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카카오톡 [우리 포병대대장들만 4] /*포병여단 예하 2,3,7,11대대가 있는데 예천으로 출동한 대대는 포3,7,11대대
사고 직전일(2023.7.18) 카카오톡 대화록 일부 =====================================
06:59 포11대대장 "구조대장과 통화하니 도로정찰은 했다고 하면서 수변 아래 정찰을 원하는데 ... 어쩌지?"
07:00 포7대대장 "잠수복 상의까지오는거 있어야합니다"
07:01 포11대대장 "이거 뭐 아무대책없이 와서 답답하네"
07:01 포7대대장: "슈트라도 가지고 오면 그나마 조금 내려가서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07:02 포3대대장: "수변 정찰하려면 가슴장화와 로프 필요하며, 상급 지휘관과 지침이 상충되면 지침받고 조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07:03 포11대대장 : "각 여단장님과는 통화했고 도로정찰 위주이지만 각 제대별 판단 장화까지 깊이는 들어가는 노력은 필요할 듯" "내 할당 구역은 무슨 강처럼 물살이 쎄네"
07:10 대대장들에게 여단장지침 “현장에서 판단해서 위험한 구간은 도로 정찰하고 장화로 가능한 부분은 지원하라"
07:21 사단장지시사항 : "언론 접촉 시 유의/당부 사항"
07:25 포11대대장 : "유속 한번 봐라. 겁난다. 내 쪽은 노답임."" ‘작업 사진방’을 별도로 만들어 부대별로 사진을 엄선해서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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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대 : 상류 (8.8km)
7대대 : 보문교일대 (11km)
11대대: 하류 지역 (12km)
앞서 06:11분 겁납니다. 뒤로 이어지는 대화인데 당시 포7대대장이 열심히 전송한 사진을 일부 새로 발견(맨 아래측)했다. 위로부터 06:11, 06:37, 06:47)
위 사진들 전송 당시 여단장의 수색지침은 "수변 끝까지만 가고 절대 물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재강조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 지침과 부합하는 사진은 맨 좌측 3장 중 아래쪽 수초가 대부분 보이는 사진이어야 한다.
그 외 사진은 사실상 유속있는 본류 사진들이다.
06:59 발화내용을 보자. 저 수변 아래는 여단장의 수변 아래와 다른 것이다.
여단장의 수변 아래는 거듭되지만 수변끝까지 예외적으로 필요시 유속없는 곳으로 확인이 필요할 때 장화착용 높이까지 입수이다. [즉 땅과 물이 만나는 수제선 안쪽의 수변 경사진 곳을 내려가 물쪽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말한다]
객관적으로 위험하면 장화착용 높이의 물살없는 물속마저도 입수하지 않으면 될 텐데도 왜? 잠수복 상의가 나오고 대책없다며 답답해하고 슈트라도 있다면 내려가 볼 수 있을 거 같다는 둥 대화의 초점이 동떨어진 곳에서 맴돌고 있다.
그것은 소방측 구조대장이 말한 수변아래가 포7, 포11대대장의 심상의 그것과 어긋나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포3대대장의 발화가 의미심장하다. 그는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린 수변수색임무를 띠고 있으며 소방측 구조대장의 수변 아래 정찰에 대한 포11대대장의 심상이 자신의 심상과 일치하는 지 궁금해하며 우리 임무와 상충되는 요청이라면 확인하고 조치함이 어떠냐고 선임포11대대장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포11, 포7대대장은 학사장교 선후배이다. 만약 포3대대장이 이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수변수색에 대한 이질성(균열)을 깨뜨렸다면 굳이 선임으로서의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 수변수색에 대한 이질성(균열)은 적어도 포7대대장의 경우 유속있는 수변옆 물속 깊이를 포함시킨다는 점이다. (선임포11대대장의 경우는 조금 모호하다.) 따라서 깊이만 달라진다면 강 본류로 입수를 지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수변을 그렇게 이해하는 한 여단장의 물속과 포7대대장의 물속은 같은 물속이지만 이질적이며 접점없는 물속이다.
즉 포7대대장의 유속있는 원칙적 허리깊이의 물속과 여단장의 유속없는 예외적 장화착용높이라는 균열이다. 이 균열을 기자들이 모른다면 물속을 같은 것으로 오해하고 수중수색을 지시했음데도 수중수색을 지시한 적 없다고 잡아뗀다는 소설을 쓰게 되는 것이다.
포11대대장이 출동해서 문경에 도착한 첫날 밤 22:11에 수변을 <물가>로 바꾼 것부터 사달이 시작된 것이라 본다. 오해하게끔 지시한 사람? 오해는 처음부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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