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패는 논쟁의 대상인가, 논의의 대상인가?

 

 

영패 해체니, 영패 혁파니, 영패 분쇄니, 영패 극복이니 하는 말이 그 사람의 취향과 기분대로 생각없이 쓰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기에도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의 반영패 접근법이 옅게나마 녹아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영패분쇄'는 가장 맹렬한 의지를 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냉철함이 전혀 없이 열혈주의자의 높은 목청만이 요란할 거란 느낌이 있다.

'영패극복', '분쇄'가 함의하고 있는 제3의 객체로서 그 대상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주체인 자신도 그 영패에 일부 편입돼 있음을 인지하고 스스로도 자성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대신, 반영패의 대오에 참여할 적극적인 의지를 아직 유보한 자세를 내비치고 있다.

'영패해체''분쇄'에서 보이는 만큼의 능동적 행동의지가 결여된 채, 그저 막연한 심정으로 그것이 없어지기만을 기원한다는, 다소 책임을 방기한 사람의 의식이란 느낌을 전하고 있다.

'영패혁파'는 그 중 가장 발전된 인식과 진정어린 의지를 담고 있는 표현이 아닌가 한다. 거기에는 영패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없어져야만 한다는 당위를 잘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노력과 힘을 동원함으로써 극복하겠다는 주체로서의 결연한 의지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어휘상의 이런 차이를 지금 내가 한가해서 구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잘못된 문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그 이유는 아래에서 논한다). 더구나 유희가 아닌 것이, 이 어휘들을 들여다 봄으로써 반영패의 해법에서 우리가 고려할 문제 범위가 좀 더 또렷이 드러나는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구분 과정을 통하여 객체(대상)와 주체라는 두 실체가 분류되고 역시 그 각각의 역할이 서로 다르리라는 점을 예시하게 된다. , 여기에서 우리가 문제 삼는 '객체', 막연한 <추상> 개념으로서 인식하는 '영남패권주의'가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영패는 이념이나 신조 등의 <개념>이 아니라 그것은 어느새 내 앞에 마주 선 어떤 인간, 혹은 집단이라는 실존임을 알게 된다.

좀 더 관찰하게 되면, 우리가 위의 '영패해체'라는 어휘에서 이해할 때의 영패란 어디까지나 <개념(이념·신조·체제)> 에 불과하였는데 그것을 어떤 극복 '의지'와 엮어 사용하고 보니 <개념>이 아니라 사실은 <집단>이라는 실존을 일컫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어휘를 정확하게 사용하자면, 영남패권주의혁파가 아니라 영남패권주의''혁파가 되어야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것도 아님이 밝혀지고 만다. 혁파의 대상으로서의 영패란 하나의

1)<가치체계>이면서, 그 이념을 추종하는

2)<집단>이라는 실존임과 동시에 어떤

3)<시스템>이라는 사회 구조 등,

적어도 三位(trinity)를 동시에 거느리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영패라는 <가치체계>의 근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일전 나는 그것을 권위주의와 불공정규칙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그야말로 아직 가설일 뿐이다. 더욱 연구되고 검증되어 광범위한 설득력을 얻어내야 할 과제다.

<시스템>은 어떤가? 정치권력, 경제권력, 사회문화권력들이 어떤 이념과 시대적 이해를 업고 영남패권을 작동시키는지 그 메커니즘이 분석된 적이 과연 있는가?

그럼 영패를 구성하는 <집단>은 무엇인가? 영남을 지역적 기반으로 하며 군사독재정권의 후신임을 자임하는 한나라당 집단(영남패권 쟁탈전에 새롭게 뛰어든 신영남패권 열우당 집단 포함)이라는 정치권력, 영남권력과의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특혜에 의해 지속적으로 부당한 부를 독점하는 재벌이라는 경제권력, 조중동 등의 수구 언론권력, 나라의 부와 사회적 지위, 명예를 거머쥠으로써 문화적 최종 성과물을 독점하고 국가적 아젠다를 주도하는 강남 최상류층의 사회문화권력, 이 정도만을 우리는 겨우 손에 꼽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영남패권의 정수로서 뽑아낼만한 정치, 언론, 경제적 권력 집단을 규정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바로 <사회문화적> 권력의 실체를 규명하는 단계에서부터 우리의 불명료한 인식은 혼돈을 겪고 만다. 그들이 정치·경제 권력 집단과 횡적으로 일부 겹쳐있으면서도 엄연히 구별되는 또 다른 권력을 형성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역적으로 강남이 아닌 곳에서 영패 시스템 작동에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 사회문화적 권력을 형성하는 대단히 유력한 집단(: 교수, 성직자, 작가, 예술가, , )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 외, 수구냉전적인 영남대중 -그 중에서도 사회경제적 상류층에 대한 중산층, 서민, 그리고 기층민간의 차등성 ; 비호영남 대중 -그 중에서도 호남에 대한 차별의식은 없으나 정치적 영남패권을 지지하는 집단, 경제적 기층민이면서 호남차별의식이 뿌리 깊은 집단 ; 호남대중- 호남차별에 적극 저항하면서도 영남패권체제에 기생하는 상류/중산층 집단 ; (마지막으로) 개방/폐쇄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 등이 미제로서 남아 있다.

