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당의 선전 = 선택지 탓인 반사이익

 

 

더민주당의 총선결과에 대한 위상은 한 마디로 반사이익이다.

 

더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닌 새누리당의 닭짓으로 인한 반사이익 +

 

신생정당 국민의당에 대한 선택지가 없어 울며겨자먹기식의 전략적 투표로 인한 반사이익일 뿐이다.

 

 

영남패권주의 이슈는 선거철에만 반짝 빛나는 1회용 종이컵이 아니다. 영남패권주의는 한국인 모두를 옥죄고 있는 일상의 굴레요 멍에이며 부정의의 흔적이다.

 

 

만약 영남패권주의 이슈가 공공에게 소비되어 일반화되면, 그리하여 한국사회의 질곡안 영남패권주의를 자각하게 되면 더민주당의 입지는 사상누각이 요, 풍전등화가 될 것이다.

 

 

자유를 위한 민주화와 경제민주화는 별개 몸뚱아리가 아니다. 그런데 더민주당의 운동권 애들은 그것이 딴 몸인양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다름아닌 지역주의 양비론이다.

 

 

우리가 다르냐! 우리의 정당한 몫을 교정하라는 호남 민심을 외면한 그들의 가증스럽고 천박한 민주화경력의 포장지가 이슈로 부각되면 치욕스럽게 정치생명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위선자들의 심판은 머지 않았다. 그 어떤 수단도 진실과 정의를 영원히 덮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데 혁혁하게 기여한 김종인을 영입한 문재인의 안목은 한마디로 천박하다. 경제민주화의 지향점 하나가 곧 과거의 불공정한 퍼주기식 불균형 경제정책의 교정이고 그것이 호남 민심이 아니겠는가!.

 

 

김종인의 사탕발림이나 문재인의 사죄방문이 응답받지 못한 까닭이 바로 그 것이다.

 

 

노빠들은 본질을 호도하며 견강부회하지 말고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노빠들은 더민주당을 진정한 국민의 당으로 추동할 정치적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빠들 역시 치욕스러운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영남패권주의 척결!

 

유일하게 그 선봉에 누가 서느냐가 관건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영남패권주의 척결은 시간문제일 뿐 반드시 사필귀정으로 귀결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친일부역배를 압도적으로 혐오하기 때문이다.

동포를 팔아 일신의 영달을 추구한 무리들이 일제 강점기의 친일 부역배이다.

 

 

이들은 거시적으로 존엄한 인간을 차별하며 억압하는 제국주의의 필연적 몰락을 헤아리지 못하고

 

강자앞에서 현실을 수용하는 패배주의적 특성을 지닌 기회주의적 인간 군상들이다.

 

 

이들의 대척점에 독립투사들이 있다.

 

 

우리는 친일부역배를 혐오한다. 왜냐하면 기회주의적이고 패배주의적이며 현실순응적이며 사대주의적이며 서열주의 등 갖가지 전근대성이 착종된 때문이다. 그리고 독립투사와 친일부역배가 같지 않고 다르다는 시비지심이 작동한다. 필자의 얘기도 이런 맥락임은 물론이다.

 

 

이렇게 다른 것을 다르게 본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우리가 정작 친일부역배를 혐오하면서도 스스로 친일부역배와 같은 선택, 행태를 하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바로 한국사회의 교육의 한계로 빚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에 대표적 지역적 특징 하나가 영·호남 지역격차이다.

 

 

이 지역격차는 경부축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과 부산을 잇는 영남 퍼주기식 수출주도형 불균형적 경제성장정책의 결과물이다. 이 파행적 경제성장 추진 과정에서 호남이나 영남외의 변방인들의 동의를 얻은 바 없다.

 

따라서 경제학적 차원의 일시적 집중 경제정책이었다면 늦지않게 그 교정이 뒤따라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친일부역배 독재자 박정희와 경제참모들의 이러한 불균형 경제성정정책은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의 일환이기도 했으므로 그것을 되돌릴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결국 호남이나 변방인들의 희생 위에서 오늘의 영남의 번영이 존재한다는 얘기이다.

