을 한층 더 깊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반인륜적인 사회적 행위가 왜곡된 <전체> 사회 질서를 항구화하는데 협력토록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 그들의 수구적 질서 유지 방식이 가져오는 폐해는, 그 중 깨인 소수의 영남인들로 하여금 호남인이 겪어 왔던 것과 유사한 성질의 인격적 분열을 맛보며 살도록 강요한다는데 있다. 그들 깨인 소수가, 한국이란 사회 전체에서 당연한 관습이거나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존중되고 있는 제 가치가 사실은 반인륜적인 패륜이라는 것을 역사의식을 통하여 깨달아 가면서, 자신 주위의 원초적 집단까지를 포함한 같은 영남인이라는 주류가 실제로는 자신을 억압하고 자유를 빼앗는 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경우에 실제 일어나는 사태이다. 그들은, 호남인들이 저항의 대상인 주류 사회를 향해 그랬던 것처럼, 결국은 자신들의 모태가 됨에도 불구하고 사회 주류에 대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가슴속에 짐짓 숨기거나 혹은 항상적으로 그들에 대항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결코 만만찮은 고해의 삶을 떠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영남패권이데올로기에 반대하기를 인격적으로 결단한 영남인들이 극소수(말 그대로 천연기념물 정도의 극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호남인 못지 않게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조건을 설명한다. 이렇듯, 영남의 극단적 수구 행태는 그 안에서 순응하며 협력, 안주하는 수구적 영남인들에게도 그 인간성을 갉아 무너뜨리는 패륜이 되며, 더구나 올바른 사회 질서를 세우기 위해 저항하는 그 안의 깨인 영남인들의 선택권을 극심하게 억압하는 악덕인 것이다.

 

(이들 극소수 반()영남이데올로기 영남인은 그들이 그 스탠스를 주장함으로써 얻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가 단연코 없는 경우일 때만 상식적인 신뢰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반영남패권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정치인들의 진정성은 대단히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는 신뢰를 당연히 유보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3. 비영호남인 : 혼합형-순응과 양심 사이

 

비영호남인들이 정체성 설정 과정에서 겪는 사회에 대한 절망감과 인간적 혐오의 경험은 호남인들에 비하여 훨씬 가벼울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멘탈리티의 중층적 형성의 개연성에서마저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들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질서에 대해 적어도 거의 성인이 될 때까지는 회의할 기회가 별로 없다 (호남인이라면 늦어도 고등학교 과정에서 다 겪는 것이 통례로 보인다). 어디까지나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깨어나기 시작할 때까지는 이들에게 작용하는 사회의 가치와 질서는 다 평온하고 온전해 보인다. 그러므로 선택권이 없는 채로 이들은 일단 사회 지배 질서에 협력하며 패권세력의 동조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기존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서 자신의 정체성에의 위치 선정이 일부 위선적이라는 갈등을 안고, 사회질서에의 순응일지, 양심에의 결단일지를 끊임없는 자문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개안(開眼)이 시작되고나서 부터는 인격적 결단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주류 지배 질서가 가하는 관습과 그가 속한 집단의 성격에 따라 사회적 압력이 더욱 극명하게 부담으로 인식되겠지만, 동시에 개인의 사회적 양심과 양식의 양에 따라 스스로 선택과 결단이 이뤄지는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꼭 영구적인 결단이 되지 못할 개연성도 아직 높다 하겠다. 이런 면에서, 비영호남인은 실로 향후 이 사회의 질서 재편 과정에서 키를 쥐고 있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사회적 인식과 인격적 양심의 높이에 따라서 기존의 비틀린 사회 질서에 대한 저항과 개혁의 의지가 제고되고 따라서 사회 변동에 협력하겠지만 이들이 결코 독립변수라고는 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비영호남인들은 호남인들의 결단과 선도적 역할에 영향받아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희원하는 의지는 호남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강할 것이므로 이러한 동기부여는 이들로부터 비영호남인에게 확산될 것이다. 그러나 영남패권이데올로기를 와해시킴으로서 얻는 혜택은 영남인를 포함한 이 사회의 모든 개개인에게 차별없이 골고루 미치고 말 일이다.

 

 

4. 요약

 

이상의 논의를 정리한다면,

 

영남패권이데올로기라는 사회의 질서와 가치체계 아래서 호남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함에 있어 자괴감을 일찌감치 경험하며 주류 사회가 강요하는 질서에 대외적으로는 순응하는 모양새를 갖추지만 내부적으로는 그것에 저항하는, 즉 중층적 심리 구조를 가진다. 그 저항이라는 결단의 과정에서 겪는 인격적 모욕의 경험이 깊은 상처로 남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체성 확립에 잊을 수 없는 교훈이 되어 강력한 저항력을 키우는 동력이 된다.

 

영남인은 기성 사회 질서에 순응, 협력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혜택을 보장받지만 대신 인격적 피폐를 댓가로 지불할 수밖에 없다.

 

비영호남인은 사회적 질서를 강요받는 면에서 호영남인보다 탈출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이 부여된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의 정체성 설정에 대한 인격적 결단은 결국 사회 전체의 변동을 견인할 결정적 변수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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