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침뱉기의 대중화의 완성 – 문재인의 현충기념사

 

국가는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국가는 공간적으로 특정 영토를 기초로 한다그 국가에서 살다간사는미래에 살아갈 구성원들의 보다 나은 생존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청사진에 따라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하나의 도구적 존재이다.

 

구체적 현실에서 그 청사진을 구체화하는 수장이 곧 대통령이다.

 

 

헌법을 부정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은

"폭염과 정글 속에서 역경을 딛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다그것이 애국" "이국의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생긴 병과 후유 장애는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부채"라며 "합당하게 보답하고 예우하겠다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


이라고 했다.

 

과거의 대통령 중 독재자로 비명횡사한 박정희가 오로지 돈독이 올라 베트남에 파병하여 숱은 인명을 희생케 한 바 있다. (과거의우리는 베트남 참전용사들에 대해 항상 부끄러움을 감출 길 없다우리가 만든 헌법을 유린하고 베트남에 파병하여 우리들을 전쟁의 제물로 바치게 방치한 것이 부끄럽고그 부끄러움으로 인해 부채의식으로 고엽제 등 후유장애를 배상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상찬거리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고통에 대한 위로 및 부채의식인 것이며 아울러 강대국 미국에 앞잡이로 참전한 약자의 비애를 절감하고 부국자강의 다짐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월남전 참전은 본질적으로 애국일 수 없고 위정자의 반헌법적 망동으로 참전희생자들로부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온전한 기회를 빼앗은 것이며 아울러 그것을 방관한 (과거의)우리들의 책임으로 (오늘의우리들이 배상하는 일환의 성격인 것이지 애국을 위한 희생의 대가로서 예우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문재인은 또

"1달러의 외화가 아쉬웠던 시절 이역만리 낯선 땅 독일에서 탄가루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석탄을 캔 파독 광부병원의 온갖 궂은일까지 견뎌낸 파독 간호사"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조국 경제에 디딤돌을 놓았다그것이 애국"


이라고 했다.

이런 인식은 우리들이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차별이 깔려있다파독광부나 파독간호사들의 애국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가난한 (과거의우리들의 잘못으로 서럽게 머나먼 이국땅에서 기꺼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하게 만들었다는 과거의 우리들에 대한 반성이요각오여야 했다파독전사들은 결코 애국의 차원으로 미화시켜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제 필자는 예기치 않은 노력 봉사를 하느라 낮에 매스컴에 한눈 팔 여유가 없었는데 뉴스를 접하는 순간 부끄러움과 장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문 대통령은 1970년대 여공(女工)을 언급하면서

"청계천변 다락방 작업장에서 젊음을 바친 여성 노동자들의 희생과 헌신에도 감사드린다"며 "애국자 대신 여공이라 불렸던 그분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그것이 애국"


이라고도 했다.

 

이는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당한 희생을 애국으로 변질시키려는 불순한 시도로써전태일 열사의 정의로운 노동운동그 불의 열정을 부정하는 망발인 것이다뒤집어 말하면 (과거의우리들의 누나의 희생을 매개로 탐욕을 채우던 착취적 산업구조나 인간소외를 부채질하던 사악한 자본가들을 오히려 예찬하고 숭모하는 망발인 것이다점입가경이다.

 

이러한 발언은 세월호 방명록에 문재인이 쓴

미안하다고맙다


와 같은 맥락이다한 마디로 문재인은 대단히 기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뿌리의 DJ와 노무현을 부정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당시 한나라당과 베트남참전전우회 등에서는 이를 '망언'이라고 반발했다. DJ의 이 말은 베트남 참전용사를 부정한 게 아니라 베트남 참전의 성격을 정확히 간파한 합헌법적 발언이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2004년 베트남을 방문해

"우리 국민은 (베트남에마음의 빚이 있다그만큼 베트남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고 했다.