 

 

이 현재의 질곡의 방치가 친일부역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내 간파할 수 있다. 변방인들을 짓밟아 영남민의 영달을 취한 그것, 곧 기회주의적이며 비인도적인 친일부역배의 특성과 다르지 않다.

 

 

기득권을 유지 고수하려는 영남인들의 수구적 투표행태나 근성을 묵인하고, 정당한 몫을 되돌리라는 호남, 혹은 변방인들의 외침을 외면하는 입장을 지역주의 양비론이라고 한다.

 

 

노무현이나 문재인 부류들, 한국의 좌파들이 그런 입장에 서 있다. 즉 친일부역배와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지역주의 양비론을 지지하는 것은 다름아닌 친일부역배를 찬양하는 일과 다름 없는 것이다.

 

 

제대로 역사의식을 갖고 있거나 시민의식을 가진 자가 절대 지역주의 양비론을 지지할 수 없다.

 

노빠들은 그래서 반민족적, 반역사적, 반헌법적, 전근대적 부류로서 우리사회의 암적 존재들이다.

 

또한 범민주세력의 바이러스인 것이다.

 

물리적 공간인 호남, 그리고 그 곳과 연고를 가진 호남인

이 둘이 결합되면 소위 호남 변방인이 된다.


한국에서 파행적 산업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60년대 이후 

규모의 경제로 인한 수출주도형 대미,대일 의존적 영남 퍼주기식 경부축 경제성장정책이 선택되어졌다.

   거기다 친일부역배 독재자 박정희의 꼼수로 인한 장기집권의 일환인 정략적 지역소외가 가세해


급기야 지역격차는 심화되고 고착되어 버렸다.


이리하여 영,호남간 대립은 일상화되었는데...  곧 망국적 지역주의라고들 한다.

'우리가 남이가,  기왕 얻은 거 그대로 지켜내야 한다'는 영남 지역주의와

'우리가 다르냐! 왜 정당한 몫을 되돌리지 않느냐?! '라는 호남 지역주의의 대립을


한국사회는 지역감정, 지역정서, 지역차별, 망국적 지역주의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영호남 대립을 단순한 감정이니 정서니  혹은 정치적 색깔로만 다루는 것은 엉터리 역사인식이다.


정치외, 경제, 사회, 문화, 언론, 지식과 얽힌 복합적 관계이며 일상적 이슈이다.


이러한 한국사회에서 변방인 호남인들은 평상시에도 불리한 사회간접자본들 때문에 반 세기 넘게 불이익을 강요당하며

호남 몫이 영남에 투입돼 파행적으로 고착된 탓에 희생을 강요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즉 호남에서의 삶, 호남인으로서의 태생 자체가 영남에서의 삶 보다 사회적 비용이 더 들고 불리하다는 것이다.


호남의 몰표는 이런 불공평함을 적극적으로 교정하라는 열망인데,  이 열망을 등지고 몰염치하게도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인간이 민주화가 뭔지 알 만한 노무현이 택한 노선이 지역주의 양비론이다.  운동권이 택한 노선이기도 하고 좌파들이 택한 노선이기도 하다.


지역주의 양비론은 호남 지역주의를 영남지역주의와 동급으로 다뤄 '지역주의는 나쁜 거잖아!  모두 닥치고 조용'이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결국 기득권을 가진 영남만 만족하는 지역주의 양비론은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영남편들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가?



'72년도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었는데 호남고속도로는 2001년도에 완공됐다고 하지만서두 그럼에도 고속도로 지선으로 경부고속도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왜소하고 초라하다.  거의 1세대 뒤쳐진 SOC의 수혜가 경제학상의 산업연관효과로 따지면 천문학적 차이로 귀결된다.


한일합방전후의 영호남의 총체적 생산력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면 현재는 거의 더블스코어로 격차가 생겼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남인이 호남인보다 부지런하고 머리좋고 수완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선민의식이나 유사인종주의적 편견에 불과하다.



따라서, 호남인으로서 문재인류나 노무현, 노빠들, 좌파에게 우호적이며 지지하는 입장이라면

일제강점기때 약자인 동포를 짓밟고 강자에게 빌붙은 친일부역배와 다를 바 없는 영남패권주의자를 지지하는 것과 다름 없다.


