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패권주의는 지배의 동적 메커니즘

영남패권과 각 지역민의 입장 차이는 어떻게 구성되나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인식과 현실 감각이 무딘 사람들이라고 해서 적어도 3공 박정희 독재정권 이후 지속되어온 이 나라 안의 전분야에 걸친 영남 권력 독점적 현상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 말의 쓰임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은 이 용어가 도발적인 느낌을 줘 섬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겉으로 드러나는 거부감이라는 일차원적 감정만이 아니라, 영남의 지배권을 공히 인정하면서도 각자의 <입장 차이>로 생기는 <세 가지 유형의 복합심리>가 있다.

 

영남인으로서는 '우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도리어 그 쪽에 해가 미칠지 모른다'라는 으름장, 비호영남인으로서는 '이들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실익은 커녕 호남의 고립과 사회적 혼란만 초래할 것이므로 제3자로서는 개입을 자제하고 관망하는 게 났다'라는 기회주의적 자기 실익 챙기기, 그리고 호남인으로서는 전 사회로부터의 고립 가능성이라는 위의 <패배주의적 사고>와 함께, '사회적 분란의 빌미 야기로 말미암아 제3자인 비호영남인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라는 <배려>의 마음이 깔려 있다.

 

 

<패권>의 의미 규정

 

이렇게 영남패권주의 거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감추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문제점은, 이들이 패권에 대해 단순히 <늘 과욕을 부린다, 나보다 우세한 파워를 향유한다, 그래서 봐주기는 좀 꼴사납다> 정도의 매우 나이브(naive)한 인식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패권>의 요체는 바로, 패권세력이 <타자의 몫을 빼앗아간다>에 있다. 어떤 지배세력(dominant power)이 스스로의 능력이 우세한 이유로 나보다 더 많은 양을 소유할 뿐, 나의 몫을 향해 곁눈질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저 우위와 우세의 <상태>만을 말할 뿐이다. 그러나 패권(predominant influence over others ; hegemony)이란 능력이 우세한 상태만이 아니라, 현재 가진 물리적 힘의 우위를 내세우는 집단이 그것을 협박의 무기로 삼아 타자의 몫을 부당하게 강탈, 탈취해가는 <조건>을 필수 요소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남패권주의>의 핵심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영남의 우위라는 <정적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지배하므로써 그 지역의 몫을 강제로 빼앗는다는 <동적 매카니즘>을 일컫고 있다.

 

(여기에서 패권주의 용어에 대한 논란을 정리하는 뜻에서 말한다면, 영남부족주의, 영남지상주의, 영남중심주의 등등은 위에서 논한 패권주의의 핵심 요소인 강제적 <탈취>라는 의미를 함축하지 못하므로 모두 부적절한 어휘라 하겠다.)

 

이 조그만 인식의 차이('우위의 상태''탈취의 조건' 사이의 차이)가 현실에서는 엄청난 사회 현상의 결정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확인키로 한다.

 

 

<비호영남>이 갖는 개념 인식에서의 혼란

 

호남인 집단이나 비호영남 집단은 이제까지 커다란 착각 속에 지내온 셈이다. 특히 비호영남인들을 일차적 희생양이 호남인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적게 깎여 나간 자신의 몫을 두고, 그만 안도하고 자족하는 자기 기만 속에 안주해왔다. , 부당하게 소외당해 왔던 것은 일차적으로 호남이었으니 비호영남은 이제 자신이 과연 영남에 이은 <두 번째 우세>지역으로서 가해자의 입장에 서는지, 호남에 이은 <두 번째 순번의 피해자>인지에 대한 자문을 하며 혼란을 맛보는 거다. 이 인식의 혼동의 원인은 바로, '영남이 패권을 가졌으므로 영남 외의 <모든>지역은 공히 피해자일 수 밖에 없다'는 방정식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이 없음에 기인하는 것이다. '패권이란 뺏음(그 이면은 빼앗김)이다'라는 개념이 없는 경우, 어이없게도 자신의 지역이 두 번째 <우세>지역으로서 굳이 피해 당사자가 아닐거라는 편의적 설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비영호남인의 정치공학적 위치 선정은 꼭 위에서 말한 개념 이해 부족에 의한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개념상의 혼란에 안주한다는 것이 사실은 그들 당사자가 스스로 불러들인, 강자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계산적이고 기회주의적 처신의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위치 설정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두 번째 우세'라 자임하는 것은, 영남으로 하여금 비호영남 스스로가 호남이라는 피해 당사자와 같은 편에 서는 것이 아님을 인정해달라는 호소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두 번째 순위의 피해자가 됨을 영남을 향해 인정하게 되면 그것은 곧 호남과 같은 정서를 나눔으로 보일 것이므로 패권자인 영남과는 무척 불편한 관계가 이뤄지고 말 일이다.

 

그리고 '두 번째 피해 당사자'라는 위치 선정은 이번엔 호남인을 염두에 둔 이름이 된다. '두 번째 우세'라는 정체성은 당연히 호남에게는 비우호적 감정을 유발시킬 일이다. 그래서 영남을 향해서 견지했던 정체성이 호남을 향해서는 이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두 번째 피해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을 끌어오는 것이다. 이것이 일부 비영호남인의 순수한 인간적 면모가 아니라 호남과 영남 모두에게 비호남인 전체의 기회주의적 속성의 표현으로 다가오고 말 것임은 또한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비호영남이 갖는 서로 대립될 법한 두 가지 상충하는 위상을 같은 사람(집단)이 상황에 따라 표리부동하게 오락가락 처신하는 방식이라고 단순하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비호영남 지역민 내의 일정한 집단은 내내 '두 번째 우세'임을, 그리고 또 다른 집단은 변하지 않은 정체성으로서 '두 번째 순번의 피해자'임을 계속 견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비호영남 내에는 뚜렷이 구분되는 이 두 그룹이 병존하고 있으나 우리 눈에는 자기 정체성을 편리에 따라 수시로 뒤바꾸는 사람들만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여기에선 선의의 비호영남인마저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는 비호영남인들에게 가려 함께 매도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비호영남인 중에 '두 번째 우세'로서 스스로를 자리 매김하는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인데, 이 현실은 사실상 영남패권주의의 공포스런 위력과 또 그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대부분의 비호영남인들의 뇌리마저 지배하고 있는가를 증언하고 마는 것이다. , 비호영남인들의 '스스로 알아서 기기'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음이다.

 

이와같이, 비호영남은 <패권>의 의미가 <뺏음/빼앗김>이라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우위/우세>의 상태라고 오해함으로써 자신의 <피해자>로서의 위치를 깨닫지 못하고 산다. 그러나 그들의 인식 부족을 불러들인 심리를 한풀 벗겨보면 <두 번째의 우위> 라는 정체성 규정과 <두 번째 순위의 피해자>라는 정체성 선정 사이에서 맛보는 곤혹스러움을 희석시키기 위해, 그 개념상의 혼란을 스스로 불러들여 안주하기를 선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미묘한 과정은 결국 패권세력인 영남에 대한 눈치 보기에서 나온 처세술로서 우리 사회의 영남패권이데올로기가 비호영남인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비호영남 일반>에 대한 호남의 태도

 

반면, 호남인들은 정치 경제적인 물적 토대에서의 빼앗김은 물론 사회문화적인 차별까지를 노골적으로 받아온 관계로, 그 깊은 상처로 인한 패배주의의 그림자가 가슴에 드리워졌을 거라는 유력한 유추를 허용하더라도, 저항의 화살이 오직 영남에게만 향할 뿐 비호영남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의 태도를 설정하겠다는 것인지 그 개념이 아직 모호하다. 그들은 비호영남인들과 마찬가지로, 패권주의로 인한 피해가 오직 자기네 호남 지역만일 뿐, 알고 보면 비호영남인도 자신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처지에 함께 놓여 있었다는 사실에는 미처 인식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패권 개념에 대한 인식의 오류가 발생시킨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패권의 주체는 분명 딴 지역이 아닌 영남임을 잘 알고 있되 그 피해가 오직 호남 자신에게만 미친다고 믿는 것은 분명히 패권에 대한 인식의 오류다. 그것은 당연히 패권 주체가 아닌 <모든> 지역의 '빼앗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본질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호남인의 심리 기저에는 자신들의 영남패권주의에의 저항이 사회 갈등의 첨예한 표면화와 그 증폭으로 결국 나타나고 말 것이므로 이 혼란은 필히, 가해와 피해 지역을 벗어난 '중립지대' (그들의 착각에 의한 인식)에 있는 <비호영남인>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입힐 것이란 우려를 포함하며, 따라서 그들에 대한 깊은 배려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피해자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비호영남인에게, 자신이 당해왔던 영남의 패권적 행위를 닮은 공세적 저항을 취함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본의 아닌 폐를 끼친다고 여기면서 그간 참고 자제해왔다면, 그것은 대단한 인류애의 발로로서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비호영남인들과 마찬가지로 호남인도 여기서 똑같은 개념 인식에의 오류를 범해왔던 허물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나중에 논하겠지만) 미필적 고의에 의해 비호영남인과의 불신과 불화를 알게 모르게 키워오게 된 이유가 된다.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비호영남>의 대응 자세

 

다시 돌아가서 비호영남인군()의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대응 방식을 좀 더 살펴보자. 설사 비호영남인 중에 영남패권세력에 의한 자신들의 피수탈적 처지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그룹이 있었다 할지라도 어차피 호남인에 비해서는 그 피해의 강도가 훨씬 약할 것이므로, 스스로 호남인에 앞서서 문제 제기나 저항을 결단할 동기 부여는 충분히 갖지 못했으리라고 본다. 게다가 이들 선각자적 소수에게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그들 <내부>에 떠다니는 호남에 대한 <은근한> 혐오와 경원의 정서이다. 여기에서 <은근함>이란, 약자를 호위하는 제스처 때문에 그만 강자로부터 자신이 한통속이라 점찍히고 말 것에 대한 두려움을, 선행적으로 말소시키고자 하는 간접 표현이 되는데, 그것은 사실상 약자가 선택하는 애처로운 정서이기도 하다. 약자가 또 다른 약자를 미워함으로써 강자로부터의 추궁을 면하겠다는 처신인 것이다.

 

그러나 그 정서가 애처로운 표현일 망정 일단 집단적인 현상이 될 때는 역시 <차별>이란 본질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비호영남의 집단적 정서로부터 한 비호영남인이 개인적으로 탈퇴하겠다는 것은, 그 자신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가장 가까운 친지들이 항용 견지하는 무의식과의 결별이고, 그것은 곧 그들 친지들과 공유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코드를 내던짐으로써 인간적, 개인적 유대와 교류까지를 모두 포기하겠다는 사회적 자해 행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자신의 사회적 자산을 다 내다버리는 이러한 실익없는 어드벤처에 목을 맬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소수의 깨인 비호영남인들 능력만으로는 다수가 지지하는 호남에의 혐오 정서를 뒤엎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영남>의 대응 자세

 

영남인들이 <영남패권주의 논의>을 대하는 입장이란 뭔가? 감정상으로는 극심한 혐오요, 정신적으로는 <피해의식>이다. , 실제 피해의 크기에 비해 스스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피해의 양이 워낙 커서 그 사실이 못내 불공정한 처사로 보이고,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불공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무력감에 괴로워한다는 병리적 현상이다. 이것은 망상의 일종이다. 영남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수십 년에 걸쳐 이 사회의 패권카르텔을 형성해왔다는 점을 잘 인식,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적 개인>으로서의 자신만은 그 수혜대상 범위로부터 늘 바깥에 머물러왔다고 강변한다. 이런 주장을 그대로 따를 경우, 논리적으로는 모든 이가 모든 타자를 향해 그들의 책임을 묻는 양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상의 가정일 뿐, 어차피 논리를 결한 그들 당사자의 면책 노력은 결국 이기심의 극적인 발현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일단 자신과는 직접 연관이 없어보이는 극소수 권력층에게 그 화살을 돌린다. 일단 그것으로 일부 변명이 되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 명쾌히 설명되어질 것이 아님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남인이 다음에 선택하는 전략은 대별하여 두 가지인데 (영남패권이 정당하여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우기는 초극단의 예는 논의에서 제외함) 하나는 방어적 형태로서 앞에서 언급한 <피해의식>의 표현이고 또 하나는 공격적 형태로서 <으름장 놓기>이다. 첫 번째는 영남의 패권으로 이득을 챙긴 집단이 결코 영남인 일반만이 아니고 <타 지역>의 중상류 계층도 그 일원이므로 그들에 비한 자신의 수혜량은 오히려 약소하여 자기가 부당한 추궁을 받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범주의 영남인은 자연, 스스로 발견한 방어기제의 유용성에 흡족해하고 아예 심취해버리고 만다. (이것은 자기 변론이 아예 믿음으로 전이한 상태를 보인다.)

