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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발전: 변혁운동과 지역주의

 

 

비평] (유석춘의 연구 내용을 밑줄긋고 겹따옴표로 인용함)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가 사회·문화적 현상을 평가할 때 일관성을 잃거나 편견을 개입시켜 도출한 연구성과는 보편성을 잃어 지식을 확장하는 학문적 자료로서의 가치를 잃을 것이다. 이하 오염물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시간을 할애해서 간략하게 비평한다.

 

먼저, 참전통계를 추출하면서 합리적 근거 없이 가점을 달리한 점이다. 예를 들면, 전쟁 당시의 소속에 따라 정규 국군(3), 경찰(2), 학도병-반공유격대-자위대(1), 의용군(-1), 공산유격대(-2), 인민군(-3)점의 점수를 부과하여 가중치를 두었···”는데 인적자원을 차별하여 다뤘을 뿐 아니라 역할에 대한 가중치가 매우 가혹하여 불합리하다. 예를 들어, 각 항목당 인원을 한명이라 가정했을 때 가중 통계치는 0이다. 현실적으로 참전인원이 있는데도 통계상 0이라는 의미는 객관적이어야 할 학문이 사실을 변질시키는 주관적 주장에 불과하게 돼 버리는 것이다. 통계의 가치란 실증적이며 객관적을 견지해야 하는데, 자료가 왜곡되여 그 본질을 비틀게 된다면 이미 학문이랄 수 없다.

 

둘째, 일관성을 결한 내용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노사갈등이 보편적 현상이고, 지역갈등이 특수한 현상이라 규정한다. 갈등이란 이해관계가 대립될 때 나타되는 심리적 반응이다. 그러므로 두 개념 공히 심리적 반응을 촉발하는 사실이 존재할 때 갈등이 종속적으로 유발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갈등 현상이 나타나는 물리적인 공간 즉 국지성으로 보더라도 심리 주체의 갈등을 전제하는 물리적 공간(지역)이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띤 현상이다.

 

셋째, 사회문화적 현상을 극단적인 결정론이나 주의주의적으로 재단하게 되면 편파성을 띠게 된다. 이촌향도나 호남 정서를 논할 때 결정론적으로 얘기하지만, 지역주의 극복을 얘기할 때는 의지를 거론하며, 호남출신의 기질이나 정서 혹은 학생운동 구속자 수를 논할 때는 결정론적으로 얘기한다.

그러나, 결정론으로 보는 극단적 입장이라면 논자 유석춘에게 포착된 지역주의적 소여 또한 환경에 종속되는 불완전성을 수반할 것이며, 주의주의적인 극단적 입장으로 보더라도 불완전한 유석춘의 인식틀이라는 한계적 소여(이는 학자로서의 한계성을 내장)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넷째, 유석춘이 추출한 영남 우세적 참전비율이라는 통계적 학문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가정하더라도 통계를 해석하는 유석춘의 잣대가 전근대적이다. 공과를 구별하여 다룰지라도 그것을 지역민 일반에게 적용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없고,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사회문화적 환경으로 인한 전근대적 신분 유사의 세습적 사회구조로 고착된 영남패권주의 구조가 가소성이라는 인간의 특성마저 제약하는 불공정한 영남패권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은 전근대적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가 학문을 가장하여 보편적 이성인 평등에 반하는 것을 찬양한다면 나찌에 협조한 자들과 같이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또 유석춘의 일종의 결정론적 입장을 관철하게 되면 집단적 지역민에게 자유의지를 기초로 한 책임 추궁을 할 수 없다. 환경에 의해 규정당한 지역민을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척점인 자유의지를 전제하는 주의주의적 안목에서 참전 공적을 평가하더라도 전후 세대에게까지 (결과적으로) 가혹한 책임을 묻게 돼 불합리한 야만성을 보이게 된다. 때문에, 참전 공훈을 기초로 하는 지역차별은 어떤 근거를 기초하든 정당할 수 없는 것이다.

 

다섯째, 중요한 인과적 분석이 누락되었다. 경부가도로 이어진 낙동강이 주전선이었다는 시대상황을 배제하고 한국동란 전쟁상황을 고찰하는 것은 편파성을 띨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있는 통계자료를 삭제하게 되면, ·호남 지역주의 대립의 인과성에서 가해적 영남패권주의의 선행성, 저항적 호남지역주의의 고립 불사의 불가피한 응답성(후행성)을 차폐하려 한다는 혐의, 즉 영남패권주의의 가해성을 가려서 반사회적이고 전근대적인 영남패권주의에 면죄부를 주려한다는 점이다.

 

여섯째, 국가적 차원에서 공정한 경쟁으로 유능한 정권을 창출하는 것이 권장되어야 함에도 호남발 정권창출에 대한 합리적 근거없이 부정적 주장을 내세운다. 논자의 학자로서의 식견이나 순수성을 의심하는 내용이다.

 

일곱째, 진보적 사회변혁과 지역감정을 연계시킨 유석춘의 안목이라면 진보적 인간과 어울리지 않는 양호한 사회적 환경의 영남에서 진보적 인사의 출현이 없는 게 당연시 되지만 현실로 영남출신 진보적 인간이 존재한다는 점은 주장의 타당성을 잃는다.