계급적 이해관계 때문에 좌파를 지지하는 것보다 지역적 소외가 훨씬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다.  계급적 이해야 개개인의 차원이지만 지역차별이라는 이해는 공간과 결합돼 임의로 끊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의 계급적 이해는 지역적 이해보다 선명하지도 않다.


즉, 호남인이 노무현류의 지역주의양비론자를  지지한다는 것은 자기 몫을 찾기는커녕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르는 어리석은 행태라는 얘기이다.  역사의식이나 호남인이라는 자아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자이다.  

오늘 이 시각에도 호남인이라는 자기정체성을 잃고 노빠짓꺼리를 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그 닭짓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의 영남패권주의가 만연하고 지속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문재인의 글을 통해 몇 가지 의미있는 소득을 발견합니다.

 

영남패권주의(정희준이 부정한개념을 문재인의 입을 통해 유통시켰다는 점친노(정희준이 부정한 그 개념)가 존재한다는 점을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하,원문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 형태로 줄이며 밑줄그으며 인용하기로 한다.)

 

영남에서 지지 받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이었고참여정부였습니다그런데 정작 호남에서는 영남 패권주의라고 비난받는다면그야말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화 세력이 다시 굳건하게 손을 잡을 때만이세 번째 민주정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호남만으로도 안 되고이른바 '친노'만으로도 안 됩니다.

 

 

 

형용모순적 글쓰기

 

벌레 파먹고 상처입고 설익은 사과를 스케치북에 그려넣는다그 못난이 사과를 어떻게 서술하는 지 아래를 읽으며 그려 보도록 하죠.

 

···정치인으로서당의 전 대표로서또 그 이전에는 대선주자로서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 한 번도 제대로 승리의 기쁨을 돌려드리지 못했··· 호남에 고립감과 상실감만 안겨드렸··· 강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고정권교체의 희망도 드리지 못했··· 당의 분열을 막지 못했고후보 단일화도 이루지 못했··· 반드시 이겨야 할 국면에서 분열로 인한 패배를 걱정하게 만들었···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저와 당의 부족한 점을 메우느라 정신없었던···

 

위와 같이 실컷 못난이 사과를 그려놓고서는

 

이렇게 오해와 불신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라고 말합니다못난이 사과를 그려놓고 일거에 그것을 오해라고 부정합니다.

이러한 형용모순적 글쓰기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또 구경할 수 있습니다.

 

 

저의 모든 과오를 짊어지겠습니다그러나 한 가지제가 가져갈 수 없는 짐이 있습니다.

 

모든 과오를 짊어지겠다고 한 후 과오인 짐 한 가지를 빼겠다고 합니다그러므로 모든 과오를 짊어지겠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 됩니다거짓말을 한다는 자각조차 없는 부도덕의 극치입니다.


노무현이나 문재인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입니까다름아닌 우리가 남이가똘똘 뭉쳐 기득권을 지켜내자라는 영남패권주의와, ‘우리가 다르냐차별말고 시정하라!’는 호남지역주의를 모두 잡음으로 여기는 입장즉 지역주의 양비론입니다.

호남 변방 소외민들의 동의없는 영남 편중 개발을 방치하고 묵과하는 것은 곧 호남인에게 덧씌워진 멍에와 질곡을 방치하고 부당한 영남기득권이 유지되도록 결과하는 명백한 호남차별입니다그런데···

 

저에게 덧씌워진 '호남 홀대' '호남 차별'이라는 오해···그 말 만큼은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치욕이고 아픔입니다

 

라며 오해라고 말하는군요오해란 어떤 자료가 유통과정에서 그릇되게 소비된 상태입니다위에서 지적했다시피 호남차별은 오해가 아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문재인은 과거의 자기를 부정하는 행태를 반성하고 초월해야 하는데도 수치를 모르고 호남차별 한 적 없다고 거짓말하고 있습니다.

 

 

호남의 4.13 정치 지형의 대립구도를 문재인은 다음과 같이 파악하는군요.

 

호남인에게 지역 정당이란 불명예를 안기면서까지 그들만의 영달을 쫓는 세력

VS.

