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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패권주의-활강

김원웅과 유시민으로부터 배운다

시민25 2016. 3. 17. 16:44

김원웅과 유시민으로부터 배운다

 

 

그때를 기억하는가?

작년 유시민은 개혁당을 창당하더니 느닷없이 김원웅이를 모셔와 독립운동 자손이란 순혈의 피까지 들먹이며, 세기의 지사가 독야청청 초야에 묻혀있다 구국의 현시를 받고 나온 선지자나 되는 것처럼 이미지 조작하기에 그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수천 수만의 오마이 독자와 서퍼들은 김원웅의 개혁당 대표수락을 영웅의 환생인 양 열광으로 환호하였다. 당시엔 그 놈이 지난 이십 몇 년간 군사독재의 품 안에서 영화를 누리며 끊임없이 패악질해 왔던 견공집단의 충직한 일원였음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막힌 사기술에 눈을 감았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였는가?

유시민의 이미지에 완전히 압도되고 세뇌돼 있었기 때문이다. , 김원웅를 믿었다기 보다는 그를 선택한 유시민을 믿었던 것이고 유시민은 이미 개혁의 화신으로 이미지가 확고하게 구축돼 있었던 것이다. 긍정적 이미지 형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화설'인 바 (이것이 모든 절대 권력자가 필요로 하는 맹목적 추종 집단을 만드는데 필수적 요소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유시민은 운 좋게도 그러한 요인을 구비했던 자였다. 소위 '항소이유서' 라는 신화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거다. 그의 이미지는 순수하고 '숭고한 영혼의 젊은이'였다. 그것은 이 후 지속된 민주화와 개혁이라는 시대의 화두와 잘 맞물려 가히 팬태스틱(환상)한 이미지를 그에게 씌워줬던 거다.

그러한 개혁의 화신이란 이미지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유시민 자체를 검증할 기회는 고사하고 그가 추천한 한 비루한 경력의 정치꾼마저도 의심없이 개혁의 대변인으로서 환영으로 맞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조작된 것일 망정 아직까지도 그 위세를 충분히 떨치고 있는 현실이다. 상상해보라. 그리고 비교해보라, 실체와 이미지가 얼마나 천지차인지를. 유시민이란 인물을 쏙 빼고 나면, 김원웅이가 딴나라당을 빠져나와 스스로 개혁당에 입당했을 거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김원웅이는 무슨 짓을 하고 있을까? 그가 지금과 같이, 과거 민주화 운동에서 일정한 희생의 댓가를 치른 이들을 연일 족쳐대는 도덕성의 우위를 연기해낼 수 있을까? 딴나라 족속들에 섞여 공생의 기름진 밥을 탐하고 있지 별 수 있겠는가?

어느 쪽이 진실인가? 수구냐 개혁이냐? 또라이가 아니라면 망서리고 의심할 틈이 아까우리라. 그렇다. 김원웅의 실체는 수구다. 그가 하루 아침에 대변신하여 수구로부터, 수구를 박살내겠다는 개혁의 선봉에 분연히 나서겠다 말할 때 그의 진실을 믿어주는 것, 그리고 뿐만 아니라 그에게 막강한 권력까지 추인을 하고 마는 것이 대체 합리적 사고를 가진 자의 태도인가?

그가 뭘 믿고 이렇게 까부는가?

이 자에게 도덕성을 헌정하고 권력을 의탁한 사람은 누구인가?

말할 것도 없이, 유시민의 이미지라는 가짜에 의해서 또 하나의 아류의 탄생 조건은 동시에 마련됐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김원웅의 개혁의 전도사란 이미지의 완성은 바로 우리와 당신인 '네티즌에 의해서였다.

필요와 충분이란 조건은 이렇게 유시민의 이미지와 그에 놀아났던, '개혁을 열망하는' 순박한 네티즌의 합력의 결과였다. 유시민에 의해 한 번 속은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용인하고 만 이미지에 의해 두 번 속아넘어간 것이다.

오늘 김원웅의 위장술이 한 꺼풀 벗겨짐을 목격한다.