 

다시 말해,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강화하기 위해 그 기제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부여하는 나머지, 종내엔 그것을 실제 믿어버리고 현실로 체화시킨다는 것이다. 이 결과가 가져오는 것은 피해 의식의 자가 발전이다. 이 피해 의식이 있는 한 일단 면책의 사유가 되므로 그는 상상 속에서 꾸며진(fabricated) 분노를 증폭시키려는 병리적 행위를 스스로 그만두지 못한다. 이것이 초기에는 면책을 위한 합리화로써 시작했으나, 그 합리화 작업이 호남은 물론 비호영남으로부터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계속적인 의심을 받게 되자, 결국 방식을 퇴행적으로 이행시키고 마는 것이 <으름장 놓기>라는 형태다.

 

두 번째의 '으름장 놓기'는 말 그대로, 상대로부터의 추궁을 <공격적>으로 방어해내는 방식이다. 이 형식에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집단>적인 형태에서의 특징이다. 개인 차원에서는 사실 별 실효성이 없다. 일 개인은 그 사람의 전 인격으로 판정되므로 영남인이라고 해서 타지역인에 비해 우세한 사회적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영남인 일 개인이 이러한 방식으로는 타자에 비해 언제나 우위에 설 수 없으므로 자기를 방어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집단적으로는 결정적 효과를 보는 전술이다. 이것이야 말로 한 사회를 재갈물릴 수 있는 섬뜩한 파워요, 그 자체로서 패권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방식이 노출하는 약점은 얼마든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영남패권주의의 해법 편에서 논할 것임)

 

비호영남에 의한 대리전-그 추악한 부도덕

 

그러나 '으름장 놓기'가 꼭 바로 눈 앞에서 협박 공갈을 치는 노골성을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강자로서의 체신을 잃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며 자칫, 사실상 부실한 속마음을 다 내비치고 말 수 있는 위험한 전술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외면적으로는 관심없다는 듯 짐짓 딴청을 부린다. 대신 그들에 부역하는 비호영남에게 압력을 넣으며 뒤로는 면밀히 사태를 주시한다. 이 때는 오히려 영남의 의중을 미리 읽는 일부 비호영남이 앞에 나서서 극렬히 공박하는 경향이 있는데, 영남이 직접 나서기에는 약자인 호남을 또 다시 핍박하는 것으로 보일 것 같아 꺼려지는 일이지만, 이들 비호영남으로서는 외형상의 명분을 얻어 매우 떳떳하며 공정한 입장에 선 것으로 위장함으로써 자신만의 실익을 남몰래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실익'이란 심리적 안정이란 부분을 포함한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주구로서의 커밍아웃이 되는 것인데, 이들은 단순히 영남에 대해 충성 시위의 기회로 삼는 것만이 아니고, 실제 현실에서 영남패권이데올로기 아래 짜여진 기득권을 일반 영남인보다 훨씬 더 많이 누려왔으며 그만큼 현실적 예상 손실이 크게 걸린 집단이기 때문이다. 강자인 영남을 호위하기 위해서 역사적으로 피해자임이 분명한 호남에 공세적이라는 것은, 그들이 영남패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수혜를 받는 집단이다라는 설명을 빼고 결코 가능할 리 없다. , 으름장 놓기는 영남이 구축하고 관리하는 구조 아래 비호영남이 대리해주는 형식의 공격적 대응인 셈이다.

 

영남으로서는 이러한 충성어린 영남패권 부역자 비호영남인이 자신의 비도덕성에 운무를 피워올려 패악성을 은폐해주는 전위대 역할을 대신해준다는 게 매우 든든한 것이다. 이렇게 비호영남인에 의한 대리전이란, 외피만으로 보기엔 자발적이지만 실상을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남의 패권에 의해 <강요>되는, 그러나 공동(영남과 비호영남간)의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의미에서 양자가 비열한 야합을 하고 있는 추악한 비도덕을 과시한다. 이렇게 가해 주체 세력이 장막 뒤로 몸을 숨기고 패권에 아부하는 제2종 시민들이 대리전을 치름으로써 피아구분이 확연치 않은 시기가 계속될 때가 반영남패권주의 세력에게는 커다란 시련이 된다.

 

영남 주류는 매우 괘씸하다는 심기를 가눈 채 팔짱을 끼고 느긋한 교만의 시선으로 영남패권주의와 그 이데올로기 논의를 깔아보고 있다. 발끈한 심정의 관심 표명 자체가 그만 사회의 이목을 끌 수 있음을 앎으로 태연히 돌아앉아 짐짓 딴청을 피운다. 그러나 순수하고 치기어린 열혈 영남인은 결국 나름대로의 분통을 자제치 못하고, 외형상 자발적이나 내면상으로는 강요를 받는 비호영남인들과 야합하여 공세적 방어 전술을 구사할 것이다. 이와 같은 양상이, 지금으로부터 앞으로 얼마의 기간 동안 영남패권주의 사회적 논의 확산 과정이 겪는(그리고 겪을)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 체제

불공평의 규칙 : 계층의 상향 이동 차단

영남패권주의의 체제는, 상류와 중산층 이상만이 (영남민은 타지역인에 비하여 같은 소속 계층 안에서 상대적 우위를 누리지만) 기득권을 지속적으로 누리도록 짜여진 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그대로 투영되어 이 시간에도 살아 숨쉰다.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이 체제를 만들었고 지금도 계속 그것을 창달 심화시키고 있다. 이 체제 아래서 하층민이 상부로 이동하는 기회부여는 매우 제한적이다.

한국인이 계층 이동하는 유일한 통로는 학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중산층 비영남인과 기층민 영남인간의 경제사회적 우열은 당연히 존재한다.) 고등학교 출신과 대학교 출신의 봉급차가 지극히 엄격하다. 그 사람의 능력과 연계 없이 학벌 자체로서 봉급수준이 결정되고 만다. 그 봉급차는 재벌기업들이 시행하는 명문대 출신자에 대한 우대 채용 관행과 임금체계 적용에서 강화되었다.

2003년 현재 100대 기업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영남인 소유 대기업은 소위 명문대 출신을 싹쓸이 하고 그 중에서도 영남출신을 선택적으로 임원에 승진시킨다. 패권의식으로 무장된 재벌기업은 일반 기업과의 차등으로 인한 서열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사의 대졸 출신 사원에게 일반 기업 사원의 봉급보다 월등한 액수를 지급한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여 훈련시켜 유능한 사원으로 만들겠다는 기획이 아니라, 경쟁 기업에서 그 인력을 가져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위를 점하려는 채용 전략으로 신입 때부터 높은 봉급을 약속하게 된다. 따라서 대졸 출신 대기업 사원의 임금 수준은 일반 기업체 사원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근무 연한이 길어짐에 따라 대졸 사원간에도 능력과 직무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봉급차를 둬야한다. 이것은 이의 제기 영역 밖에 있는 관행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영남패권 이데올로기의 권위주의라는 가치체계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기업의 관행은 역시 권위주의 이념체계에 어울리는 하부 체제를 형성하게 되어있다. 대기업에서 관행을 만들었으므로 일반 기업에서는 그 체제를 그대로 모방한다. 대기업에서 상하의 관계를 유별했으므로 일반기업에서도 고졸 출신과 대졸 출신의 확연한 차등을 두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들이 대기업들로부터 차별되었으므로 아래 계층에 있는 고졸 출신을 차별해야만 그 만큼의 심리적 보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임금체제는 경영학적 마인드와 전혀 관계없이 사회의 가치체계에 의해서 절로 규정되고 마는 것이다. 그 권위주의 가치체계의 원류는 영남패권이데올로기이다. 이렇게 영남민이라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그가 속한 일정한 카테고리 안에서의 어드밴티지를 누릴 뿐, 학벌이라는 장벽마저 뛰어넘을 순 절대 없을 만큼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종적 횡적으로 불공정 경쟁을 강제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고졸 출신과 대졸 출신의 봉급 차이가 크게 벌어진 사회 시스템에서는 그 사람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계층 이동할 기회가 매우 제한돼 있다. 더구나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자가 그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 졸업시키고 그 아이가 부모가 가진 낮은 경제적 조건을 다 만회하면서 중산층 이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대단히 희소한 것이다. 영남패권 이념체계에 의해 구성되어진 대한민국 사회는 계층 이동을 쉬 용납하지 않고 서민과 기층민을 항구적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다. 이 체제는 불공정 경쟁이라는 규칙을 정식 규칙으로 채용한 시스템이다.

 

불공평의 항구화 기제

우리는 이러한 비생산적 시스템이 자본주의 발전 도상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칠 수밖에 없는 부정적 부산물이라며 그 의미를 애써 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시스템이 개혁의 대상이라는 점에는 일체 반론없이 동의하다가도 그것이 영남패권 이념체계의 산물이라고 논증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거나 아예 펄쩍 뛰고 만다. 그만큼 영남패권주의의 가치관이 이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들은 그 시스템이 영남패권이 아닌 어떠한 문화코드가 됐건 한국의 가치체계와 관련지어 설명을 시도한 적조차 없다.)

이 사회는 공평이란 개념을 잃어버렸다. 공평을 되돌려주겠다고 해도 그것을 되찾는 시도 자체가 불경죄를 짓는 듯하여 불안하고 먼저 권력의 눈치를 살펴야만 하게 되었다. 아니,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자발적으로 내팽개친다. 불공평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바로 세워놓으려는 결단을 하기 위해선, 또 다른 불이익을 당할 각오를 마음으로 다져야 한다는 선()과정이 고통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불공평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장하는 것이 신상에 이로운 것이다. 이러한 사회심리적 결정 과정이, 다시금 영남패권 이념체제가 선호하는 <불공평의 경쟁 규칙>을 항구화하고 마는 메커니즘이다.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영남이라는 지역만이 아닌 <전 한국>의 정신이요 가치체계이며 사회체제이고 문화사조이다.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기득권 수구적이요 냉전이데올로기적이다.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또한, 겨우 영남민과 영남출신 군사 정권(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허울 좋은 영남의 김영삼문민정부, 기만배신의 노무현 신영남패권정부만의 지배이데올로기로 끝나는 게 아니다.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그 사람의 영남출신 여부와 전혀 상관없이 아무 지역 출신이더라도, 그가 {예컨대 정치 권력층, 정부 관료, 행정부 고위층, 사법부 종사자(특히 변호사), 전체 공무원, 재벌, 대기업 임원, 기업가, ()의사, 경제적 기득권층, 은행과 금융기관 임원, 정당인, 언론사(신문사, 방송사, 유수잡지사) 사주, 편집진, 기자군, 방송국 임원, 드라마피디, 시사교양연예피디, 작가(소설, 드라마, 교양물) 대중음악인, 고수입 연예인, 고전음악 영화 연극 공연 미술 등 단체의 리더그룹, 시민단체 리더그룹, 노동계 리더그룹, 기독교 신교와 구교 지도부, 신부, 목사, 각 종파 원로, 사학재단 이사진, 모든 대학교수군, 사회과학, 자연과학, 테크날러지 등의 연구직 종사자, 초중고교 임원과 보직교사 등} 현재 대한민국 사회 체제를 견고히 떠받들고 있는, 즉 서민과 기층민을 제외한 사람으로서 이 사회의 안정과 질서 유지에 실질적 리더 혹은 오피니언 리더로서 일반 서민보다 더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공히 인정받고 있다면, 그 사람들 개개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지위로 말미암아 이 영남이데올로기 체제 속에서 그만큼 덕을 봐왔던 자이며, 영남패권이데올로기란 체제가 대한민국에서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부지런히' 기여해온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영남패권 이데올로기의 수호자들이었으며, 이들이 개인의 행복 추구 과정에서 흘린 땀과 노고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역사와 사회 질서는 이만큼 일그러져왔던 것이며, 몰가치의 아노미 세상이 되었으며, 서민과 기층민들은 평등권을 저당 잡히고 희망을 잃은 채 억압의 틀 아래서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그만큼 크다.