신성한 호남 땅···을 사수하는 새누리당과 맞서 정권교체 해낼 정당 더불어 민주당의 모든 호남 후보들

 

즉 위와 같은 대립구조에서 문재인이 선택한 후자문재인 안목으로는 신성하고 순결한 후보들을 정치의식 수준이 문제 있는 호남 사람들이,

순결하고 신성한 노무현이나 문재인류를 더럽게 분칠하는 거짓말에 휘둘리는 존재로서 오해나 모욕을 가한다는 투의 천박한 수준의 이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호남민심에 대한 대단한 모욕입니다과거의 모욕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덧붙이는군요.

 

 

결론적으로 노무현과 문재인은 ‘(은폐된 투항적영남패권주의자입니다거짓말쟁이라는 것지독히도 엉망인 한국어 구사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빠진 노빠들이 지지하는 문재인의 수준.... 딱 그 수준입니다.

 

 

 

-----------------이하 문재인의 오락가락 전문 ----------------

 

다음은 문 전 대표의 '광주시민들께 드리는 글전문이다.

광주시민 여러분뵙고 싶었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언제라도 이곳으로 달려오고 싶었는데말리시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정치인으로서당의 전 대표로서또 그 이전에는 대선주자로서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호남 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밑거름 삼았던 제가여러분에게 한 번도 제대로 승리의 기쁨을 돌려드리지 못했습니다.

호남에 고립감과 상실감만 안겨드렸습니다강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고정권교체의 희망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당의 분열을 막지 못했고후보 단일화도 이루지 못했습니다반드시 이겨야 할 국면에서 분열로 인한 패배를 걱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실망을 하셨는지잘 알고 있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못난 문재인이 왔습니다여러분에게 직접 야단을 맞고직접 질타를 듣기 위해서안 된다는 당을 설득해 이제야 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그리고 그간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여러분의 분이 풀릴 때까지제 얼굴 맞대고호되게 꾸짖어 주십시오.

저와 당의 부족한 점을 메우느라 정신없었던 사이호남 분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이렇게 오해와 불신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이제라도제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죄송합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그러나 이제제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우리 더불어 민주당은 과거의 혼란을 딛고 새롭고 유능한 인재들로 넘쳐 납니다저에 대한 섭섭함 때문에이 유능한 인재들의 면면을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제가 다 담지 못했던 호남 분들의 요구와 열망을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국회에 퍼 나를 인재들입니다.

차기차차기 이 나라를 이끌어가기에 충분한 인재들이 호남의 더불어 민주당 후보들 속에 있습니다정권을 탈환하고대권을 꿈꿀 만한 훌륭한 씨앗들이 뿌려졌습니다.

더불어 민주당은 이렇게 새로운 인재들로 다시 태어났습니다호남 기득권 정치인의 물갈이를 바라는 호남의 민심에 우리당은 호응했습니다.

이 분들에게 기회를 주십시오자신 있게 기대감을 가지고 힘을 주십시오더불어 민주당 기호 2번의 새롭고 활기찬 후보들이야 말로호남의 정신과 열정을 한 지역에 가두어 두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장시켜 갈 인재들입니다.

호남 정신의 지평을 전국으로 넓히면서 지역 경제문화에 새 바람을 이끌 주역들입니다그런 전문성과 인적 인프라를 충분히 갖춘 인재들입니다.

시민 여러분.

호남을 볼모로 자신의 기득권에만 안주했던 구시대적 정치호남 민심을 왜곡해서 호남을 변방에 가두어 두려는 분열적 정치인여러분들은 그런 정치인들에 대한 강한 교체 의지를 가지고 계실 겁니다더불어 민주당의 후보들을 통해 바로 그런 구시대적분열적 정치인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호남인에게 지역 정당이란 불명예를 안기면서까지 그들만의 영달을 쫓는 세력이 이 신성한 호남 땅에서 더 이상은 발붙이지 못하도록더불어 민주당의 모든 호남 후보들은 끝까지 싸워 나갈 것입니다시민 여러분이 그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광주시민 여러분.

 

저에 대한 여러분의 실망과 섭섭함에도 불구하고더불어 민주당에 대한 여러분의 애정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아무리 부족하고 서운한 점이 많아도그래도 새누리당과 맞서 정권교체 해낼 정당은 우리 더불어 민주당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애정에도 불구하고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저는 미련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습니다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습니다.