 

그리하여 베트남 참전을 애국이라고 주장한 문재인은 입으로는 DJ와 노무현을 계승한다고 외치지만 DJ와 노무현 부정했으니 이제 노선까지 부정하고 상대진영에 부합하는 아첨을 자행함으로써그리고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함으로써 준비된 대통령이라며 현란하게 국민에게 속삭였던 열정은 오로지 대권을 향한 권력욕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우리 헌법전문에 불의에 항거 ···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헌법 제5조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운동권의 민주 수호 정신을 부정하다.


운동권의 민주화를 위한 정신은 다름아닌 우리의 집단의지인 헌법적 가치를 지켜내려는 투쟁이었다그것은 반제 항일독립투쟁의 역사와 반민주투쟁인 4.19, 반독재 투쟁인 5.18 반민주 투쟁인 6.10 항쟁등과 맥락이 맞닿아 있다모두 우리의 집단의지인 헌법정신을 부정하지 않는 합헌법적 행동들이었다.

 

문재인은 국민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도전을 감행했다식장에 앉아있던 참석자그 중에 헌법을 수호하기로 선서한 국회의원들 –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노동자를 위한다는 심상정 노회찬 의원보수적 가치를 위해 정치하는 보수인사들 – 과 그곳에 참석한 유가족들을 모욕한 것이다.

 

그것을 듣고도 무슨 의미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존재들이 필자는 부끄럽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란 그러한 약체민족으로서 강자들에게 유린당해 삶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그런 때문에 남은 자들에게 슬픈 기억을 안겨 준그리하여 삶을 신산하게 만든 우리의 무능함에 대한 반성이어야 했다.

감사보다 참회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 것이다그들의 희생으로 그나마 오늘이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 아니라 참회요 부끄러운 일이다그러한 참회 위에 다시는 불행한 일들을 우리가 되풀이하지 않기로 하는 다짐의 장이 되어야 했다.

 

 

라이프니쯔 류의 변신론을 들여다 보도록 하자.

 

A : 세상에 사악한 현상들의 즐비하다왜 신은 사악함을 만들어 놓았을까?

B : 신은 전지전능 완벽해

 

A : 완벽한데도 악을 만들어실수 아냐?

B :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필연적으로 악을 시전하지!

 

A : 인간도 완전하게 만들지 왜?

B : 인간과 신은 같지 않아다르지.

악이 없다면 선이라는 것의 귀한 가치를 어떻게 알아챌 수 있겠어?

 

A : 그러니까 신은 차별의식을 가진 존재고 선을 부각시키기 위해 악을 등장시켰다구?


신은 완벽한 자신과 다른 불완전한 존재를 통해 자긍심을 확인하고

선의 가치확인을 위해 악을 만들어 불완전한 인간이 고통스럽도록 만들었다.


필자는 문재인의 현충일 기념사를 보고 라이프니쯔의 변신론을 떠올렸다.  오로지 스스로의 신앙을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저돌적인...  문재인의 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차기 문재인을 위한 반대진영을 위한 아첨인 것인가?  아니면 문재인의 변절인가? 

 

살펴본 바와 같이 문재인의 반헌법적인 대국민 도전을 자행한 발언을 통해,  문재인의 천박한 철학과 전후 상충한 체계화되지 않은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좌충우돌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를 우리가 대통령으로 부리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기념사를 세상에 선 뵈게 방치한 청와대 참모들의 의식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지지자를 모욕한 것인가지지자의 지지를 반영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필자는 판단을 보류하겠다문자폭탄을 열호하는 태도며청문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며부정적인 권위(권위주의부정곧 탈권위를 서민이나 인간 코스프레하는 사진으로 이해하고 열광하는 수준들...을 보면

문재인의 현충일 기념사는 지지자들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의 지지자들이 바른 민주시민의 안목으로 제대로 사안을 본다면 아마 문재인을 절대로 지지하거나 지지자들 모욕하는 저러한 행태를 방관할 리 없다고 본다.