이들 중 특히 종교계 지도자, 교수, 학자, 언론인 등 지식인이 추궁 당해야 할 책임의 몫은 너무나 크다. 왜냐하면 이들이 영남패권 이데올로기의 패악을 고발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치체계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개인적으로 혜택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그 체제를 돌이킬 수 없을만치 강고한 구조로 만드는데 첨병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 개인이 영남패권 정치권에 부단히 저항해왔고 영남패권이 어질러 놓은 사회 질서에 혐오감을 안고 살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가 실질적으로는 영남패권이데올로기의 융성에 한 삽 부조해온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면 하물며, 직접적으로 그 체제를 옹위해오고 있는 영남기득권층의 패역에의 기여도는 자심하다 아니할 수 없겠다.

이렇듯 제 영남민은 자신들의 이해와 기득권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타지역민을 희생시키고 올라섰지만, 이들 영남민 서민과 기층민보다 한층 더 영민한 타 지역의 엘리트 그룹은 이 영남패권이데올로기라는 체제 속에서 영남민 일반보다 더 우세한 지위를 누리고, 실질적으로는 영남의 서민과 기층민을 억압하는 위치, 즉 영남패권이데올로기라는 질서의 한 축을 떠받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남이데올로기란 영남의 패권을 지향하므로, 그 영남패권주의에 기생하기로 마음먹고 발 빠르게 움직인 자는 자신의 출신지역과 아무 상관없이 영남패권주의에 자신의 정체성을 굴복시켜 영남기득권과 동일하게 행동함으로써 그 체제가 제공하는 혜택을 똑같이 나눠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영남패권의 이념체계의 견고화에 공헌하게 된다.

영남패권주의는 영남의 패권을 지향할망정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지역의 지분을 빼앗는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지, 그것만으로써 영남 서민과 기층민에게 마저 타지역의 중산층 이상의 생활 수준을 보장해주는 체제가 아니다. 영남민 서민은 타지역의 서민에 대한 비교 우위를 누릴 뿐 타지역의 중산층과는 절대 대등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남패권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사회체제는 기득권을 가진 자가 계속 기득권을 대물림하게 되어있고 서민과 기층민은 아무리 그들이 영남이라 하여도 여전히, 냉정하게도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상승을 원천적으로 방해하고 차단하는 체제라는 사실이다. 영남 서민이 영남패권 체제 아래 중산층 이상의 기득권층으로부터 차별받는다면 호남의 서민은 영남 서민이 받는 몫 위에다가 영남 서민과 기층민을 포함한 모든 영남민으로부터 받는 사회 문화적 차별과 억압까지를 받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타지역의 서민도 호남민보다는 약하지만 영남 서민들 보다는 더한 이중의 차별 속에서 살고 있다.

 

결론 : 영남패권주의 가치체계의 본질

한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근본 뿌리로서,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하고 공유하는 '가치체계' 속에 <공평>의 개념을 첨부터 제외시켜야 하는 사회, 자식에게 공평에 대해 가르치기를 기피해야 하는 사회, 공평과 공정의 인식을 현실 생활에서 멀리하며 살수록 성공의 길이 쉽게 열리는 사회는 죽어가는 사회다. 불공정의 경쟁 환경이 권위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호위 받으며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속으로 썩어가는 사회다.

이 문화를 영남패권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내었다. 불공정 경쟁이 어엿한 경쟁의 규칙으로서 불평없이 용인되는 가치 기준은 영남패권주의 체제가 찍어낸 주물(鑄物)이다. 이러한 사회 체제 아래에서는, 가진 자는 가진 것을 더욱 축적해내고 갖지 못한 자는 있는 것마저도 계속적으로 탈취당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계층의 상향 이동의 기회는 엄격히 제한된다. 뿐만 아니라 영남지역으로부터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에 의해 호남을 비롯한 비호영남 서민과 기층민은 이중의 고통 속에 신음하며 산다. 영남패권주의의 가치체계는 이토록 비인간적인 삶을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강요한다.

그 가치체계는 비합리, 불공정, 비효율, 반인륜의 총합이다. 삼십 수년 전, 군사 독재 박정희를 따르고 지지함으로써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과 사회적 지위로 보상받겠다던 영남대중의 패권주의 사고가 이 땅의 모든 가치체계를 파멸적으로 훼손시키고 급기야는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온 영남민에게조차 억압기제로 작동되는 기이한 괴물로 둔갑한 것이다. 아직까지 이것은 호남인, 그 중에서도 호남기층민에게 가장 가혹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전 호남민과 비호영남민에게 공히 패권의 찌꺼기를 안기는 한편, 영남 서민과 기층민에게도 역시 큰 고통을 지우고 있다. 이 시스템의 타파는 계급/계층적 접근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계급적 불평등은 겉으로 표현된 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비인간적 시스템은 영남패권 가치체계가 갖는 비인간성, 비효율성, 비합리성 등을 영남을 비롯한 전 대중들에게 부단히 이해시키는 대대적 시민운동을 통하여 깨뜨려 나갈 수 밖에 없다.

 

영남패권이데올로기의 수호자들은 누구인가?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비윤리, 비합리, 비효율, 불공정의 총합)

 

가치체계

진실 은폐를 위한 개념의 왜곡

 

순진을 가장한 사람들은 한국 사회가 가진 망국적 병폐를 들 때 지역감정, 지역주의, 지역갈등 등을 꼽는다. 이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나 외국의 예를 끌어 들이며, 지역감정은 애향심의 발로로서 인간의 건강한 정서이므로 지역주의라는 대결로만 번져가지 않으면 문제될 게 없다라느니, 지역주의도 인간의 삶에서 안정을 담보삼기 위한 공동체의식의 연장이므로 지나치게 이기적이지 않은 선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느니, 지역갈등도 단지 각 지역간의 지배집단들이 벌이는 이권다툼의 확대해석일 뿐 각 지역 대중들간의 갈등은 아니라느니, 말을 돌리며 가장 핵심되는 문제를 애써 비켜간다.

위의 세 가지 개념은 모두 쌍방향, 즉 거의 대등한 <두 지역>간의 대립을 공통분모로 거느린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은 지구상 어느 땅 어느 고을을 가든 언제나 마땅히 마주칠 수밖에 없는 인간 사회의 원초적 모형이고 현실적 실체이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고로 한국의 지역문제는 우려할 만한 현상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그 현상이 '보편적'이므로 곧 <정상적>인 범위 안에 있다라고 진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지역문제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체계적으로 별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으니 안심하라고 타이른다.

 

그런데 이들이 언급하기를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 따로 있다. 바로 '지역패권주의'라는 개념이다. 지역패권주의는 위의 세 가지 개념과는 다르게 어느 두 지역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 어느 <한 지역과 여타 전 지역>간의 문제라는 해석이다. 지역패권주의란 위의 세 가지 개념과는 판이한 시각으로 본 지역문제 접근법이다. 시각이 다른 것만이 아니라 이제야말로 실체의 중심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업이다. 더구나 '영남패권주의'라는 논제가 나오면 이들이 경기를 일으키고 마는데, 그 이유는 이 새로운 개념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이들은 자신들이 이제까지 꺼려하고 극구 기피해오며 순전히 남의 곁다리만을 대신 긁어왔었다는 참회론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이들 학자군의 저항은 틀림없이 일반 대중의 그것보다 훨씬 거셀 것이다.

 

 

그럼, 영남패권주의가 위의 세 개념들보다 얼마나 명쾌하게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설명하는지를, 가치체계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기로 하자.

 

 

 

가치체계 파괴 : <공평> 개념의 부재

국가에서 시행하는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등 모든 정책이 관행적으로 어느 한 지역민만을 지속적으로 '특별 우대'하여 왔으며, 사회 모든 분야-국가 시책의 유무를 떠나서 시민의 경제활동 환경 등을 포함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아예 '경쟁조건'이 그 특정 지역 출신자들에게 보다 우호적 방식으로 고착화되었고,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 지역 출신자의 '독점적 지배력'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어 왔다면 그 사회의 <가치체계>는 근본부터 부정의에 기초해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런 편중의 현상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거짓없는 실체이다.

영남패권주의로 인해 발생한 가치체계의 비틀림 중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가 <공평의 부재>라는 부정의이다. 거꾸로 말하면, 공평의 부재라는 우리의 가치체계가 영남패권이데올로기를 더욱 공고화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뜻이다.

 

우리 인간은 타인과 어울려 사는 사회성을 배워나가는 유아기 때부터 그렇게나 일찍, <공평(fairness), 공정>의 개념을 익히게 되어있다. 그것은 인간사회의 유지 발전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 요소이자, 인간의 사회화(socialization) 과정에서 근간이 되는 개념이다. 유아기의 아이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하물며 형제간에도-서로 공평한가의 문제를 최우선 관심으로 놓고 다투는 것을 볼 수 있다. 동물적 탐욕만이 아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다행히도 그것을 제어하는 도구 또한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공평에 대한 관심은 거의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공평한가에 대한 '판단'은 아직 미숙할지언정 공평에 대한 '관심'은 본능적이라는 얘기다. 그 아이가 지금 적게 가졌다 하더라도 그에게, '너의 필요의 크기가 작아서, 혹은 다른 기회를 더 가진 대신으로, 아니면 자발적 양보와 미덕을 실천하기 위하여' 등등의 이유를 들어 공정이라는 개념을 설명해 줄 때 그는 울음을 그치고 환하게 웃을 것이며, 그가 나중 커가면서도 상대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나갈 것이다.

 

<공평>에의 이해는 인간의 이성을 실험하는 첫걸음이고 합리를 깨우치기 위한 기초정지작업이다. 이것은 윤리의 근본을 이룬다. 공평이란, 잠재적 경쟁자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지이다.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똑같은 출발점을 보장한다는 규칙이다. 태생적/환경적 약자에게는 미래의 손실분을 일정 부분 미리 보상한다는 지혜이다. 이 가치는 건강한 사회를 유지시키는 초석이다. 이것은 인간이 인간과의 마찰을 최소화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마련하기로 약속하며, 자유와 평등의 최대공약수를 실현하겠다는 '일반의지'로서, 인류의 평화애호적 삶의 방식을 지향하고 있다.

공평이라는 가치가 확고하게 정의되지 못했거나 어려서부터 실천되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가 없다. 아무리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좋은 제도를 들여와 심어놓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들에게 공평의 개념이 서있지 못하면, 그 사회는 가치 혼란, 끝없는 부패와 타협, 다툼, 불의가 득세할 것이며 결국 원시 야만에 멈춰 서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의 가치체계는 이 공평의 개념을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 줄 수가 없다. 공평 대신에, '때론 손해도 보고, 때론 이득도 챙기며, 부당할 지라도 참고 <사이좋게> 놀라고 가르친다. 그렇다고 양보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양보는 오히려 경계할 가치이다. 공평이 전제되지 않은 양보는 손해만 안기고 말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이좋게 놀라는 당부에는 아무런 이치가 서있지 않다. 사실상 (친하지 않은 아이에게는)'양보 하지 말라'는 요구를 말 속에 감추면서, 동시에 '사이좋게(화합)' 지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거짓이요 이율배반이다. 한국의 부모는 아이에게 자기 몫과 상대의 몫을 서로 인정하는 공평의 룰을 지키는 학습을 가르치지 않는다. 왜 그들은 아이에게 공평이 아닌 타협과 융화를 가르칠까?

 

(이 교육 방식은 새삼스러운게 아니고 자고이래로 있어온 <융화와 화합>이란 덕목을 강조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그 둘은 어디까지나 공평이란 개념에 배반하는 개념이며, 또한 영남패권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 환경'공평'이란 개념을 그나마 고쳐쓰지 못할 정도로 아주 망가뜨려 버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타협과 화합'이라는 사회화 과정의 기술은 삶을 이제 처음 배워나가는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가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공평에 대한 개념이 확립될 무렵, 공정과 불공정의 관계를 잘 파악하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상위의 가치를 위하여 잠정적으로 양보하고 인내하기를 가르치는 것이다. 공평을 가르치지 않은 채 화합을 가르치는 것은 진정한 화합마저 가르치지 못하고 마는 오류이다.)

