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과 가치는 어떤 관계일까? 이해란 재화가치의 입출이나 쾌·불쾌와 결부된 상태이다. 가치란 어떤 상태나 관계에 대해 당부를 매기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가치가 추상화되어 이념으로 화할 수 있다. (이념은 이념을 안출한 주체에게 봉사하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해와 가치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도 아니다. 보통 이해는 가치와 결부되고 유통된다. 예를 들어 광주 정신이라는 가치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한국사회가 유의미한 가치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반사회적이 아니라는 긍정적 평가를 함축한다.

 

자유나 평등을 주요소로 하는 민주주의란 근대에 인간들이 발견한 사회를 지탱하는 효율적인 원리의 요소로 공공의 이익과 결부돼 있다. 즉 이익와 가치는 이처럼 밀접한 불가분의 관계이지 이익 따로 가치 따로 유통되지 않는다.

 

혹자는 2016413일 총선에서의 호남의 선택을 가치보다 이익을 우선했다고 얘기한다.

 

기존의 호남이 지향했던 가치나 이익은 무엇이었는가? 소외의 극복, 상대적 결핍의 해소 지향이 곧 실존적 이익이겠고 이를 다르게 바라보면 평등과 자유라는 이념적 가치에의 지향이었다. 자유 특히 평등은 손 안의 것이 아닌 지향할 가치지만, 그 이념에의 지향을 구현해가는 과정에서 소외나 결핍이 해소될 가능성을 가진다. 이것이 호남에게 주어지는 실존적 이익이다.

 

그간 절대적 몰표로 보여준 호남의 집단 의지란 실존적으로 결핍과 소외의 해소요, 곧 가치 측면에서 자유와 평등에의 지향이었다.

 

호남은 이익과 가치를 실현할 도구로서 DJ에 이어 노무현을 선택했다가 지역주의 양비론을 택한 영남패권주의자 노무현에게 배신감을 맛봤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다른 대안을 발견하자 호남의 이익과 가치를 실현할 도구를 자연스럽게 바꿨다.

 

호남이 지향하는 가치나 이익은 남의 몫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부당하게 박탈당했던 정당한 몫을 되찾으려는 것일 뿐이다. 정당한 몫을 되찾기도 전에 남의 몫을 빼앗으려 한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닌 한 호남의 이번 선택을 지금껏 지향했던 의로운 가치를 버리고 이익을 우선했다고 보는 안목은 천박할 뿐이다.

 

호남이 정당한 몫을 되찾기 위해 소수대표제를 통해 더민주당을 버리고 국민의당을 선택한, 조금 더 그럴 듯한 도구로 바꿨을 뿐이며, 그 선택은 정치적으로나 실존적으로나 가치보다 이익을 우선한 선택이 아니라 이전의 패턴을 변함없이 관철하는 광주정신의 실천이었을 뿐이다

조선 500년간 한반도를 지배했던 무능한 양반들의 흔적들···,

첫 단추를 잘못 꿴 이승만의 민족정기 훼손, 경제개발계획의 실행을 좌초시킨 친일부역배 박정희의 쿠데타, 이어진 정상배들과 경제학도들이 추동한 파행적 경제성장으로 빚어진 한국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그 과실을 탐하며 양극화를 조장·고착시키고 있는 영남패권주의,

 

헬조선 ···

 

가치전도의 일상화와, 자원 낭비로 귀결되는 극심한 기호적 소비’,

사회적 자본의 편재(偏在)로 인한 지역격차 및 폐쇄적 계층구조의 고착···

 

 

 

정상배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한국의 정치지형도 자본주의라는 제국의 일원으로서 영락없이 정치자영업자들이 득세하여 유권자의 선택의 폭이 좁아졌고 투표할 때만의 정치참여가 된 지 오래이다. 정치가들의 어깨는 수많은 유권자들의 기대, 즉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무거운 가치가 짐지워져 있는 틀림없는 공공재이다. 그러므로 정치판에서의 도덕적 흠결에 대한 관용은 사치이다.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고 고학력자가 넘치며, 대체재인 정치신인들이 넘치므로 더구나 그러하다.

 

정상배의 소비는 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과거의 우리(조상)가 저지른 잘못으로 오늘 우리가 질곡에서 허우적대고 오늘·여기의 잘못된 선택이 미래의 우리(후손)에게 당연히 파장을 미칠 것이므로 한 표 한 표는 그야말로 신성한 가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종인의 악어의 눈물

 

김종인류가 과거의 허물을 사죄한다며 5.18 묘역에서 무릎을 꿇었으나, 그 진정성이 관철되는 것일까?