 

 

끝으로

 

DJ와 노무현을 부정하고 운동권을 부정하고 순국선열을 욕되게 하고 희생자를 애국자로 바꾸는 등 문재인의 신통력이 좌충우돌 현란하기 그지 없다그럼에도 열화같은 문재인을 지지하는 자들의 누워 침뱉기는 식을 줄 모른다하늘의 우중충함이 내 맘같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더 모욕해야 본래의 우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한겨레 신문의 문재인의 현충일 기념사 기사를 읽었다.  한겨레신문이 맞는 지 눈을 부비며 다시 봐도 ..... 한겨레신문을 읽을 가치가 있는가?



제목에서 보다시피 지역화합을 꾸미는 한정(definite)사로 쓰인 ‘기괴망측이란 괴상하고 기이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혹자는 뜬금없이 기괴망측하다니?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 그 연유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호남이든 호·영남이든 멀게는 70년대 초부터 간혹 선거 때마다 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지역을 의식하는 구호가 등장하였다.

 

*** 

일제강점기에 일본과 가까운 부산항으로부터 신의주까지 병참기지화 되어 경부/경의선 철도가 놓여지게 되는데 남한에 한정해서 얘기하자면 오늘 날의 경부고속도로(1973년 완공주변이 개발되고 공단들이 수도권과 경상도에 집중되면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데 이에 가세해서 독재자 박정희의 수출주도형 불균형적 경제개발정책의 선택으로 지역간 불균형이 가속화되고 거기에 더해져 정략적인 득표전략으로 호남을 소외시키기 시작했다.

 

누구든 태어나면서 가난하거나 불리한 환경을 피해서 세상에 출현할 수 없는 법이다달리 말한다면 가난하거나 불리한 환경에서 출생한다면 경쟁사회에서 불리하기 그지없는 출발을 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이다.

생각해 보라. 여러분이 취업하려 할 때 면접관과 마주앉은 거리가 적당할 때와 너무 멀어 소통하기가 어려운 두 경우 중 불리한 경우에 당첨되어 면접을 치른다고 말이다. ...

, 대한민국에서 도시가 아닌 곳, 또는 호남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무한경쟁시대에 핸디캡을 안고 태어남을 의미한다.

 

왜냐

국립도서관이니 국립 모모기관들은 대부분 서울에 위치해 있어  서울사람만이 문화적 혜택을 쉽고 특별히 누릴 수 있다. 물론 유일한 국립기관이 집집마다 있을 수 없으므로 차별적이기는 하되 최대한 지역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거리정도는 배려해서 남한의 한 가운데인 무주라든가 충청도 어디에 설치해야 그나마 불만이 적어질 일이다.

 

차별이 존재한다.  즉 불평등하다.  반헌법적이다.

말하자면즉 박원순 시장이 아무리 공정하고 투명하게 시정을 운영한들 그것은 원초적으로 잘못된 구조적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결국 미봉적인 현상유지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이미지의 박원순 시장의 의식속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있을까?  있다면 박원순시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당적을 가졌을 리가 없다.  홍세화씨도 그나마 최근에야 영남패권주의를 수긍했으니 말이다

이것은 곧  대한민국의 소위 진보인사의 인식의 한계 - 지역주의에 대한 인식 - 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서울 아닌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서울 특별대우 주민들에 비해서 같은 세금을 내고 살면서 문화적 혜택 측면에서 공간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고쳐 말하면 똑 같이 세금내면서 서울사람을 위해(?) 서울 사람이 실효적으로 혜택을 보는 사업에 시골사람의 세금이 쓰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 특별시민이기도 하다.

 

지역사정은 어떠한가대표적으로 경제척 측면에서 누군가에게 어디서 창업할까를 물었을 때 판단능력이 제대로라면 수도권이나 경상도의 어디를 선호할 것이다. 왜냐하면 물류비용이나 경영환경 사회간접자본이나 사회문화자본 등의 경영조건이 다른 소외지역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정확히 의식적이며 인위적으로 초래되었다.

결국 우리들의 집단의지가 문서화된 헌법에서 얘기하는 법앞의 평등은 우리가 살아내면서 끊임없이 지향하고 추구해야 할 이상인 것이지 현실적으로 실효적인 이념으로서의 평등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  불평등한 상태를 위정자들이 인위적으로 창출해 놓은 뒤 실기하여 방치한 지가 벌써 반세기를 훌쩍 넘기게 되었다.