 

 

새로운 학습 : <불공평의 규칙>

 

왜냐하면 실제 기성 사회의 모습이 그렇기 때문이다. 공평에 대하여 진정으로 가르쳐 줬다간, 사회의 불공정이나 부정의와 부딪칠 때마다 아이가 끊임없이 질문해댈 것이며, 배워온 가치와 현실의 실체간에 놓여있는 간극에 대해 고통스러워 하고 결국 절망하고 말 일을 도처에서 만나리라 우려하기 때문이다. 영남패권주의 체제 안에서 상대적 기득권을 누리는 영남민도 그 자식에게 공평을 가르칠래야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다. 제대로 가르쳤다간 그 아이가 자라서 영남과 타지역간에 놓인 불평등을 보고 스스로를 비판하다가 자기 몫도 챙기지 못하는 빙충이가 되고 말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비영남민도 자기 자식을 공평의 룰을 제대로 지키는 아이로 키울 수 없다. 세상은 불공평의 룰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을 잘 아는지라, 아이가 원칙만을 따지다가 결국엔 사회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자나 반항아로 자라고 말 수 있다는 염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 아이를 사회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이단아로 만드는 것이, 부모나 선생의 입장에서는 결코 죄책감을 갖지 않을 보장이 없기 때문에 미리부터 공평의 개념보다는 화합을 가르치게 된다. 화합을 강조해야만 하는 부모들의 의식 속엔 현 사회체제와 관행, 문화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깃들어 있다.

 

혹 그것의 개념을 제대로 가르친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공평이란 개념을 '오직 가정 안에서만 통용되어야 할' 가치로서 한정하고 특별히 주의시킨다. , 바깥 사회는 가족간의 관계와 다르다, 냉정하다, 정글의 법칙이 통용된다, 그러므로 그 불공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은 처세술이다 등등을 가르친다. 불공정을 만났을 때 대적하기 보다는 미리 타협의 길을 찾으라고 가르친다.

이 타협의 정신은 다음 무엇을 낳는가? 불공정의 조건에 분노하지 말고 감정을 조정하라고 가르친다. 머리를 활용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불공정의 환경에 아예 친화적이 되기를 가르친다. 결국 불공정의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것을 화합과 융화라는 말로 포장한다. 불공정과 타협함으로써 불공정을 영속화시키고 마는 가치로서의 <화합과 융화>를 환영하는 것은, 대신 공평의 개념을 멀리 귀양보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싸우면 양편의 주장을 듣고 시시비비를 가려주려 하기보다는, 싸웠다는 즉 '화합'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써 양편 모두를 나무라고 마는 것이다. 물론 속을 들여다보면, 양편 모두가 아니라 남의 자식만을 꾸짖고 마는 셈이다.

 

공정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생활에서 실습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은, 어려서나 어른이 되어서나 구별없이 선과 악에 대한 판별력이 떨어진다. 판별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타협의 개연성을 그만큼 크게 가진다는 뜻이다. 그 타협이란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적당한'이란 의미로 얼버무려져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상대와 화합 융화하는 것이 더 없는 미덕으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러한 개념을 가진 사회는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된다. 그 어떤 제도를 갖다 놓아도 공평이라는 개념이 바로 서있지 못하면 그것은 바로 타협으로 빠지지 않을 수 없고 정실의 개입, 그리고 다시 화합과 융화, 그리고 의리라는 변명으로 포장되지 않을 수 없다.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공평이란 가치 개념을 뿌리로부터 죽여버린 지배체제이다. 왜냐하면, 불공평을 자연스러움 자체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공평은 국외로 강제 추방되었다.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영남출신이라는 요소 하나만으로 그들이 기득권을 쉽게 누릴 수 있도록 <불공정 경쟁 조건>을 짜놓은 체제이며, 또한 그 체제가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력조차 말살해버리는 새로운 가치체계까지를 생산해낸 <이데올로기>이다.

(사회체제로 계속)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본 영남패권 이데올로기

 

(이 글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본 영남패권이데올로기'입니다. 따라서 '정치권력'에 의한 직접적 억압이라는 논제는 가급적 피했음을 밝힙니다.)

1. 영남의 문화코드와 규범

관습에서 규범으로

박정희 정권 시대의 정신은, 북한 남침 가능성을 위협의 빌미로 삼은 <국민 총화 단결>, 국가의 경제 성장을 명분으로 삼은 <개인 자유의 억압>이었다. 즉 국민의 <일사불란한 행동통일 양식>을 요하는 통제 사회의 정신으로서, 권력자의 명령에 개인이 순종-상명하복-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었다. 국가는 개인에 대한 '다수'의 의지로서 선()이고, 집단은 통일된 개체로서 개인에 대해 선()이어서 개인은 어디까지나 종()에 머무는 존재였다. 이러한 <명령-복종>이라는 사회적 룰을 모든 개개인이 준수할 때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며 국가발전이 비로소 추동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여기 <질서>란 의미 속에는, 체제(system)는 빠지고 오직 순서(order)와 서열의 이미지만 남아있어, '조화와 균형'이라는 질서의 본래적 의미가 완전히 누락되어 있었다. 이것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그들 개인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문제 제기, 반대, 불만의 표출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속셈으로 권력이 부린 효율적 통치 기술에 불과하였으나, 권력의 선전에 속고 있는 각 개인으로서는 그 방식이 자기 개인의 생존권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장해주는 길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이러한 <집단적 행동통일> 선호라는 사고방식은 이제 국가의 결정만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소규모 집단>이라 할지라도, 그 단체(다수)가 결정한 일에 대하여 개인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개인의 자율적 판단에 의한 독자적 행동, 그리고 타인에게 하등 해를 끼치지 않을 개인적 결정과 행동을 할 때마저도, 그것은 다수 타인들에 의해 습관적으로 집단의 선()에 반하는 일로서 빈축을 사고 마는 <문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이 새로운 현상이 가치 중립적 의미의 <관습>-문화코드-으로만 끝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그 문화는 부단히 권장되거나 그저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이전까지는 '관습'의 범주 안에 머물러 왔는데-지켜지지 않았을 경우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수모와 제재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으로서, 엄연한 <규범>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 단체의 결정에 복종하지 않는 행위는 곧 반동으로 몰리고 마는 것이다. 이 규범은 꼭 제재의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에게 행동규준(준거)을 제공함으로써, 매사 잘잘못과 합리·비합리를 꼼꼼히 따질 필요 없이, 무조건 선()으로서 믿고 따르도록 유도하는 지침이 된다. 그러므로 이 규범이라는 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곧 사회생활에서의 낙오를 상징하고 만다. 그만큼 유·무형의 강제력이 만만찮은 것이다.

<집단 우위 양식>,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아직 주종관계라는 전근대의 사고 속에 길들여져 있는 '70년대의 한국인들이 박정희 독재정권 아래서 개인의 자유를 신장할 꿈을 미처 꾸지도 못한 채, 그냥 관습의 연장 상태에 머물고 말았다는 의미의 '문화 지체'만이 아니었다. 이것은 서로 이질적인 문화간의 조정과 조화의 시간을 요하는 문화적 지체가 아니라 문화 퇴행이요, 문화적 반동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장래 민주주의가 발전해나가는데 있어 결정적인 장애물 구실을 하고 말기 때문이다.

<단체의 권위에 복종하고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라>는 권위주의 규범은 영남민에 의해 주도된다. 그들은, 박정희정권에 순종하고 국가시책에 협조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고 집단의 이익(그들로서는 곧 국가의 공영)을 좇는 자랑스런 전통을 세웠다며 득의만면이지만, 그들은 자신들과는 달리 개인의 희생을 똑같이 치루면서도 집단적 이익의 분배에서 철저히 제외되고 있는 지역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현실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이렇게, 정치 권력과 영남민들은 합세하여, 영남민들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살고 있는 저쪽 소외지역의 대중도 자신들이 규정한 규범아래 고개를 숙이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대외홍보용 합리화

규범이란 모든 사회 구성원에 대해 강제력을 갖는다. 그것은 선과 악, 우위와 열세의 존재를 전제한다. 그럼 왜 영남민이 그 규범을 만들어 나갔는가? 영남민들이 역사적 유물로서의 봉건적 의식과 전통을 더욱 각별히 자랑스러워하고 숭앙해왔는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규범>이 전 사회로 전파되어 갔다는 그 사실 자체이다. 애초, 박정희에 정서적으로 우호적이었던 영남민들이 박정희정권의 비도덕성을 눈감아 주면서 댓가로 받은 경제적 혜택이란, 물리치기 어려운 뇌물과 같아서 일시적으로 배를 채우게 하지만, 당사자로서는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차후에도 끊임없는 탐욕을 갈구하는 것은 야만이긴 할망정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졸렬한 인간의 본성이 가져오는 현상을 그대로 공개, 자랑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므로 정권과 영남지역민은 공생관계를 일단 형성하여 서로를 감싸고 옹위하면서 그들 각자의 최대 이익을 서로간에 보장받는 방법에 골몰하게 된다. 따라서, 부도덕한 야합 과정을 아름답게 윤색하기 위한 <대외홍보용> 합리화(justification) 작업, 즉 전 국민을 상대로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한 논리 개발이 필요해진다. <공식적>으로는 그것이 국가가 찾는 최선의 공동 이익을 얻기 위한 결과일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며, <정서적>으로는 국가 시책에 적극 협조하는데 대한 합당한 보상으로 여겨지기를 유도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나라가 처한 위기감을 부추기고 선전하는 일이다. 직접적 생존의 문제로 그 긴급성을 역설하여 그 누구든 국가의 권위에 토를 달지 못하게 완전히 복속시키겠다는 방식이다. 끊임없는 북한의 남침 위협 속에 한손에 총을 잡고 나라를 지키며 또 한편으로는 간단없는 경제적 전진이라는 시대적 과업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는, 영남출신인이 사회의 요직마다에 포진하고 있는 것 자체가 곧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는 양의 크기를 반영하는 것처럼 선전하는데, 관직을 맡는 일을 한 개인의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에 몸과 맘을 바치는 봉헌인 것 쯤으로 미화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실제로 아무리 고급관료의 부패가 심하더라도 그들에게 올리는 일반의 존경이 좀처럼 가실 수 없게 만드는 매스컴의 선전에 의해 굳어진다. 또한 영남민들에게 돌아가는 편파적인 혜택은, 지역에 위치한 산업단지나 항만 등의 힘차게 돌아가는 현장을 수시로 매스미디어에 광고하여 영남이 국가 기간산업을 이끌고 가며, 그만큼 국가 발전에 주춧돌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미지 조작한다. 이러한 작업은 결코 소수의 정권 담당자들이 도맡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남대중의 긴밀한 협조와 참여가 밑받침됨으로써 가능해진다.

 

대내용 시스템 개발

또 이 작업과는 별개로, 영남민들 자신을 공생관계라는 이 시스템에 잘 적응토록 만드는 <대내교육용> 이념의 개발이라는 요구가 있다. 이 내재적 이념이 그 각 구성원의 뇌리에 각인될 때, 정권은 공권의 강제력을 약화시켜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하면서도, 실제로는 더욱 원활하게 그들의 자발적 협조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은 정권의 외적 컨트롤로 이루어지는 것 보다는, 영남민 집단 자체의 효율적 관리와 성장이라는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방향이 결정된다고 봐야 하겠다.

그 대내교육용 이념이란 <권위주의 사고체계>의 확산이다. 그 집단이 추구하는 이상이나 명분보다는, 소속 집단에의 단순 충성이나 의리를 우선으로 여기는 가치체계이다.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하는 것이 당위라고 보는 사고방식이다. 서열 개념에 민감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여 적소에 임하는 것이 단체의 질서 유지에 효율적이라는 인식이다. 따라서 서열상 앞서 있는 존재에게는 내가 존경을, 그리고 뒤져있는 존재는 이제 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있는 것이다. 이 룰이 재밌는 것은 자신이 선임자에 대해 존경을 바치지 않는 것에는 관대하고, 후임자가 자신에게 복종을 안하는 것에는 매우 가혹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 룰은 으레 최고 권력자가 손수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이들 영남민에게 매우 자연스럽게 학습되어 그것이 비인간적 체계라는 의심이 전혀 들지 않는다. 설사 비인간적 요소를 인지하더라도 더 나은 시스템에 대한 관심을 접고 만다. 이렇게 하위집단이 상위집단에 대해 존경을 바치고 복종한다는 문화코드에 즐겨 편입될 때, 그 정점에 있는 국가 권력은 훼손이 용납되지 않는 지고지선(至高至善)이 되고 자연히 충성의 대상으로서 인정되고 마는 것이다.