호남의 정신을 담지 못하는 야당 후보는이미 그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호남의 뜻이라면저는저에 대한 심판조차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호남 유권자 여러분.

저의 모든 과오를 짊어지겠습니다그러나 한 가지제가 가져갈 수 없는 짐이 있습니다.

저에게 덧씌워진 '호남 홀대' '호남 차별'이라는 오해는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그 말 만큼은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치욕이고 아픔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모욕입니다저와 당과 호남의 분열을 바라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휘둘리지 말아주십시오그것만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엄혹했던 5공 군부독재 정권 시절부산의 민주화 운동은 '5월의 광주'를 부산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87년 6월항쟁 전야 5노무현과 제가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연 광주 비디오 관람회를 보려는 부산 시민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 열기는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부산 가톨릭센터는 명동성당처럼 부산 6월항쟁의 중심이 됐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민주화는호남과 호남 바깥 민주화 세력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3당 합당으로 호남이 고립됐을 때도그에 반대한 영남의 민주화 세력은 지역 내에서 전라도니 빨갱이니 핍박받고 고립되면서도 호남과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결합이 김대중 정부를 탄생시켰고노무현 정부를 탄생시켰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노무현과 제가 걸어온 길이었습니다영남에서 지지 받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이었고참여정부였습니다그런데 정작 호남에서는 영남 패권주의라고 비난받는다면그야말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참여정부가압도적인 지지로 출범시켜준 호남의 기대에 못 미친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대북송금 특검도 있었고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도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광주가 정치적인 고향'이라고 말할 정도로 호남을 사랑했어도호남사람처럼 호남의 정서를 알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호남이 듣기에 섭섭한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결단코 호남 홀대는 없었습니다오히려 역대 어느 정부보다 호남을 배려했다고 자부합니다.

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화 세력을 이간하여호남을 다시 고립화시키려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휘둘리지 말아주십시오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화 세력이 다시 굳건하게 손을 잡을 때만이세 번째 민주정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호남만으로도 안 되고이른바 '친노'만으로도 안 됩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호남 바깥에서는 잘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이번 총선에서도 부산에서경남에서울산에서대구에서경북에서강원에서 더 늘어난 승리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호남이 손을 거둬들이지만 않는다면정권교체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광주시민전남북 도민들께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총선이 끝나면 곧바로 전당대회를 통해 더불어 민주당 지도부도 새롭게 선출됩니다물론 저는 앞으로 당권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더 이상 국회의원도 아닌 만큼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서 정권교체의 역량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광주시민 여러분저를 믿고 더불어 민주당에게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주십시오.

자주 오겠습니다총선이 끝나면더 여유로운 신분으로 자주 놀러 오겠습니다정치인 문재인이 아니라 미운 정 고운 정다 든 못난 아들놈처럼 맞아 주실 거라 믿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사랑합니다.

프레시안]문재인은 충장로에서 무릎을 꿇어라! 억울하더라도…

우선 글을 비평하기 전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제완은 영남패권주의자이다.

 

김제완의 그릇된 인식

 

김제완의 이념적 지향을 살펴보기 위해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료들을 인용하기로 한다.

(이하 김제완의 서술을 밑줄로 인용함)

진실의 언어는 그렇게 거칠지 않다김욱 교수의 문제 제기 방법이 너무나 공격적 도발적이기 때문이다노무현이 영남 패권주의자라는 말조차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나아가서 전두환의 영남 패권과 동일시하는 김욱 교수의 발언에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된다토론의 격렬함은 현실의 반영이다.

 

영남 패권 논란을 이제 중지하고··· 그리곤 영남 패권이 호남 민심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은 결과라면 나는 내부에서 찾아보겠다보수화모욕감,당파성이란 세 개의 키워드로 호남 민심을 규명해 보려 한다.

 지켜볼수록 피곤해지는’ 초점을 벗어난 소모적인 영남패권주의 논쟁을 중지시키고 호남민심을 규명

하는 것···일까?


마치 중립적 관점을 유지하는 듯 서술하는...김제완으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한 주된 동기는 무엇일까

 

김제완은 한국사회의 질곡에 대한 영남패권주의 담론을 평가절하하고 아울러 호남 민심을 한갓 감정적 차원으로 거론함으로써 호남 민심을 왜곡하려 한다.