 

생각해 보라보다 공평한 지역적 조건에 태어났으면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었을 터인데 더럽게 운 나쁘게도 하필이면(?) 경쟁에서 열악한 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당사자라고 하고 역지사지하여 그 상황을 공감해 보라.

정말 처절하게 자각한다면 억장이 무너지고 이 땅을 벗어날 정도의 혐오감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 뿐이랴?  이 곳 아고라에서도 가끔 보여지지만 합리적 이유없이 ‘빨갱이이니 ‘깽깽이... 등의 악의적 마타도어

 

지역감정

줄여 말하면 호남사람들과 영남사람들의 지역에 대한 정서는 단순한 감정적 차원의 그것이 아니다위정자들 특히 노무현으로부터 문재인 뒤어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 대부분이 지역화합을 얘기하면서 그것을 미치 해묵은 감정으로 설정해 놓고 탕평인사로 해소 가능한 것처럼 쉽게 얘기하곤 한다

그렇다면 반세기 동안 매 선거때마다 유권자인 영호남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들떠서 망국적인 몰표를 자행했다는 얘기일까?

 

그러나 지역정서니 지역감정이니 지역주의니 하는 이른바 망국적인 행태는 모두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집단의 정서를 가리키는 말로써 특정 조건으로 유발되는 결과이고 선거때마다 스트레스처럼 각인돼 있는 감정들이 일깨워져 드러날 뿐인 것이다.

 

인간이 존엄하다평등하다공정하게 경쟁하자고?

현재 대한민국의 이른바 양식있는 지식인, 정치인이랍시고 이에 대한 명확한 의식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피해당사자(특히 호남인이나 시골에 사는 소외지역민)들은 그러한 피해자적 지위마저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자기의 정당한 몫이 뭔지도 모르고  삶의 대부분을 마친 사람이 존재한다.  무능한 위정자들 탓이다.

 

지역화합을 탕평인사한다고 해소되는 것이라면 과거 고건도 총리했고 DJ도 대통령 했고 이번에 이낙연도 총리했으니 해묵은 지역감정이 해소되고 화합이 되어 당뽀개기 전문가 유시민이 말하는 이념정당이 대한민국의 정치좌판에 전시될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럴까? 과연 탕평인사하고 가야역사 연구한다고 소외지역민들의 열악한 지역의 사회경제문화자본이 저절로 업(up)되는 것일가?

 

 

정당한 이유없이 시골사람의 몫을 서울에다호남이나 그 외 소외된 지역민들의 몫을 경상도에 쏟아붓는 등 평등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짓을 파렴치하게 위정자들이 저질렀다면 ‘균형개발평등이라는 이념에 맞춰 서둘러 교정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헌법적 의무이다

그럼에도 반세기 동안 이 불평등한 지역적 불균형을 방치하는 것은 위정자들의 직무유기인 것이다.

 

문재인이 오늘 가야사연구 운운하는 거 보니 (가야사 연구)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601_0000000738&cID=10301&pID=10300

소외지역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조치 등의 본질적인 지역화합은 물건너간 거라고 보여진다

그래서 기괴망측하다고 제목을 붙인 것이다.

 

제발 더 늦기 전에 빼앗긴 정당한 몫을 원위치했으면 한다.

** 오늘도 학계나 미디어가 반색하며 문비어천가를 불러대는구나.  

한갓 서비스맨의 수장에 불과한 문재인이 혈세로 학문분야까지 창도하고 거기 맞장구 치는 기레기와 해바라기 지식인들을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고 노무현2기가 지나면 조금 더 나아지려는가???

 

 심상정, 노회찬 류

이른바 한국의 진보들, 햇살 환하게 비치는 백주 대낮에도 이들 눈에 씌여진 계급프레임 탓에 사회현상 전체를 못 보는 족속들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눈에 꽁깍지가 씌여 보고싶은 것만 보게 된다는 핑크렌즈 효과라는 게 있다. 선거때마다 극명하게 드러나는 한국적 특색을 지역주의 폐해라면서도 그게 없다며 너스레를 떨곤 한다. 최근 일부가 이같은 계급프레임에서 벗어나는 듯 보인다.