<권위주의 문화코드>에의 적응 과정

만약 누군가 이 권위주의 문화에 적응을 못한다면 그는 비도덕적 군사 파쇼 정권에게 존경을 바칠 리가 없다. 여기에서, 박정희에게 반기를 드는 영남인이 왜 그처럼 귀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 저항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누군가 정권에 반기를 들게 되었을 경우, 논리적 귀결로서,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권위주의 문화의 허위의식을 발견할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이것은 정권을 반대하는 것보다 훨씬 힘겨운 싸움이 된다. 그것은 일신의 행복 조건을 기꺼이 저당잡히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불행의 씨앗이다.

평범한 영남인이 왜 그 힘든 싸움을 피하게 되는지, 이유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사회생활에서의 불편 때문이다. 자신을 둘러싼 문화를 배격한다는 것은 매일 매시간 주위의 가족, 친구, 동료들과의 충돌을 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직장에서 회식할 일이 있어도, 술자리에서 교주 박정희를 찬양하며 떠들고 있을 골빈 동료들이 뻔히 보이는지라 참석할 수가 없다. 매번 빠질 것이다. (박정희에 반대한다는 이유 이전에) '회합에 빠진다'는 사실 하나로 그는 동료들로부터 사회성 없는 사람, 융통성 없는 사람, 폐쇄적인 사람, 리더십 없는 사람, 회사일에 열의가 없는 사람, 이런 식으로 찍히고 말 것이다. 단체의 권위를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사회에서 도태되고, 소위 왜곡된 조직문화에 이의달지 않는 사람, 타협적인 처세술을 익힌 사람들이 이러한 권위주의 집단 문화 속에서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게 되고, 그런 부류가 리더로서 각광받는다. 이런 식으로, 가장 열렬한 박정희지지자가 영남인 집단의 리더로 클 수밖에 없는것이다. (아니면, 집단의 리더가 되려면 필히 먼저 박정희 광신도로 커 있어야만 한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권위주의 문화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 개인의 내면적 고뇌 때문이다. 박정희시대에 흔히 있었던 예를 들어보자. 길을 가다가 어느 젊은이가 장발로 걸려 경찰에 의해 가위질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보기에 지저분한 긴머리 유행이 그렇잖아도 마뜩찮았는데 잘 됐다 싶다. 경찰이 할 일인가 고개가 갸우뚱해지긴 하지만 거리의 미화(?)를 위해선 잘하는 일인 것 같다. 다 잊어버리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중학생 아들녀석의 머리에 고속도로가 나 있다. 힘없는 학교 선생이 학교 방침대로 한 일이라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 알지만 욕이 먼저 튀어나온다. 책임의 소재를 가만히 따져보니 두 가지 해프닝이 모두 권위주의 정권의 지시에 의해 나온 것임을 알아차린다. 여기에서 고민한다, 어느 것이 잘 못 됐나를. 그러나 하나(전자의 예 : 장발)는 찬성이고 하나(후자의 예 : 아들의 머리)는 반대라고 말하는 것이 더없이 이율배반적임을 알면서도, 결국 그러한 혼돈을 받아들이고 만다.

이것이 평범한 영남인들이 택하는 타협의 방식이다. 왜냐하면 명민한 판단력을 발휘하여 두 케이스 모두 군사 파쇼 정권의 권위주의 정책의 산물이다라고 규정하고 말 경우, 논리적 유추에 의하면, 이후 계속적으로 국가 정책에 비판을 하고 말 일이 자주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태야말로 나 자신이 두려워 할 일이다. 그러므로 이쯤에서 스스로 제어 장치를 가동시킨다. , 개인인 자신의 판단력보다 단체(국가)가 하는 일이 무언가 정당성이 더 있을 것이다라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단체(국가)의 권위에 무조건 승복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부딪치는 일에 대해 자꾸 판단을 하기 시작하면 남는 것도 없이 혼자만 피곤해지고 만다는 걸 터득하게 된 결과다. 이런 식으로, 상위 권위에 항의하기를 일체 포기하는 것은, 권위주의 문화에의 굴복이며 다시 그 자신이 권위주의적 인간으로 전이되는 절차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고달픈 생활을 선택하여 견딜 개인은 많지 않다. 그러므로 이런 권위주의 문화에 깊이 예속된 영남민들은 거의 예외없이 상위 권력(권위)에 항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아예 능동적 태도를 가지고 즐거이 동화되어 사는 것이다. 이 문화에 순응하기로 맘을 먹는 한, 박정희에 존경을 바치는 것은 파쇼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충성행위가 된다.

다음 단계로서, 이제 모든 개인이 모여 이 권위주의 영남문화코드를 서로 나누고 경험함으로써 점차 그 코드의 영향력을 강화시켜 나간다. 일정한 수준의 강도에 이를 때 그 문화코드는, 개인 스스로가 기꺼운 마음으로 지켜가는 행동의 가이드라인으로서 뇌수에 프로그램화 되고 마는, 구동적(驅動的) <규범>으로 업그레이드 된다. 그리고 동시에 권위주의 문화코드는, 어떤 행위가 그간의 관행에 반하여 행하여지고 말았을 경우, 거기에 필히 일정한 벌을 내리고 마는 제어적(制御的) <규범>이라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규범>으로서 확립됨의 의미는 이전의 관습이나 정서, 그리고 문화코드와는 달리, 그것에 대한 의문과 소통의 창을 모두 폐쇄해버린다는 공식 선언이다. 규범은,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성역이다. 의문제기 자체가 원초적 반동 행위인 것이다. 무조건 받아들이는 공리이다.

[정리 : <권위주의>란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말한다. 영남민에게 있어 권위의 개념이란 권력과 대동소이하다. 권력은 단체·집단에서 나오고 따라서 단체·집단은 권위를 지닌다. 그러므로 개인은 집단이라는 권위에 복종하는 게 옳다. 사회의 질서는 이 <서열주의>에 의해 지탱된다고 믿는다. 바로 <권위주의> 문화코드이다. 문화코드가 모든 이에게 학습·강화될 때 결국 <규범>으로 승격하고, 이 규범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행동의 가이드라인이요 통제수단으로 역할한다.]

2. 영남 권위주의 문화코드의 전 사회적 <규범화>

호남 길들이기 : 마타도어

이토록 반민주주의적인 이념이 영남인에게 움직일 수 없는 문화코드가 됨으로써 겪게되는 폐해는 양심을 지키려는 일부 영남민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남민들은 이 문화를 전 사회에 전파하겠다는 선교 사명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전 사회의 물리적 패권을 틀어쥐기 시작했으므로 자신이 새로이 점한 사회적 지위에 대해 무념무상할 리 없다. 이들은 자신의 파워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문화코드에 의하면, 열등한 집단은 우수한 집단에게 충성을 바치게 되어있다. 자신이 정점에 위치해 있는 마당에 하위 그룹이 자신을 본체만체 한다면 자존심이 상하게 마련이다. 예전, 호남을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한 제물로서 지긋이 밟아줬을 때 이미 그들로부터 영구적 복종을 약속받은 줄만 알았더니 웬걸, 확인해 볼 때마다 그것이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수모와 핍박을 안길수록 더욱 가열찬 저항의 기미가 짙다. 그들이 정치 경제적으로나, 갈수록 벌어지는 인구차로나, 사회적 영향력으로나 영남민 자신들과는 모든 면에서 상대 안되는 소위 미물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민들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가 않은데다가, 내심 경멸의 념까지 가슴에 품은 듯하다!

영남민들은 권위주의라는 문화코드의 본질이 지극히 반민주적이며 비인간적임에 대한 성찰을 해 보기는커녕, 자신들이 유포하여 이제 모든 비호영남민이 받아들임으로써 전 사회적 권위까지 갖춘 그것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않는 호남민이 몹시 괘씸해진다. 그러나 쉽게 생각하고 만만하게 대응했다간 도리어 저항의 강도가 더 높아질 위험마저 있는 상대다. 그러므로 호남민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방법은, 아무리 가혹하고 비열하더라도 괘념할 일이 아니고, 일단 가장 효과적인 것이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방법이란 바로 <빨갱이 딱지 붙이기>이다. 맹렬한 비난을 받을 원인과 책임 소재는 모두 호남인에게 덮어씌운다.

명분상으로는, 호남민들이 '영남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음으로서가 아니라, 반공이라는 국가 존립의 대명제에 반동 행위를 한다는 이유를 붙여 '이질집단'이라 레이블링(labeling:딱지붙이기)한다. 국가란, 영남민만이 아닌 전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한 지고의 가치가 됐으므로 호남민을 이 대의에 배반하는 집단으로 몰아갈 경우, 그들이 갖는 변명의 구실이 형편없이 옹색해지고 말 것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호남을 마타도어하는 영남민의 진정한 목적은 국가 안위를 염려해서가 당연히 아니고, 자신들의 패권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전략으로, 호남민들이 권위주의 문화코드를 받아들일 때까지 억압하는 것이다.

만약 호남이 영남에게 굴종하기로 미리 맘을 고쳐먹었었다면 영남으로부터의 억압행위는 훨씬 유연했을 것이다. 영남민도 원래 변태가학성을 유전자로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닌 이상, 어차피 경쟁 상대로서의 힘을 상실한 호남을 매양 이유없이 패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억압의 동기는 바로, 영남민 자신들이 진리로 믿고 있는 권위주의 사고 체계를 호남만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호영남인 : <권위주의 규범>에의 편입

영남의 무소불위 권력은, 호남을 마타도어 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기개에서 뿐만 아니라, 그 패권 전략이 호남을 제외한 전국민에 의해 아무 저항없이 받아들여지도록 실천돼 나가는 과정 속에서 다시금 확인된다. 시대는 박정희 군사파쇼 서슬에 숨죽이는 때요, 사회 특권층으로의 발돋움을 원하거나 사회적 생산의 과실물을 탐하려면 영남인 엘리트와의 커넥션 어딘가를 필히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 생존방식의 상식이 되어있다. 영남엘리트들이 군()을 포함한 사회 권력부 구석 구석에 이미 포진해 있는 바, 비호영남인들로서야 영남의 문화 코드를 신속하게 학습하는 것이 세상살이에서 절대 유리한 일이다. , 자신의 서열상 위치를 얼른 찾아서 영남에게 충성 경례를 올리고 호남에게는 하대를 하는 권위주의 문화 체제속에 눈치 빠르게 편입하는 것이었다.

비호영남민이 호남을 자신과 동등하게 대하기보다, 멸시의 눈으로 낮춰 보고 거드름을 피워보는 것은 그 일이 정당해 보여서가 아니라, 그 행위가 영남의 비위를 맞추는 길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 이것은 비호영남과 호남의 관계 설정이 아니라, 비호영남과 영남간의 관계 설정이다. 이러한 비호영남민의 영남패권 부역이 호남민에게 영남패권에 못지않은 괴로움을 안겨주는 일이지만 비호영남민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하여 기회주의적 처신을 선택하고 만다.

그러나 그들은 영남민이 하는 것처럼 호남민을 열등 시민으로서 함부로 취급할 수 없다는 걸 늘 상기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서열 위치를 망각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제2등 시민으로서 합당한 역할을 떠맡는다. 호남민과는 하등 사적인 유감이 없으므로 먼저 나서서 호남을 치고 나올 이유가 없다. 시와 장소에 따라 영남민의 행위를 흉내내면서 그 강도를 조절하는 식이다. 영남민은 공식(공개)적으로 호남을 차별할 수 있지만, 비호영남민은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차별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 관행이 영남과 비호영남 간의 관계설정을 위한 '영남 눈치보기'에서 출발하였지만 이젠 비호영남과 호남간의 관계 설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비호영남에게 주체적인 선택권이 있었던 게 아니고 영남이 설정한 구도 안으로 얌전히 찾아 깃드는 형식이다. 비영남에게도 이러한 '서열매김'이 점차 자신들의 문화코드로 자리매김한다.