이들 각 집단에 대하여 어느 것이 영패의 골수를 형성하는 집단인지, 그들을 일률적으로 영패집단이라 분류해야 하는지, 책임 부담에서는 얼만큼의 차등 구분이 필요한 건지-요컨대, 우리의 반영패 운동에 있어 그들 각 집단이 우리가 가격할 타격 대상의 순위상 어떤 서열에 매김되어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명료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들 대부분이 아마도 이러한 질문에 답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 내가 지금까지 긴 설명을 통하여 말하려는 것은 바로 다음의 논의를 위해서다. 우선 이러한 형편지경에 우리의 인식 수준이 머물러 있음을 알고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시스템이라면 <해체>될 것이요, <가치체계>라면 혁파될 것이며, 인간 <집단>이라면 설득되어야 할 것이다. 시스템과 가치체계를 설득으로써 해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단을 해체하거나 혁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상대하는)집단이란 어디까지나 <설득>의 대상으로 남을 뿐이다. 그들을 혁파, 해체하기 위해서 당신이 아무리 그의 인격을 뭉개버렸다고 해도 그는 돌아서면 다시금 더 강고한 영패주의자로 거듭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넷(net)상에서 마주치는 상대마다-그가 어느 집단에 속해있는 지도 모른 채, 그래서 그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전혀 가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그에게서 영패의 찌꺼기가 조금이라도 보일라 치면 마치 평생 원수를 면전에서 만난 것 마냥 흥분하기 일쑤이다. 냅다 욕지거리가 튀어나오곤 한다. 명백한 영패지지자한테만이 결코 아닌 것이다. 자기가 미리 정한 기준에 상대가 들어맞지 않으면 대번에 그는 골수 영패주의자로 낙인찍혀 버린다.

상대로부터 먼저 인격적 모욕을 당했을 경우 반사적으로 그러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물론 나무랄 일이 아니겠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 경우 반영패론자로서 저지르는 바보짓은 다음과 같다.

1. 영패를 없애는 일이 겨우 사람/집단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단견이다. 지금 논쟁하고 있는 그 사람만 설득시키면, 아니면 논리로 죽사발을 만들면, 곧 바로 영패를 이기는 것으로 착각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영패는 시스템과 가치체계와 집단이라는 삼위로 이루어져 있음을 잊고 있는 사람의 경박이다. 집단은 삼위 중 한 부분일 뿐이며 하물며 당신이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집단도 아닌 일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 인격 무시 모드의 선제 욕지거리-그것이 카타르시스를 준다며 읽고 환호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봉사할런지 몰라도-가 영패논의에서 절대 무익하고 심지어는 해악일 뿐이라고 내가 믿는 이유이다.)

2. 대립되는 두 개 사이트간 언/논쟁에서의 승패가 영패의 현실적 타파와 굴복을 결정짓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이다. 한 영패주의자가 주로 서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그와의 논쟁에서 이기면 서프라는 사이트 전체를 이기고 따라서 영패의 한 모서리를 부서뜨리기나 한 것으로 착각하는 일이다. 넷 상에서 그 사람의 소속이란 없다.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사이트에 소속되거나 아예 소속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 사이트 커뮤니티라는 것이 네티즌이 거기 일시 머물다 지나치고 마는 개방집단임을 간과한 채, 마치 그 사람이 전체 사이트를 대표하기라도 하는 양 목숨을 걸고 논쟁에 임하는 방식은 자신과 인터넷 커뮤니티 전체를 늘 황폐케 하는데 이바지하고 만다. 왜냐하면 그 설전은 틀림없이 욕지거리 범벅으로 어우러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영패를 주제로 시작한 논쟁은 이 점을 잊고 있을 때 백발백중 이전투구로 끝맺고 만다.

영패토론은 가능한 한 논쟁이 아닌 논의로 가야한다. 우리는 영패의 정체에 대하여 체계없이 겨우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다. 서로간 개념의 공유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논쟁이 이뤄질 수 없다. 지금은 논의하고 연구하는 단계라고 본다. 과연 우리의 영패논의가 그토록 초기 단계에 있는지는 위에서 예를 들어 설명한 바와 같다. 우리가 지금까지 영패가 가치체계, 시스템, 집단이라는 삼위로 이루어졌다는 것마저 깊이 고찰하지 못했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이런 단계일진대, 서로 자기 주장이 맞다고 입에 거품물며 댓거리 하는 건 아마도 부질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영패논의자는 영패에 대해 이미 다 안다고 하기 앞서 더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부단히 자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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