 

심상정은 참여정부의 열우당과 민노당 사이엔 큰 강물이 놓여있고 열우당과 한나라당 사이엔 실개천이 놓여있다고 했다. 최근 토론에서 말빨로 튀자 자만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심상정이 말한 정당관계론에 의하면 문재인과 심상정은 큰 강 사이인데 문재인과 같은 편먹기를 하는 짓은 무슨 꼬락서니냐? 거리론이 거짓말이거나 실제로 실개천 정도의 차별성만 있다는 얘기이다.

 

한국사회에서 여태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그들은 모르기 때문에 소수에 머물고 있다. 십중팔구 이번 대선에서도 한 자릿수에 머물 것으로 예측되고 가장 낙후된 사회적 약자들이 사는 지역의 지지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무현, 문재인, 홍준표, 김기춘 류

이들은 현재 한국사회의 주류이다. 노무현 부류는 지지자를 버리고 영남 지역에 구애하였으나 박대당했는데 최근에 그 지역에서 약간의 지지를 얻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사람들이 바뀌어 지지를 획득한 것이 아니고 그들과 동질감을 확인하여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 정확한 분석일 듯 싶다. 이들은 과거 박정희 유신체제와 김일성의 유일체제처럼 적대적 공생관계로 체제를 유지했던 것을 교훈삼아  본 받을 것이 그렇게도 없었나? - 이번 대선에서 그 밥에 그 나물인 실개천을 사이에 둔 두 진영이 무슨 대단한 차별이 있는 듯 호들갑을 떨며 압도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애교를 부리고 있는 중이다. 이들 추종자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그 세를 과시하고 파쇼적 행태를 불사하는 특징이 있다. 가로되 일베와 문베라는 신조어가 등장해서 유통중이다.

 

이들 노무현 부류의 치적은 내세울 게 없다. 그러나 실정을 보면 화려하기 짝이 없는데 선임자의 업적을 특검했는가 하며, 기껏 뭉친 평화민주개혁진영을 박살내 다음 정권을 수구보수세력에게 갖다 바쳤고, 노무현 참여정부때 FTA를 수용해서 MB정권에서 확정했다. 노무현 집권내내 대연정하자며 구애했으나 딱지를 맞은 바 있으며, 친노동자정책이 아니라 반노동정책을 폈고, 비정규직을 양산했으며 삼성과 긴말한 밀월관계를 맺어 삼성X파일을 묵과해 버리고 NEIS사업권을 삼성에게 넘기고, 반기문, 홍석현 등 보수인사를 중용한 바 있다.

이들이 모여있는 정당의 출몰인사의 경향을 살피건대, 철새 도래지나 버스승강장처럼 일시 머무는 곳으로 기능하는 정당인 듯 보인다. 안철수, 정동영, 손학규, 김한길, 박지원, 천정배, 박주선, 김종인 등 숱한 인물들이 그것을 대변한다.

 

이런 여러 이유로 소위 운동권의 민주화를 위한 순수한 열정만큼 정치력은 비례하지 않음을 치열하게 입증하였다. -사실 운동권의 운동은 학내에서 책읽고 토론하고 대외활동에서 계몽과 데모가 주된 것이다. 어떤 인간이 운동경력을 팔아 정치한다면 그 민주화운동은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운동권의 열정적 순수성이 권력욕으로 전화해서 권모술수형 정상모리배가 되었다고 본다. 그들 우상 노무현은 퇴임 후 얼마 안 돼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자살한 봉하는 성지처럼 다뤄지고 있다.

 

이런 무리와 유사한 무리들이 다른 한켠에 있는데 홍준표와 김기춘류다. 이들은 지역주의  사실 정확하게는 영남패권주의 - 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파트너로서 홍준표나 김기춘류식 행태를 예측가능하다는 의미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세력인 노무현, 문재인류보다 긍정적인 면이 있다.