 

그는 말한다. 전국 정당화를 위하여 호남은 기득권을 버려주세요, 간곡한 듯 애처로운 얼굴로 호소한다. 이게 알짜배기 개혁파의 주둥아리에서 나온 소리다. 열 받았다고 이유없이 뭉개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그의 개혁에 대한 '개념'이 명백히 드러났고 그 확인으로부터 절망의 한 숨이 절로 새어 나와서 그런다.

호남을 이용한다, 호남을 희생양으로 잡는 정치 야바위꾼식의 계산속이다, 등의 다 아는 얘기는 열만 데울 것이므로 굳이 거들지 않으련다.

문제의 핵심은, 그에게 있어 개혁의 개념이란 꽝, 즉 없다라는 사실이다.

개혁의 뜻 설정이 잘 못됐다. 수구를 용감히 외치면서 개혁이라고 강변한다. 그는 영남표를 잡아 현재보다 지역적으로 골고루 국해우원을 내고 그 다수의 힘으로 원활한 국정 수행을 가능케 하자고 말한다. 여기에 개혁이란 의미에 해당되는 대목이 있는가? 이것이 이치에 맞는 말이 되기 위해서는, <그 다수당은 개혁적 인사들의 집합체여야 한다>는 대전제가 필수적이다. 이렇게 쉽다. 허무하게 단순하다.

그 집합체가 개나 새나 협잡꾼이나 기회주의자들로 뒤섞이게 되어도 다수당이 되기만 하면 그들이 개과천선하여 개혁을 수행하리라 기대하는가? 그들이 다수당이 되기만 하면 자연스레 개혁으로 나아가는 자동엔진이라도 달았단 말인가.(아니면, 수구영남에서 누구를 내세워 개혁인사를 당선시킬까나?) 김원웅이 하는 짓은 개혁을 깨부수는 첩경이다.

정치하는 놈들만 깨지고 자빠진다면 쌍수로 환영할 개혁이랄 수는 있겠으나 문제는 우리의 개혁에의 염원과 개혁이란 가치 자체가 싸그리 무너져 내리고 만다는 점이다. 수구의 길을 개혁이라 머리띠 두르고 씩씩하게 나가게 그냥 놔두면 나중엔 개혁이 수구가 되어 질타와 모욕을 받고 말 것이다.

김원웅 뿐이겠는가? 유시민이가 소위 브레인인데 엉뚱한 놈 갖고 삽질한 느낌도 있다. 또 어디 시민이 뿐인가? 신주류라는 주역들이 있지 않은가? 유재인, 이강철, 청와대 참모들? 여기까지만 말한다면 진짜 삽질이 되고 말리라. 이러한 수구에로의 회귀를 당차게 꿈꾸는 최종 윗 대가리엔 노무현이있음이다.

노무현이가 이런 황당한 배반을 할 리는 없다고? 아직도? 지금 보고서도 부인하려는가? 그가 개혁을 깨부시기로 작정하고 덤빈다가 천만에 아니다. 그러나 그 길을 향해 명백하게 가고 있다. 왜 그러는가? 철학의 부재? 이 말은 너무 거룩하다.

답은 '개념'의 부재 때문이다. 수구와 개혁간의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어이없는 기초 개념에서 혼란이 오는가? 혼란의 핵심은 이것이다.

<영남은 주류다>라는 '신앙', 이 신성불가침의 신앙 때문이다. 몸통 노무현을 비롯한 노정권 의전내각진, 전 참모진들, 거기에 기생하는 김원웅과 유시민, 그 추종 노빠돌이들이 이 신앙 공동체의 신자들이다. 이 신앙은 '영남패권-ity'이다. 그들의 개혁의 요체는 영남 끌어안기다. 수구영남을 냅두기만 해도 개혁에 반한단다. 수구영남을 끌어안기 위해 호남의 개혁을 양보하는 것이 정치 정당 개혁이란다. 백인(白人) 영남 머리 하나의 가치는 유색인 타지역 머리 서너 개와 맞먹는다는 얘기가 된다. 영남중심주의의 실체는 이토록 뿌리깊고 질기다.

이제 명확해졌다. 영남패권주의를 따르면 노무현식 '개혁'이 되는 거고 거부하면 '똥빠'가 되는거다.

나는 즐거이 영원한 똥빠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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