 


김제완이 거론하는 세 가지 키워드(보수화모욕감당파성)와 관련된 문장들을 인용하며 들여다 보도록 하자.

 

1. 보수화 관련 서술

호남이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대통령을 원한다. '광주 정신'에 의해 억눌려왔던 호남인들 일부 보수 성향이 커밍아웃하는 것 아닐까.”

 

김제완의 진단인 보수화가 맞다면 더민주당에 대한 호남민심의 이탈이라는 변화의 선택은 급진적 선택이 된다이는 보수적 성향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선택이다.

 

2. 모욕감 관련 서술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 사람의 자존감을 다치게 했다이렇게 상처 주는 말들은 아주 오래 간다.

 

현재 호남민심은 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다김제완은 호남인들의 집단 의지를 감정적 배설로 호도한다그것이 진정 단순한 감정적 배설이나 반응이라면시간 경과에 따라 그 상흔이 희미해지거나 소멸했어야 한다가해 주체 노무현이 사라졌으므로 모욕감은 해소되거나 약화되어야 자연스럽다그러나과거와 달리 점점 불타오르는 반문재인 정서의 추동력의 배경을 단순한 감정적 반응인 모욕감이라 이해하는 안목은 절대 비현실적이다.

 

호남의 반문재인 정서는 다름아닌 대의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분노요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의 반민주적인 배신에 대한 극도의 혐오이며, ‘우리가 남이가의 영남패권주의와 우리가 다르냐의 호남지역주의를 모두 소음으로 여기는 지역주의 양비론에 대한 분노즉 반헌법적 작태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천명이라고 봐야 옳은 것이다.

 

3. ‘당파성’ 관련 서술

당파성이란 파당성과 다름없는 말로사회의 여러 복합적인 상황을 오직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태도이다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온 집단에서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된다노동 계급뿐 아니라 여성장애인도 이런 방법론적 편향을 사용해왔다김욱 교수의 영남 패권 주장이나 '호남 자민련여론도 호남 당파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잘 이해가 된다.

 

당파성을 키워드로 하는 식민사관즉 제국주의 사관이 연상되는 서술이다이조 시대의 무능한 지배계층의 이전투구식 당파싸움을 한민족의 민족성으로 대치시켜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려 했던 반민족적 역사학이 취하는 논리 그대로이다.

김제완의 인식여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호남인들의 지금까지의 정체성과는 너무 동떨어진 반민족적인 식민사관인 당파성을 호남 민심과 연계하여 이해하고 있다. ‘정당한 몫에 관한 얘기인 영남패권주의 논의를 중지하고 호남 민심을 한갓 진영논리에 매몰된 부당한 몫 챙기기라고 매도하는 김제완의 태도는 영락없이 약자를 등지고 강자에 빌붙은 친일부역배의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영남패권주의 부정적 경향의 한 단서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그런 정서(반문재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그렇게 하지 않으니 더 확대된다."

 

반문재인 정서에 대한 원인을 따져 단순한 감정적 배설인지 혹은 합리적인 의사 표명인지를 따져 묻지 않는 태도는 영남패권주의의 부정적 경향의 한 양상이다작금의 한국사회에서 공정함정의를 따지며 살라고 훈육하는 것은 곧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혀 살라고 가르치는 저주와 다름없다.  이것이 현실이다안타깝게도 영남패권주의가 작동하는 그 혐오스러운 세례를 김제완이 흠뻑 받았음에도 그것을 자각하지도 못한다.

 

이런 류의 맹목적 친노가 더민주당을 타락시키는 더러운 연료가 된다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의 정치적 타락은 비판적 지지를 견지하지 못하고 광신도가 돼버린 맹목적 노빠가 크게 기여한 것이다.

 

 

이렇게 편파적이며 굴절된 안목의 글이 프레시안에 실렸다는 것은영남패권주의에 대한 기왕의 프레시안의 시도가 진지함이 아닌 일회적 흥미본위의 소비적 태도였지 않나하는 우려가 기우일까?