호남민을 보면 딱히 잘못한 것을 꼬집어 낼 수는 없지만, 비호영남민은 그러나 호남민을 '좀 지저분하고, 무식하고, 솔직하지 못하고, 문제아, 이단아 같고 괜히 꺼려지는' 부류, '삼등 시민들'로 분류하는 훈련을 실습해나간다. 대놓고 "나가 있어!!" 하진 못하고 "너하고 놀기가 좀 거시기하다···" 며 말꼬리를 흐리는 식이다. (TV드라마, 매스컴 등을 통한 호남인 비하와 그 이미지조작이 비호영남민들로 하여금 호남민을 멸시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은 아니다. 권위주의 문화코드가 확산됨으로써 서열의식의 형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그 결과물이다.)

이런 방식엔 비호영남인 자신의 뚜렷한 정체성 인식이 먼저 전제되고 있음을 본다. 다시 말해, 이 훈련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서열을 확인받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각 지역의 비호영남민이 호남민을 대하는 방식의 급수도 각각 다르다. 그만큼 자신의 출신지역이 점하는 위치를 전국적 서열 구조 속에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서열의식은 집단간의 서열만을 가르는데 그치지 않고 모든 개인과 개인간의 서열을 규정하는 세분화로 나아간다. 이런 방식의 서열규정 훈련을 통하여 비호영남민은 자신들도 모르게 <권위주의 문화코드>를 공식적 <규범>으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결론

이렇듯 대한민국의 사회 체제는 서열주의라는 국민 정서(sentiment), 권위주의라는 사회 규범(norm)을 가치체계의 근간으로 삼아 그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영남패권주의는 권위주의라는 규범 위에 기틀을 다진다. 권위주의는 민주주의 가치체계와 가장 대척점에 서있는 이념으로서, 대한민국 사회의 수구성, 전근대성, 비인간성, 반인륜성, 반개혁성, 반역사성, 반민족성, 반통일성, 비합리성, 반다원주의, 반친일파척결, 연고주의, 패거리주의, 그리고 허위문화 등등 모든 사회병리를 일으키는 근원적 산실(sources) 역할을 하고 있다.

영남패권주의 용어가 거부감을 줍니까?

 

지역감정'이란 담론 속에 숨겨진 위악과 진실을 찾아서

 

영남패권주의란 말이 적어도 인터넷 문화의 흐름에 민감한 네티즌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어로서 서서히 자리잡아 가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이 사회 곳곳에 섬세한 촉수를 드리우고 있는 영남패권 존재 자체만큼은 검증 과정을 거쳐 점차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이 용어의 지속적 쓰임과 의식의 확산은 그것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픈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적잖은 압박으로, 스트레스로, 위기의식으로 작용하게 될 것 같다.

 

1. "지역차별"

 

이전까지 이 용어를 대신해왔던 말은 기껏 지역차별이었다. 지역차별이란 어느 지역인가의 소외를 전제하는 것이되, 정신이상의 상태를 진단하는 피해'의식'이란 말을 피해 당사자 위에 교활하게 덧씌움으로써 정작 소외를 불러 일으키는 그 가해 주체를 어디엔가 꼭꼭 숨겨놓고 말았다.

지역이란 일반 명사 속에, 특정한 지역의 가해적 위치와 피해적 위치의 구분이 끼어들 여지를 아예 없앰으로써 차별의 실체를 부정하겠다는 의도를 그 안에 감추어온 것이다.

 

게다가, 차별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발생시킨 '피해사실'보다는, 다분히 피해 당사자가 실제와는 다르게 그저 망상적으로 가질 수 있는 '피해의식'이 진정한 문제의 본질이라는 식의 어의조작이 어이없게도 대중에게 폭넓게 먹혀들은 결과, 피해 당사자들의 저항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역할을 하였다.

가장 첨예한 갈등 주체인 영남과 호남이란 두 지역의 실체를 묻어두는 용어로서 지역차별을 사용할 때, 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노출되기를 경계하는 자들의 깊이 배인 두려움을 역설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2. "지역감정"

 

가장 미개한 수준의 인식을 시사하고 있는 지역감정은 아직까지도 일반 매스미디어(종이신문, TV)는 물론 그 중 진보적이라는 한겨레 신문의 '인터넷판'에서조차 부동의 대표용어로서 질긴 수명을 자랑하고 있다. 그것은 한편 우리 사회가 갖는 패권주의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일천하다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보수 집단일수록 이 논의가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감추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지역감정'이란 어휘를 고집하는 것은 역사적 인과성과 사회적 발생 조건을 깡그리 배제함과 동시에 그 현상을 일 개인의 선택이나 취향, 편견의 결과물로 묶어둠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끝내 엄폐시키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지역차별'과 함께 그보다 덜 진화된 어휘인 지역갈등, 지역감정, 호남소외등의 쓰임새가 영남패권주의란 용어와 다른 점은, 한결같이 가해자를 실종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용어들이 어떻게 생성 진화해 왔으며 누구에 의해서 의미 왜곡이 자행되고 대중 조작이 이뤄져 왔는지를 유추하는 것은 전혀 곤란한 일이 아니다. 그 주체는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실체를 기어이 덮음으로써 자신들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겠다는 이 사회의 정치경제적 기득권 계층일 것임이 틀림없다.

 

그것을 두려워하는 언론과 정치권은 물론 대단히 진보적인 극소수를 제외한 사회 일반은, 그것이 패권이라는 구조와 집단의 사회학적 문제라는 본질을 애써 외면하면서 관심을 오직 개인의 사소한 선택적 문제로 한정시키고 싶어하는 것이다.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공론의 경험이 전무한 일반 대중은 여전히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이 거대한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지역감정'의 저차원 논리를 너무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왔다.

일천한 단계일망정 온라인상의 논의는 그 성역의 맨 가장자리를 깨뜨리는 성과를 가져왔다. 지역감정을 거쳐 담당주체를 슬며시 빼낸 지역갈등이라는 용어를 지나, 그나마 한결 진실에 접근한 지역차별이라는 어휘를 거부감 없이 사용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지역차별의 문제 핵심이 결국 지역패권주의에 있다라는 본질 규명의 차원으로 인식의 발전을 보게 된 것이다.

 

 

편집자주

( 부정적인 사회현상을 지양하려는 목적의식을 갖고도 지역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의식이 결여된 소이이다. 인간의 개성의 다양성만큼이나 천혜의 지역적 조건에 규정당하는 지역의 특성과 관련되어 발현되는 다양한 지역주의는 그 자체로 비방이나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병리적 지역주의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정직하게 영남패권주의를 사용해야 한다. 지역차별이라는 용어를 타성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조선일보신문이라 부르고 여차여차한 신문이라고 설명을 덧붙이는 화법과 다르지 않다.)

 

 

3. "영남패권주의" 논의주체의 이전(移轉)

 

이렇듯 영남패권주의 논의가 본격화 되기까지 거쳐온 발전 과정이 시사하고 있는 것은 인식과 논리의 발전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논의 주체의 주도권 이전이란 점이다. 이전까지는 그 주체가 기득권계층이었다. 마음대로 용어의 본 뜻을 비틀고 진실을 은폐·호도하고 논의를 독점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파워와 도구의 소유자인 기득권세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그 주체는 진실을 벗겨냄으로써 이제까지 자신과 그가 속한 집단, 그리고 그 계층이 당해왔던 불균형을 바로잡아 놓겠다는 피해 당사자들이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영남패권주의의 논의가 주류 비주류를 막론하고 언론의 기피 영역으로 남아 있는 사실이 암시하는 것은, 이 논의가 갖는 엄청난 사회적 폭발력이다. 이제 인터넷의 환경으로 인하여 논의의 주체가 그것을 억압해왔던 보수언론으로부터 피억압 일반민중으로 넘어옴으로 인해, 조만간 영남패권주의의 실체와 패악이 완전히 까발려지며 혁파의 해법 또한 다양하게 분출될 것이다.

 

보수 언론과 사회의 모든 기득권 계층은 일시에 뒤집어지고 만 정세 반전의 환경 속에서, 이제 논의의 수세에 몰리며 기존 논리가 깨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목도할 수 밖에 없다. 영남패권주의란 용어의 정립·발명과 인터넷 상의 공론화는 힘의 주도권을 네티즌에게 이양케 하였다. 이것은 또한 단순히 '논의의 주도권' 쟁취만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지배논리 그리고 그 지배층의 존재 기반을 위협할 수 있는 사회 가치체계의 변동을 유인하고 말 거대한 사회운동의 물결로 발전할 것이다.

 

 

 

. 영남패권주의의 형성 : 시대적 배경

 

1.정치

박정희 정권에게 있어 정권 안녕의 영구 보장은 정치적 생존만이 아니라 그들의 물리적 생사 문제를 가르는 일이었다. 원래 일본군국주의에의 충성을 맹서했던 반민족 역도의 정권 탐욕으로부터 성립된 박정희쿠데타정권은 자신의 추악한 정체와 정권의 부정의를 가리기 위해, 소위 철권 정치를 통하여 정보의 소통을 최대한 차단하는 한편,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환상을 심는 일환으로 사회의 대변혁이 일어나는 양 과장 선전하는 전시 행정의 연출로 기만정책을 항용(恒用) 펼쳐야만 했다.

그것은 태평양 전쟁에 징용당해 (38만명의 징용자) 희생당한 수만 조선인의 귀중한 생명과, 관동 대지진 당시 폭동 누명을 쓰고 무참히 살해된 수천의 조선인과, 7만에 달하는 원폭 조선인 사상자들(4만 사망), 그리고 일본군 성노리개 감으로 납치되어 꽃다운 시절은 물론 전 인생의 파탄을 강요당한 무려 20(아시아여성 28만명 중)의 조선여성들의 희생을 모두 깡그리 무()로 돌리고 만, '65년 한일 협정 조인의 실상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희생자가 장래 요구할 엄청난 액수의 배상 청구 권리와 소송의 유효성을 모두 미리 말소시켜버리는 조건을 단돈 3억불에 팔아먹고 만 데에는, 그 조건을 달고 일본으로부터 지속적인 유상 차관을 들여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제 성장을 국민들에게 시위해야만 한다는 숭일 쿠데타 정권의 치졸하지만 절박하고 다급한 요구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2. 이데올로기 : 매카시즘

 

한편 박정희정권은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군사정권답게, 김대중과 대결한 '71년의 대통령 선거 훨씬 이전인 '60년대 중반부터 공안 정국을 조성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의 신장 기회를 억누르면서 국민 총화의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68년 초, 김신조 무장공비조의 청와대 습격시도 사건은 박 정권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것이기도 했지만, 박 정권은 이를 정권 안보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역이용하는 정치적 교활성을 과시한다. 그 해 박 정권은 정권에 대항하는 젊은 지식인들을 일망 타진코자 통일혁명당이라 불리우는 대남간첩단 사건을 조작하여 백오십여명에 이르는 무고한 시민들을 검거하고 그 중 일부를 실제로 사형집행함으로써 사회의 정신을 이른바 레드컴플렉스에 바짝 얼어붙게 하였다. 또한 그 해 12월을 기해 제정 공표된 국민 교육 헌장(발췌 :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이 상징하듯 전 국민을 국가의 신민 자격으로 떨어뜨려 권력 앞에 굴복시키고 북한으로부터의 전쟁 발발 위협을 끊임없이 재생시킴으로써 그 공포 분위기 속에서 국가의 모든 시책에 완벽히 순종토록 만드는 철권 통치의 시대로 서서히 막을 올리게 된다.

 

'72년 영구 집권을 위한 전면적 독재 체제인 유신 헌법을 출범시키고 잇따른 긴급 조치 발령으로 재야 민주 세력은 물론 고등학생을 포함한 대학생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국가 전복 기도 사건('74민청학련)으로 조작, 탄압하면서 경찰과 정보부의 항상적인 학원(일부 고등학교 포함, 전국의 대학) 사찰로 '70년대 젊은이들의 자유로워야 할 정신과 마음을 옥죄어 얼어붙게 만들었다.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은 일본에서 독재 정권 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 박정희의 정적 김대중을 납치('73), 해상에서 살해를 기도하다 미수에 그치는 전대미문의 국가 권력에 의한 청부살해를 연출하였고 김대중을 비롯한 재야 독재투쟁세력은 '70년대 내내 가택 연금이나 정보원의 밀착 감시로 정치적 행위를 철저히 억압당한 채 목숨만 부지하며 살아야 했다. 이렇게 가혹한 매카시즘 수법으로 인간의 대지에 공포의 철조망을 둘러버린 것은, 일본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박정희 자신의 황군 출신성분, 공산당(남로당) 간부로서의 행적, 그리고 일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동료 남로당 간부들 명부를 폭로했던 배신자로서의 추악한 정체를 감쪽같이 국민들로부터 속여내기 위한 술책이었으며 그것은 결국 자신의 레드컴플렉스의 표현이기도 했던 것이다.