 

최근 노무현 부류가 압도적 지지를 보내달라고 호소하는데, 그들이 주류로 부상해서 제1당으로 여러 번 등극했는데 막상 내놓을 만한 실적이 전무하다는 것을 볼 때, 압도적 지지를 보내줘도 다시 지지자들의 등에 칼을 꽂을 것 같다. “자유한국당 싫어 나 찍었지... 라며··· “

 

꿈과 희망이라는 것은 현실이 달갑지 않을 때 꾸는 것이다. 헬조선, 청년백수, 경제불황, 정세불안, 사드보복, 세월호진상규명, 탄핵정국에서 특검연장실패로 적폐청산 지연, 한일위안부협상 방관, 국민연금재정파탄, 건강보험부실화, 방만한 공기업 등 제1, 양대정당이 저질러 놓은 부정적인 사회현상을 볼 때 우리가 선택할 후보는 기득권 세력은 아니지 않나 생각된다.

여론 조작,  국민주권의 왜곡, 헌정질서 교란 -  반민주 : 탄핵소추 사유

 --- 왜 취임선서를 했나?

 

 

블랙리스트 - 사상, 언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유린하는 반민주 - 탄핵소추 사유

사드는 곧 미국 방산업자에게 대한민국의 국부를 퍼줄 것이냐의 입장 차이이다.

사드 배치해서 안보가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경제적 불리로 귀착되는데 이 본질을 외면하고 진보와 보수 프레임으로 다툰다.

김기춘 등 수구보수 주류의 권력독점에 반기를 든 수구보수 비주류의 파이 쟁탈전

이익과 가치는 어떤 관계일까? 이해란 재화가치의 입출이나 쾌·불쾌와 결부된 상태이다. 가치란 어떤 상태나 관계에 대해 당부를 매기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가치가 추상화되어 이념으로 화할 수 있다. (이념은 이념을 안출한 주체에게 봉사하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해와 가치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도 아니다. 보통 이해는 가치와 결부되고 유통된다. 예를 들어 광주 정신이라는 가치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한국사회가 유의미한 가치로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반사회적이 아니라는 긍정적 평가를 함축한다.

 

자유나 평등을 주요소로 하는 민주주의란 근대에 인간들이 발견한 사회를 지탱하는 효율적인 원리의 요소로 공공의 이익과 결부돼 있다. 즉 이익와 가치는 이처럼 밀접한 불가분의 관계이지 이익 따로 가치 따로 유통되지 않는다.

 

혹자는 2016413일 총선에서의 호남의 선택을 가치보다 이익을 우선했다고 얘기한다.

 

기존의 호남이 지향했던 가치나 이익은 무엇이었는가? 소외의 극복, 상대적 결핍의 해소 지향이 곧 실존적 이익이겠고 이를 다르게 바라보면 평등과 자유라는 이념적 가치에의 지향이었다. 자유 특히 평등은 손 안의 것이 아닌 지향할 가치지만, 그 이념에의 지향을 구현해가는 과정에서 소외나 결핍이 해소될 가능성을 가진다. 이것이 호남에게 주어지는 실존적 이익이다.

 

그간 절대적 몰표로 보여준 호남의 집단 의지란 실존적으로 결핍과 소외의 해소요, 곧 가치 측면에서 자유와 평등에의 지향이었다.

 

호남은 이익과 가치를 실현할 도구로서 DJ에 이어 노무현을 선택했다가 지역주의 양비론을 택한 영남패권주의자 노무현에게 배신감을 맛봤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다른 대안을 발견하자 호남의 이익과 가치를 실현할 도구를 자연스럽게 바꿨다.

 

호남이 지향하는 가치나 이익은 남의 몫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부당하게 박탈당했던 정당한 몫을 되찾으려는 것일 뿐이다. 정당한 몫을 되찾기도 전에 남의 몫을 빼앗으려 한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닌 한 호남의 이번 선택을 지금껏 지향했던 의로운 가치를 버리고 이익을 우선했다고 보는 안목은 천박할 뿐이다.