 

정당하게 탈당절차를 밟고 신당을 창당하여 다른 길을 걷는 경쟁정당에게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모습, 이런 모습이 국제관계에서는 국가 자주권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양상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미화된 한국식 자본주의의 부정적 양상에 한 몫 거든 김종인의 반역사적 자취, ·를 넘나들며 양지만을 좇은 전력은 친일부역배들의 기회주의적인 처신과 대동소이하다.

 

 

 

범민주세력의 바이러스와의 연대는 불정의

 

의석수의 우열만 앞세워 연대를 강요하는 김종인류는 다수에 주눅들어 경쟁을 포기하고 투항하는 친일부역배의 사대주의, 패배주의와 다를 바 없으므로 새누리당으로 가든지, 폐당해야 한다. 또한 야권연대는 사실상 소수정당의 의미를 반영하기 위한 비례대표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며, 유권자의 선택을 임의로 배제하는 반민주적인 것이기도 하다.

 

, 야권연대의 후보자 옹립은 수의 다과가 기준이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남이가우리가 다르냐를 구별하지 못하는 지역주의 양비론에 매몰된 더민주당은 영남패권주의 정당의 입지를 결과적으로 강화할 뿐이며, 범민주세력의 도덕성까지 훼손하는 범민주진영의 바이러스적 존재라 아니할 수 없다.

 

 

 

김종인의 반역사적 자기부정

 

호남의 정체성은 호남이라는 물리적 공간과의 결합보다 정의로운 가치와 더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따라서 우리가 남이가의 지역주의와 우리가 다르냐의 지역주의 모두를 부정하는 지역주의 양비론자가 호남과의 지역적 연고를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자기부정이며, 기회주의적인 처신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부도덕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가증스런 한겨레

 

계약은 대등한 당사자끼리 하는 것이며, 자기부정을 내용으로 하는 노예계약은 사이비계약이다. 한일합방은 계약형식을 취했지만 계약의 파기를 원하는데도 해지할 수 없는, 자기부정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이므로, 원천무효인 반인륜적, 반사회적, 반민족적, 반시대적 계약이었다.

다른 동포를 질곡으로 빠뜨리고 일신의 영달만을 도모하며 호의호식한 친일매국노들이 오늘 대한민국 곳곳에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친일부역배인 독재자 박정희는 노동자와 서민의 희생을 토대로 극한의 수출주도형 불균형 경제개발을 꾀하여, 대일·대미 종속적 자본주의를 창달, 오늘 날 극심한 양극화와 지역차별을 고착시켜 놓았다.

 

 

 

동의없는 동·서차별, 교정되지 않는 동·서격차

 

변방인(영남외 국민들, 촌락민)이 편파적인 지역개발을 언제 동의했던가? 동의한 적 없다. 만약, 그것을 추인했다손 치더라도 현재 지역균형과, 정당한 몫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의 교정을 외면하고 있다.

 

 

 

변방인들이 '우리가 다르냐!'라며 분균형의 교정, 정당한 몫에 대해 소리높여 외치는데도, '우리가 남이가'라며 똘똘뭉쳐 변방인의 질곡을 외면하며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악하고 있다.

 

 

 

벌써. 불공정한 상태가 반세기에 가깝다. 여기·지금 있었던 그 가여운 영혼들이 차별 속에서 거의 일생을 보낸 것이다. 같은 동포들을 등치고 이지메하는 것을 조장, 묵인하는 불의가 판치는 한국사회, 새삼스럽게 대한민국이 정의로운 사회인지 되묻게 된다.

 

 

친일부역배와 영남패권주의는 쌍생아

 

친일부역배와 영남패권주의는 사상적 기반이 같다. 약자를 등치고 강자에게 빌붙어(사대주의, 기회주의),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극단적 이기주의) 전근대적, 반사회적, 반인륜적, 반민족적, 유사인종주의적 패륜이라는 점에서 쌍생아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파행적 자본주의를 심화시킨데 크게 기여한 반민족적, 반민주적인 기회주의자 김종인이 되려 큰소리를 치는 가치전도적이며 퇴영적인 모습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는 야만적 언론환경과 사회야말로 극명한 영남패권주의의 생생한 증거이다.

가증스러운 한겨레, 오마이뉴스

 

이른바 진보매체라는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친일부역배와 유사한 친노, 더민주당, 한국좌파를 편파적으로 지지하며 영남패권주의 척결를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의사친일부역배를 응원하므로써 반역사적이며 반민족적이며 반헌법적이며 반시대적이며 전근대적인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변방인은 오늘의 이 침묵과 방관을 분명히 기억하고 심판해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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