김욱 서남대 교수

- "영남인들이 폭압적인 정치권력을 통해 호남인들을 차별·배제하는 전략으로 전국적 규모의 경제적 지배 관계를 확대 재생산하고 이러한 지역적 지배 관계에 대해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은밀하게 이데올로기적 동의를 얻어내는 극우 헤게모니“

 

 


활강 이경렬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영남출신이라는 요소 하나만으로 그들이 기득권을 쉽게 누릴 수 있도록 <불공정 경쟁 조건>을 짜놓은 체제이며, 또한 그 체제가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력조차 말살해버리는 새로운 가치체계까지를 생산해낸 <이데올로기>이다.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그 사람의 영남출신 여부와 전혀 상관없이 아무 지역 출신이더라도, 그가 {예컨대 정치 권력층, 정부 관료, 행정부 고위층, 사법부 종사자(특히 변호사), 전체 공무원, 재벌, 대기업 임원, 기업가, (한)의사, 경제적 기득권층, 은행과 금융기관 임원, 정당인, 언론사(신문사, 방송사, 유수잡지사) 사주, 편집진, 기자군, 방송국 임원, 드라마피디, 시사교양연예피디, 작가(소설, 드라마, 교양물) 대중음악인, 고수입 연예인, 고전음악 영화 연극 공연 미술 등 단체의 리더그룹, 시민단체 리더그룹, 노동계 리더그룹, 기독교 신교와 구교 지도부, 신부, 목사, 각 종파 원로, 사학재단 이사진, 모든 대학교수군, 사회과학, 자연과학, 테크날러지 등의 연구직 종사자, 초중고교 임원과 보직교사 등} 현재 대한민국 사회 체제를 견고히 떠받들고 있는, 즉 서민과 기층민을 제외한 사람으로서 이 사회의 안정과 질서 유지에 실질적 리더 혹은 오피니언 리더로서 일반 서민보다 더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공히 인정받고 있다면, 그 사람들 개개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지위로 말미암아 이 영남이데올로기 체제 속에서 그만큼 덕을 봐왔던 자이며, 영남패권이데올로기란 체제가 대한민국에서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부지런히' 기여해온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 500년간 한반도를 지배했던 무능한 양반들의 흔적들···,

첫 단추를 잘못 꿴 이승만의 민족정기 훼손, 경제개발계획의 실행을 좌초시킨 친일부역배 박정희의 쿠데타, 이어진 정상배들과 경제학도들이 추동한 파행적 경제성장으로 빚어진 한국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그 과실을 탐하며 양극화를 조장·고착시키고 있는 영남패권주의,

 

헬조선 ···

 

가치전도의 일상화와, 자원 낭비로 귀결되는 극심한 기호적 소비’,

사회적 자본의 편재(偏在)로 인한 지역격차 및 폐쇄적 계층구조의 고착···

 

 

 

정상배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한국의 정치지형도 자본주의라는 제국의 일원으로서 영락없이 정치자영업자들이 득세하여 유권자의 선택의 폭이 좁아졌고 투표할 때만의 정치참여가 된 지 오래이다. 정치가들의 어깨는 수많은 유권자들의 기대, 즉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무거운 가치가 짐지워져 있는 틀림없는 공공재이다. 그러므로 정치판에서의 도덕적 흠결에 대한 관용은 사치이다.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고 고학력자가 넘치며, 대체재인 정치신인들이 넘치므로 더구나 그러하다.

 

정상배의 소비는 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과거의 우리(조상)가 저지른 잘못으로 오늘 우리가 질곡에서 허우적대고 오늘·여기의 잘못된 선택이 미래의 우리(후손)에게 당연히 파장을 미칠 것이므로 한 표 한 표는 그야말로 신성한 가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종인의 악어의 눈물

 

김종인류가 과거의 허물을 사죄한다며 5.18 묘역에서 무릎을 꿇었으나, 그 진정성이 관철되는 것일까?

 

정당하게 탈당절차를 밟고 신당을 창당하여 다른 길을 걷는 경쟁정당에게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모습, 이런 모습이 국제관계에서는 국가 자주권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양상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미화된 한국식 자본주의의 부정적 양상에 한 몫 거든 김종인의 반역사적 자취, ·를 넘나들며 양지만을 좇은 전력은 친일부역배들의 기회주의적인 처신과 대동소이하다.