 

3. 경제

 

2,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60년대 말과 70년대) 동안 서울 인천 지역에 수출산업공업단지를 건설하고 울산에 대규모 석유화학공업단지 조성에 이어 창원, 구미, 포항과 낙동강 하류, 부산, 거제 등 영남 지역에 집중적으로 공업단지를 건설한다. 비영남지역으로는 비철금속 공업의 온산, 석유화학공업의 여천 지역이 유일하다. 성장을 지상 명제로 삼은 경제 정책은 차관 도입(대부분 유상차관)과 외자 유치를 필요로 하였고 관과 기업의 유착은 특정 기업체에게 거의 무이자에 가까운 차관 은행 융자와 각종 세제 특혜로 엄청난 부를 거저 안겨 재벌을 육성함으로써 정권은 수출 주도형 성장 경제를 전적으로 그들에게 의존하고, 그 대가로 정권은 그들의 금력에 의한 절대적 비호를 받아 정권 연장의 지렛대로 삼았다.

 

 

4. 사회

 

 

노동 집약적 수출주도 산업 중심의 경제 정책은 노동자의 증가를 봤으나 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 정책으로 노동자들의 실질 생활 수준의 향상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꾀한다는 명목으로 저곡가 정책을 실시하여 이번엔 국민 대다수가 종사하고 있는 농업의 희생을 초래하였고 농촌의 경제가 갈수록 피폐해져 대규모 이농 현상이 발생, 서울로의 인구 유입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교외에는 빈민촌이 우후죽순으로 형성되었다.

 

한편, 서울의 산업 집중과 정치 사회 문화 중심지로서의 비대화는 '70년대 초반 이후의 가속적 팽창을 예감케 하였고, 이를 노리는 아파트 개발 러시와 함께 70년대 중반부터 대대적인 부동산 투기 붐이 서울을 휩쓸어 빈부간의 격차를 벌리는 것을 물론, 관리·건설업자간의 유착과 건설 정보의 사전 유출로 인해 떼돈을 버는 불로소득자 졸부의 대거 출현 사태를 초래하였다. 부동산 불법 투자 이익이 한국에서 부의 창출의 최고 효율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공공연히 인식되면서 모든 시민이 부동산 투기꾼으로 나서는 풍조를 만연케 하였고, 이러한 현상은 근면·정직·창의·실력 등등의 사회의 도덕적 가치체계를 근본으로부터 급격히 무너뜨리는 위기를 몰고 왔다.

 

 

5. 박정권 시대를 관통한 정신(영남패권주의를 논하기 전까지 규정되어 왔던 시대 정신)

비틀린 역사의 한 장인 박정희시대의 '60년대와 '7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1) <반공 매카시즘의 긴 긴 혹한 속 모래 바람>,

2) <노동자 농민의 희생과 생존권 박탈을 댓가로 치룬 경제 성장>, 그리고 그 결과로서,

3) 부정과 불의한 방법이 대접받고 불법 투기가 부 축적의 지름길로 각광받으며 배금주의가 판치는 <인간과 사회의 도덕적 파탄>이었다.

 

 

6. 요약

 

박정희 정권 19년은 정권의 비정당성을 가난 퇴치라는 명분 획득으로 은폐하고자 일본 차관 도입이라는 비상대책을 강구하게 하였고, 이 굴욕적 한일 협정 외교는 민족의 혼을 팔아먹은 부도덕의 극치였을 뿐만 아니라 향후 전시성 행정과 언론에 대한 통제 탄압 정책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는 원죄가 된다. 차관 도입을 둘러싼 정권과 특정 기업의 유착을 바탕으로 전시성 수출 주도 경제 개발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때, 한편으로는 영남지역에의 집중 투자로 영남민들의 환심을 사 정권 안보에 필요한 표심을 붙들고,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인권을 억압하고 그 수고를 착취함으로써 경제 성장의 동력을 삼았으며, 산업 성장을 밑받침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저곡가 정책을 펼침으로써 농촌, 특히 농업인구가 절대 다수인 호남 지역의 농촌 피폐화를 방치, 심화시켰다. 이것은 서울과 도시를 향한 이농을 재촉하였고 서울은 경제 집중으로 인한 비대화와 함께 상경민들로 인한 빈민촌이 형성, 확장되면서 거대화하였다. 서울의 팽창은 서울의 전 지역을 투기 대상으로 만들어버렸고 불법 투기가 사회의 정당한 이재수단으로 각광을 받는 풍조를 만연시켜 사회의 일괄적이고도 결정적인 도덕적 파탄을 예약하고 있었다.

 

 

 

. 영남패권주의 형성 : 패권의지 발아과정

 

1. 박정희의 콤플렉스

 

박정희 군사 파쇼는, 가난극복이라는 인간의 선험적 열망을 오로지 고대 국가의 메시아 재림으로써나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국민의 의식을 호도하여,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서 전면에 부각시키고, 민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희생정신에 입각하여 민족적 대역사(大役事)를 일으키고 있는 <정의의 화신이자 구국의 메시아>로서 자신을 선전해나가야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그의 친일 부역의 과거가 남모르게 희석되고 더불어 차기 정권도 연이어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양대 축을 이루는 박정희의 또 하나의 통치술은, 정권 비판을 국가 전복 기도로 뒤집어 씌워 전 사회의 지성과 양심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빨갱이 사냥의 기나긴 회오리였다.

이토록 부도덕한 태생의 정권이 표방한, 한민족의 숙명과도 같았던 가난을 퇴치해내겠다는 대외적 명분은 사회에 일시적으로 충격과 활력, 그리고 대중의 동원을 불러왔으나,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전후 냉전 초기 신생 국가가 갖는 시대적 요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었다. 이제 겨우 기초 학습 관문에 막 진입했던,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신장, 민주적 가치체계 확립, 그리고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민주주의 근본정신은, 군사 독재 정권이 내세운 가난 퇴치라는 대외 선전용 구호 아래, 그리고 정권 안보라는 내적 당위 밑에 내던져져 철저히 짓밟혔다. 그러므로 모든 전통적 덕목의 계승이나, 전근대를 벗어나 신생 민주 사회가 지향할 제가치(諸價値)는 이 경제 성장이라는 기치 아래 무참히 목 졸리고 말았으며, 이제 인간의 혼과 정신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려 피폐한 목숨을 근근이 부지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2. 영남민의 이미지 제고

 

한편, 영남민에게는 급상승한 사회적 지위와 상대적 우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 사회에 대한 패권의 영향력을 뻗쳐나가는 기회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애초에, 서울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소하는 일환으로 호남이라는 라이벌을 희생양으로 잡아 자신들 능력의 본원적 우월성을 전 사회로부터 인정받고자 했고, 이 의지는 다시 영남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차츰 차고 넘쳐흘러서 어느덧 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신의 패권을 자신감으로 확인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정작 우려했던 서울의 견제가 어느 곳에서도 감지되지 못한 데에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민들의 개방적 성향과 그로 인한 그들의 낮은 결집력도 있었겠지만, 이미 서울은 정부 요직에서부터 국회, 사법부, 대기업, , 검찰경찰 등 사회의 실질적 지배 위치를 장악해버린 영남인들의 위세에 눌려 감히 이의를 제기하기는커녕 공존이라는 유화(宥和)와 타협을 선택하고 말았던 데 이유가 있다.

 

거기에는 또한 영남 권력층과 서울에 진출한 상류층 영남인들이 항용 견지하는 서울에 대한 정중하고도 열등감이 배인 태도가 서울 수도권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제공했고 따라서 경계의 대상으로서 그들을 꺼려할 이유가 없기도 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영남인 스스로 '촌놈', '문디'라고 칭하는 모습은 사실상 '자랑스런 열등감'-'열등의식'과 차이가 있는 의미로서-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서울사람들로서는 그것이 겸손과 활달한 정서의 표현으로 보여 호감을 갖게 하고 영남패권주의 자체에 대한 경계를 해제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3. 박정희를 찬미한 배경

 

오랜 시일에 걸친 영남민들의 서울 컴플렉스는 박정희라는 동향 출신 절대 권력자의 탄생, 그리고 60년대 중반부터 가시화되는 영남 편중의 산업 기반 편성과 경제적 성과물의 수혜로 인해 타 지역에 비한 상대적 우월을 확인하며 서울 콤플렉스를 벗고, 사회적 신분 상승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누리게 된다. 이것은 지리적으로 변방에 위치했으며 정치 경제적으로도 주변인의 처지를 벗어나 보지 못한 영남 대중으로서는 대단히 획기적인 삶의 변화였다. 동향 출신 영남 정권 담당자가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역사 이래 최초의 기획인 가난 퇴치라는 슬로건에 거는 전적인 신뢰와 열광적 찬미 속에, 영남민에겐 박정희정권에 대한 지지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소명이라는 <신앙>으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영남인들의 박 정권에 대한 애착에는, 한민족 역사만이 아니라 유교 문화권의 대부분 국가가 그렇듯, 혈연 중심, 가족 중심, 지역 중심 등의 연고주의가 지지 동력의 기저에 면면히 흐르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영남민이 부도덕한 독재 정권인 박정희를 같은 영남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표피적 감성에 의지하여 무의식중에 관성적으로 지지해 왔다면 이것은 오직 영남인만이 아닌 한민족 전체, '한국의 문화'가 감당해야 할 업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이미 관습으로 내려와 영남민 당사자들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가급적 배제한 면만을 논하고자 한다.)

['67년과 '71년의 6,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경상도민으로부터 거의 변함없이 72%의 지지만을 얻고 있는 것으로 봐서, 경부고속도로가 개통('718)되고 포항과 낙동강 하류 지역, 창원, 구미, 부산, 거제, 울산 등 경상도 지역에 집중적으로 대단위 전문 공업 단지가 들어서는 70년대 이전까지는 박정희에 대한 지지가 유신시대에서와 같은 극심한 편파로까지 이르지는 않았던 사실을 알 수 있다. '71년 선거가 영남에서 최초로 노골적인 지역감정의 선동에 휩쓸려 치러졌던 사실까지를 감안하면, 영남대중이 박정권의 경제 정책으로 인한 직접적 수혜를 피부로 느끼기 전까지는 그에 대한 지지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렇듯 박정희정권에 대한 영남인의 지지는, 70년대 들어 경제 성장 혜택의 가시적 증거로서 영남과 서울을 잇는 고속도로가 뚫리고 거대한 공장이 마을 근처에 들어서 연기를 뿜으며, 직접적으로는 초가지붕이 헐리고 가옥이 개량되는 것을 실제 경험하면서 더욱 깊어지고 굳어지는 것이었다. 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가장하는 관의 면밀한 주도로 새마을 운동이 각지에서 일어나며 새벽의 마을 확성기를 통한 노래 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하여 사회가 활기를 띠어 보이는데다, 긴긴 농한기에 펑펑 놀았을 젊은이들이 공장에 취직하여 일함으로써 가계 소득을 높이고 집안에 라디오 텔레비전 냉장고를 들여놓게 되는 등, 가히 눈이 휘둥그레질 의식주의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유형적 생활 패턴의 변화가 박정희시대의 60년대 후반 이후부터 70년대를 관통하여 꾸준히 지속되어왔다.