 

호남이 정당한 몫을 되찾기 위해 소수대표제를 통해 더민주당을 버리고 국민의당을 선택한, 조금 더 그럴 듯한 도구로 바꿨을 뿐이며, 그 선택은 정치적으로나 실존적으로나 가치보다 이익을 우선한 선택이 아니라 이전의 패턴을 변함없이 관철하는 광주정신의 실천이었을 뿐이다

과거를 현재의 불미함으로 가릴 수 없다.

 

과거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동남아를 석권하자, 그 때까지 절개를 지키던 문인이나 명망가들이 그 위세에 놀라서 이내 패배의식에 휩싸여 동포를 배신하고 일신의 영달을 꾀하게 된다. 오늘 날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변절한 자들을 친일부역배라고 멸시하고 혐오한다.

 

가소적인 존재인 인간인지라 상황에 따라 변신할 수 있다. 그러나 개선 아닌 변신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게다가 반사회적 변신일 때는 오로지 비난의 대상일 뿐이다.

 

지난 날 순수한 마음으로 독재에 대항하여 민주를 외쳤던 인간들이 권력의 단맛을 보자 이내 권력 해바라기가 되어 온갖 권모술수와 정략을 일삼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파행이 일상화 되었다.

 

 

좌파의 이단 한국의 사이비 좌파, 변절한 운동권

 

 

요즈음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운동권이랍시고 과거 이력을 침소봉대하여 마치 사회에 대단한 기여를 한 것 마냥 미화하고 그것을 빌미로 권력에 발을 내딛은 다음에 곧 권력의 단맛에 취해 온갖 전략전술을 동원한 권모술수와 이미지 조작, 정치의 종교화를 꾀하여 권력의 확장에 몰두하는 반역사적인 부류가 있다.

 

지역주의 양비론자인 노무현과 그 신도들이 좋은 예이다.

 

 

반세기 가까운 긴 세월동안 한국사회에서 영남퍼주기식 수출주도형 불균형성장정책이 자행되었는데도 이것을 교정하기는커녕, 심화된 지역격차를 기정사실화하고 인위적으로 기울게 한 불균형 상태에서 능력껏 경쟁하자고 하는 파렴치하고 비양심적인 족속들이 다름아닌 노무현과 그 파당들이다. 이들을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자라고 한다.

 

반 세기 가까이 변방인의 희생으로 한국사회의 주류가 된 영남의 눈치를 보며 당당하게 정의와 평등을 외치기는커녕 소외된 변방인들을 집단적으로 모욕하며 급기야 이지메에 앞장서기까지 한다.

 

 

자유를 위해 투쟁한 이력을 가졌다면 다음 단계의 지향은 실질적평등인 경제민주화이다. 그러나 한국의 운동권은 실질적 경제민주화 중 대표적 현안인 지역간 차별로 빚어진 불평등을 외면한다. 명백히 변절인 것이다.

 

이 변절의 최선봉에 자살한 노무현이 있고 그 광신도들이 이제 한국의 제1당이 되었다. 1당인 더민주당에 몸담은 의원들 모두 변절자라거나 위선자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시아에서 FTA를 제일 먼저 체결한 노무현, 지역주의 양비론으로 호남의 소외를 공식적으로 외면하며 양극화를 심화시킨 그들을 4.13 총선에서 호남 민심은 영남패권주의자라고 낙인찍었다.

 

좌파라면 자유를 위한 투쟁보다 평등을 가장 우선시한다. 그러나 한국좌파들은 지역적 차별로 인한 불평등을 외면한다. 좌파의 이단이다. 매우 선별적으로만 평등을 관철하려는 좌파들은 좌파가 아니다. 사이비 좌파인 것이다.

 

 

한국사회에 정의가 살아 숨쉰다면 이번에 사망선고 받은 변절한 운동권과 사이비 좌파는 단말마의 비명소리를 내며 조만간 사회에서 매장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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