 

 

 

범민주세력의 바이러스와의 연대는 불정의

 

의석수의 우열만 앞세워 연대를 강요하는 김종인류는 다수에 주눅들어 경쟁을 포기하고 투항하는 친일부역배의 사대주의, 패배주의와 다를 바 없으므로 새누리당으로 가든지, 폐당해야 한다. 또한 야권연대는 사실상 소수정당의 의미를 반영하기 위한 비례대표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며, 유권자의 선택을 임의로 배제하는 반민주적인 것이기도 하다.

 

, 야권연대의 후보자 옹립은 수의 다과가 기준이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남이가우리가 다르냐를 구별하지 못하는 지역주의 양비론에 매몰된 더민주당은 영남패권주의 정당의 입지를 결과적으로 강화할 뿐이며, 범민주세력의 도덕성까지 훼손하는 범민주진영의 바이러스적 존재라 아니할 수 없다.

 

 

 

김종인의 반역사적 자기부정

 

호남의 정체성은 호남이라는 물리적 공간과의 결합보다 정의로운 가치와 더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따라서 우리가 남이가의 지역주의와 우리가 다르냐의 지역주의 모두를 부정하는 지역주의 양비론자가 호남과의 지역적 연고를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자기부정이며, 기회주의적인 처신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부도덕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가증스런 한겨레

 

계약은 대등한 당사자끼리 하는 것이며, 자기부정을 내용으로 하는 노예계약은 사이비계약이다. 한일합방은 계약형식을 취했지만 계약의 파기를 원하는데도 해지할 수 없는, 자기부정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이므로, 원천무효인 반인륜적, 반사회적, 반민족적, 반시대적 계약이었다.

다른 동포를 질곡으로 빠뜨리고 일신의 영달만을 도모하며 호의호식한 친일매국노들이 오늘 대한민국 곳곳에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친일부역배인 독재자 박정희는 노동자와 서민의 희생을 토대로 극한의 수출주도형 불균형 경제개발을 꾀하여, 대일·대미 종속적 자본주의를 창달, 오늘 날 극심한 양극화와 지역차별을 고착시켜 놓았다.

 

 

 

동의없는 동·서차별, 교정되지 않는 동·서격차

 

변방인(영남외 국민들, 촌락민)이 편파적인 지역개발을 언제 동의했던가? 동의한 적 없다. 만약, 그것을 추인했다손 치더라도 현재 지역균형과, 정당한 몫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의 교정을 외면하고 있다.

 

 

 

변방인들이 '우리가 다르냐!'라며 분균형의 교정, 정당한 몫에 대해 소리높여 외치는데도, '우리가 남이가'라며 똘똘뭉쳐 변방인의 질곡을 외면하며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악하고 있다.

 

 

 

벌써. 불공정한 상태가 반세기에 가깝다. 여기·지금 있었던 그 가여운 영혼들이 차별 속에서 거의 일생을 보낸 것이다. 같은 동포들을 등치고 이지메하는 것을 조장, 묵인하는 불의가 판치는 한국사회, 새삼스럽게 대한민국이 정의로운 사회인지 되묻게 된다.

 

 

친일부역배와 영남패권주의는 쌍생아

 

친일부역배와 영남패권주의는 사상적 기반이 같다. 약자를 등치고 강자에게 빌붙어(사대주의, 기회주의),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극단적 이기주의) 전근대적, 반사회적, 반인륜적, 반민족적, 유사인종주의적 패륜이라는 점에서 쌍생아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파행적 자본주의를 심화시킨데 크게 기여한 반민족적, 반민주적인 기회주의자 김종인이 되려 큰소리를 치는 가치전도적이며 퇴영적인 모습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는 야만적 언론환경과 사회야말로 극명한 영남패권주의의 생생한 증거이다.

가증스러운 한겨레, 오마이뉴스

 

이른바 진보매체라는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친일부역배와 유사한 친노, 더민주당, 한국좌파를 편파적으로 지지하며 영남패권주의 척결를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의사친일부역배를 응원하므로써 반역사적이며 반민족적이며 반헌법적이며 반시대적이며 전근대적인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변방인은 오늘의 이 침묵과 방관을 분명히 기억하고 심판해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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