 

영남민은 그러나 이러한 표피적 생활수준 향상이, (앞에서 짚어본 바) 그것이 일본에의 항구적인 경제적 종속을 전제한 유상 차관 도입과 그것을 둘러싼 정·경의 검은 커넥션, 권력층의 부정부패, 노동자 임금 착취 그리고 산업 인구의 80% 이상이 종사하는 농업 전체를 제물로 삼는 정책이었으며, 특히 (산업도로로서 경부선을 건설하고 그 곳으로부터 비켜간 지역인) 호남을 푸대접함으로써 그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경제적 투자와 수혜를 영남에 독점적으로 쏟아 부은 결과였음을 짐짓 모른 체하였던 것이다. , 영남민 자신의 윤택해지는 생활의 변화가 사실은 타 지역의 희생에 힘입은 과실이었음을 무시하고 있었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걸쳐 청장년 시절을 보냈던-당시에 사회의 중추 노동력 제공자 층이었던-영남민들은 (2003년 현재, 50대 중반~60대 중반) 해방을 전후한 '40년대에 출생하여 한국 전쟁의 고통과 전후 폐허가 된 국토 위에서 보릿고개를 넘기며 소년 시절의 극심한 가난을 체험해 본 세대로서, 이들에게 있어 박정희시대에 처음 맛본 이러한 생활수준의 향상은 한 영웅의 구국적 리더십의 결과이자 종교적 축복으로 받아 들여졌다. 종속적일 망정 수치로 나타나는 경제 발전이라는 빛의 이면에, 불평등과 소외의 암울한 그림자가 길게 누워있을 것이란 것을 그들이 잘 알았다 한 들, 자신들이 난생 처음 움켜쥐어 본 물질적 축복은 결코 누구에게 양보할 일이 아닌 것이다. 넉넉한 시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 일수록 더욱 그것이 언제 누구에게 다시 빼앗기고 말지도 모르는 한시적 기회라 여겨져, 이참에야말로 아예 한층 알뜰한 대목을 노리려고 할 일이다.

 

 

. 영남패권주의 형성 : 성장과 강화

 

1. 경제적 수혜와 우상숭배

 

그러나 이들이 경제 발전을 이끄는 정부를 신뢰하고 지지하며 국가 시책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경제적> 몫을 챙기겠다는 의식과, 박정희를 점차 <우상숭배화>하고 있는 사실 간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잇는 고리는 바로 <사회적 신분상승>이라는 동기이다. 독재자로 낙인찍히고 있는 박정희를 열렬히 숭배하는 이유는 단지 박정희가 통치하는 조건에서만 최대의 경제적 수혜를 누릴 수 있다라는 계산속에서가 아니다. 그 경제적 추구라는 동기만으로는 전 사회에서 빗발치는 비난을 다 감당하고 이윤까지 남기기엔 손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까지 절대 지지를 해왔던 정치 지도자가 독재자임을 확인했다고 해서 냉정하게 돌아서려니 편애를 받아 누리고 있는 혜택을 놓아버리기가 아까울 수밖에 없다. 버리자니 아깝고 부정한 사람과 애정행각을 지속하려니 그것은 남한테서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라 영 불편한 것이다. 그러니 그를 아예 우상화를 시켜 그의 부도덕성을 완전히 가려버리겠다고 나서게 되는 방법이 남았다. 우상화 작업에 돌입하기를 작정하고서부터는 이제 자체적 메커니즘에 몸을 맡겨버리기만 하면 된다. 이후로는 박정희에 대해 어디로부턴가 스며나오는 의구심은 모두 무시된다. 부정적인 요소는 제거됐다. 다음에 마주치는 단계는 우상화된 박정희와의 자기동일화(identification)이다. 이미 구국의 선지자와 같은 인물로서 우상화를 시켰으니 그를 나의 역할모델(role model)로 삼아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 모델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그를 자신의 미래의 모습쯤으로 매번 그려보며 닮아가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은 이제 그 모델의 원초적 부도덕성에 대한 의문을 완전히 지운 채 온전히 평화로운 애정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이것의 결과는 스스로가 평가하는, (먼저 심리적으로) 신분 상승된 자신의 모습이다. 만약 이 과정 어디에서 회의(懷疑)가 시작된다면 그것은 각 절차 (박 정권의 태생적 비도덕성, 독재자가 된 인물 지지, 독재자 우상화, 심리적 신분 상승 경험)에서 행한 자신의 부도덕을 스스로 폭로하는 자기 파멸적 행위가 되고 말 것이므로 함부로 긁어 부스럼을 낼 일이 아니다. 그 회의란 애초부터 터부였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박정희정권 자체가 영남인을 대상으로 정치적 공작을 한 혐의가 물론 짙다. 그러나 각 과정은 어디까지나 영남민 개개인과 소집단 각각이 개별적이면서도 자발적으로 그러한 절차를 밟았다고 말해야지 옳다.

 

2. 신분 상승의 욕구

 

위에서 말한 심리적 신분 상승이란 자존심과 자부심(self-esteem)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심리는 자신 안에 내재한 능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책정한 한 역할모델과의 동일화라는 비본질적인(external) 요인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 신분 상승에서 이행할 다음 단계는 실질적인 사회적 신분 상승이다. 심리적이란 어디까지나 인간 개인이 갖는 개별적 현상이므로 그것을 <집단적인 현상>으로 만들어 그 사실을 서로 공히 나누면서 확인하고픈 욕구인 것이다. 그런데 이 집단적 신분 상승이란 당연히,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이 아닌 이질 집단을 필요로 한다. <외부 집단>과 자신의 집단을 비교하여 우위가 판명될 시엔 자기 안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입증 받은 것으로 간주하여 본질적인(internal and essential) 자부심의 제고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3. 희생양의 필요성

 

이러한 영남인의 신분 상승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체성 재형성 과정에 결정적인 악역을 떠맡길 집단이 필요한데 그것이 호남지역민이었다. 호남이 유독 영남인에게 적대적 관계를 형성해 왔거나 미래의 라이벌로서 미리 손봐야 할 골칫거리로 인식되는 차원이었다면, 영남은 이미 자신의 지위와는 현격한 거리를 벌리며 약체화의 길로 들어선 호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연민까지 가졌을지언정, 비틀거리는 놈을 냅다 걷어 찰 이유까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관계만으로는, 박정희정권이 아무리 관과 언론의 여론조작으로 호남사람들이 정부를 무조건 반대하는 못된 짓을 하는 것처럼 선전할지라도, 정치에 무관심하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어두운 시골 노인, 아낙네까지를 포함한 전 영남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호남민 전체를 그렇게 멸시하고 내리깎는 집단적 마타도어 행위에 동참해온 사실을 설명할 수는 없다. '71년 유신으로 영구집권 체제가 확립됨으로써 민중의 신성한 투표권 행사가 갖는 의미 자체를 말살당한 환경에서, 박정희정권에게 호남은 이미 아무 위협거리가 되지 못하였으며, 하물며 영남인들 민초가 호남인 민초를 그렇게 이지메(편집자주: izime :집단괴롭힘)하여 박정희정권을 정치적으로 도울 일 또한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영남이 호남을 잡은 동기에는, 이렇듯 자신의 사회적 신분 상승을 정당화시켜줄 희생 제물이 필요하다는, 집단 간의 권력 구도와 그 다툼의 메커니즘이 기저에 놓여있다. 박정희가,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선 김대중을 정부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와 질서에 도전하고 위협을 가하는 '빨갱이' 사상을 가진 자로 몰아 핍박함으로써 자신의 좌익 경력의 정체를 가리고, 다시 그 희생양을 제물로 정권 안보를 더욱 견고히 쌓는 동안, 영남민들은 호남민들을 국가적 역사 창조에 늘 훼방놓는 반동 집단이거나 온통 빨갱이 사상에 물든 불온 집단으로 매도함으로써 그들을 사회의 최변방으로 끌어내렸다. 대신 자신은 국가 시책에 협력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의로운 민중으로 분칠하고 그로써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사회의 주류 시민으로서의 신분 상승을 입증받고, 계속하여 그 기득권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과시하였다. 박정희가 범죄자적 수법으로 덧씌웠던 소위 빨갱이의 흔적이 김대중에게 있다고 한번 가정하더라도, 박정희를 지지하는 영남민 개인 개인이 김대중을 미워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이 아예 집단적 광기를 띠고 김대중이 아닌 호남민 전체를 빨갱이로 몰고 말았던 데에는 이러한 영남민 집단의 실질적 이해 타산과 그 추구라는 의지가 작동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박정희는 영남인들의 이러한 신분상승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매카시즘의 회오리를 일으켜줌으로써 그들의 '안티빨갱이' 광분이 의로운 행위로서 인증되도록, 그리하여 사회의 주류로서 명분을 얻고 행세가 가능하도록 내내 지원하였다.

 

4. 영남패권주의 형성과 영남민의 자발적 동참

 

여기에서 박정희가 영남대중을 이용해 먹은 점도 부인키 어렵겠지만, 영남대중의 호남민에 대한 집단 이지메 행위 또한 박정희의 빨갱이 사냥이라는 공포정치를 가능케 하는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동력으로 역할하였으며, 그럼으로써 영남민들은 다시 자신들의 기득권을 박 정권으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박 정권과 영남대중은 서로의 필요에 의한 찰떡궁합의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영남민이 (흔히 지역감정이니, 지역주의니 하며 그 책임이 호남민과 영남민 둘 모두에게 돌려져야 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그 책임의 주소란 과거의 독재 권력과 현재의 극소수 특권층들만의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을 하는 사람의 주장과는 달리) 이러한 대호남 모략과 중상의 집단 광기에 동참함으로써 영남민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영남에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실질적인 경제 특혜와, 영남인의 인사 우대와 요직 중용이라는 간접적인 대리 성취감, 그리고 사회의 집단적 패자로서 호남은 물론 여타 모든 지역민에 대해 누리는 우월한 사회적 지위라는 직접적 성취감이었다. 이러한 프리미엄이 실생활에서 실현되고 있다면 그것은 각 개인으로서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인 것이다. 이 집단적 행위는 이미 개인의 것이 아니고 영남인 전체의 norm(규범)이 되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호남인을 이지메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지극히 비인간적 만행인지에 대한 숙고와 판단의 능력이 각 개인으로서는 거의 마비되어 간다.

 

5. 호남민들의 의식 수준

 

그럼 영남민들이 그러한 광기에 휩쓸리는 동안 호남민은 어떻게 대응했던가. 호남민은 왜 자신들이 그러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알 리 없었다. 왜냐하면 영남민으로부터만 그런 대접을 받았다면 그들에게 나서 직접 따지거나 대항하여 투쟁했을 테지만, 집단 가학은 영남만이 아닌 비호남 전 지역으로부터 날아왔기 때문이다. , <영남의 규범>은 그들이 사회적 패권의 자리에 올라서면서부터 어느새 <대한민국 전 사회의 '규범'>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전 사회의 문화가 되어 이제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비호영남(非湖嶺南)은 중립적 위치의 공정한 심판관이나 그저 무심한 구경꾼이 아니라 영남패권주의 (아직 영남패권이데올로기라고 칭하기엔 충분치 않다)에 편입되어 대호남 멸시와 이지메에 동참함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떠받치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렇게 전 사회의 정서(sentiment)가 호남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분위기에서 호남민들은 자신들이 정말 역적질이라도 한 일이 있는지 스스로의 행위를 자꾸 반추해볼 수밖에 없는데 그들이 발견해 낸 이유는 겨우 김대중을 지지한다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김대중이 독재자에 대항해 투쟁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가 빨갱이일 리도 없고 더구나 한 의로운 정치인을 존경한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이 자연히 빨갱이가 되고 말 수는 없음을 잘 아는지라 사회의 멸시와 가학을 거부해 보지만 결국 이르는 결론은 자신에겐 힘이 없다라는 자조였다. 수시로 대남간첩단 사건을 조작, 무고한 사람을 체포 구금하고 무지막지한 고문을 서슴지 않는 광기로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으며, 북한이 아닌 '북한괴뢰'와 관련한 일이 털끝만큼이라도 발각되면 친외가 8촌까지 샅샅이 뒤져 불이익을 가하는 이 살벌한 독재 시대에, 숫제 빨갱이라는 딱지를 한 지역에 붙여준다는 것은 그저 자존심을 상해주는 것 정도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 자체를 난도질하는 용서받지 못 할 범죄행각이었음이다.

 

그러나 호남민들은, 자신들의 뺏긴 몫이 영남민들이 향유하는 상대적 풍요에 돌려져 있다라는 사실, 영남인들의 자신들에 대한 이지메에는 동기와 목적과 의지가 엄연히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다 인식할 줄 모르고 그저 자신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슬픔의 감정 안에서 모두를 감당해내고 있었다. 이처럼 호남민들의 사회문화학적 인식의 수준은, 자신들이 소외에 처하고 있는 원인의 규명이나 자신들의 권리 주장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이해에 다다르기엔 부족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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