 

아홉째, 연구 맥락상 사회·문화·경제적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사회·문화적 차별이야 차치하더라도, 반세기에 걸친 경제적 차별로 인한 누적된 불이익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점이다. 경제활동 기간으로서의 반세기는 자연인으로서 2명의 생애에 해당하는 짧지 않은 세월이다. 2명의 생애 동안 변방인의 희생위에서 영남은 영달을 취한 것인데, 이것을 기정사실로 추인한다면 그 사회는 부정의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자기 보존이라는 간의 본성 상 일시적 희생을 감수한다손 치더라도 2명의 생애 동안 그것을 용납하거나 동의하는 인간이 있다면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증적으로 변방인이 영남 퍼주기식 동의를 한 바도 물론 없다.

 

유석춘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참된 민주화를 통해 억압이 드러나고 책임과 양심이 회복되고 정의를 알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 학문·사회적 역할과 언론매체의 역할해야 한다.

 

즉 관점을 바꿔 말하면 유석춘류의 사이비 학자가 학계에서 영남패권주의 작동에 기여하므로 한국사회가 영남패권주의라는 질곡에 갇혀 고통받고 있다 할 수 있다.

 

 

책소개--

유석춘 - "한국의 사회발전: 변혁운동과 지역주의"

한국의 사회발전: 변혁운동과 지역주의 (유석춘)

출판사 : 전통과 현대, 2002

 

[차례]

 

1: 발전이론과 한국의 발전

1. 3세계 발전이론과 한국 | 유석춘

2. 식민지배의 다양성과 탈식민지의 전개 : 한국을 중심으로 | 유석춘

3. 한국의 개혁정치와 사회발전 | 유석춘

 

2: 한국전쟁과 지역주의

4. 한국전쟁과 남한사회의 구조화 | 유석춘·이우영·장덕진

5. 지역감정의 사회심리학 | 유석춘·김진혁

6. 유동표에 대한 판별분석: 87년 대통령선거 | 유석춘·서원석

 

3: 지역주의와 변혁운동

7. 한국 학생운동의 구조와 기능 | 유석춘·박병영

8. 대학생의 이념적 지향과 정치적 선택: 1987년 대통령 선거 | 유석춘

9. 한국사회 변혁운동의 두 가지 기반: 계급의식과 지역차별의식 | 유석춘·심재범

 

[저자소개]

유석춘

1955년 생으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일리노이(Urbana, Iilinois)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부터 현재까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인문학술 계간지 전통과 현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막스베버와 동양사회, 발전과 저발전의 비교사회학,동남아시아의 사회계층이 있고, 논문으로 유교자본주의의 가능성과 한계,동아시아의 연고주의와 세계화등이 있다. 최근에는 '유교 자본주의''연고주의'를 주제로 한국사회의 구성원리를 설명하는 이론 및 경험적 작업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19913146

 

한국 사회의 발전과 지역 갈등의 극복

 

김진혁 / 유석춘

 

김진혁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 유석춘 (연세대학교 교수.사회학)

 

서론

해방 후 한국 사회는 수많은 갈등과 대립을 겪어 왔다. 그중 일부는 해결되거나 소멸되어 버리기도 했고, 다른 일부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 구성원들과 사회 전체에 고통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갈등 중에서 1980년대를 통해 가장 커다랗게 부각되었고 90년대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핵심적 갈등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노사 갈등과 지역 갈등이다. 그런데 노사 갈등이 산업화 과정의 심화에 동반하여 나타나는 보편적인 갈등 현상이라면지역 갈등은 한국 사회 내부에 독특한 역사와 형성 원인을 가지고 나타나는 특수한 형태의 갈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역 갈등의 문제는 198788년의 양대 선거에서 극심한 지역성이 나타난 것을 계기로 크게 부각되었고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지역 갈등의 원인과 양상 및 해 소 방안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다(한국사회학회1990; 한국심리학회, 1989).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오면서도 지역 갈등의 문제는 완화되거나 해결의 기미를 보여 주기는커녕 오히려 앞으로의 크고 작은 선거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요인은 지역이라고 누구나 말할 만큼 뿌리 깊은 한국병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90년대에 대내적으로는 지방 자치를 실시하고 대외적으로는 남북 통일을 성취하여야 하는 한국 사회의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로 부각되고 있는 문제가 바로 지역 갈등의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이와 같은 지역 갈등의 내용이 무엇인지 우선 구체적인 갈등의 양상과 함께 그 원인과 영향을 파악한 후 극복 방향을 모색해 보도록 한다.

 

지역갈등의 양상과원인

 

지역 갈등은 영호남간의 대립과 반목이라고 상식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들은 지역 갈등이 영호남 간의 반목뿐만 아니라 전국 사람들의 호남인에 대한 거부감을 포함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김진국1989).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지역 갈등을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반감과 전국 사람들의 호남인에 대한 반감으로 구분하여 그 양상 및 원인을 살펴보도록 한다.

 

1.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지역 감정

 

호남인은 왜 영남인을 싫어하는가? 호남인들은 공통적으로 차별과 피해를 받았다는 감정을 강하게 느끼고 있고 그 가해자가 영남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남인의 피해 의식은 해방 이후 우리 역사에 전개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들에 근거하여 비롯되고 있다. 그중 첫째로 꼽히는 것은 호남지역이 1960년 이래 추진된 경제.개발과정에서 소외된 지역이었다는 사실이다. 두번째로 지적되는 것은 5·16 이후 권력과 돈을 차지하고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와 재계의 엘리트의 대부분이 영남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피해 의식 혹은 적대감의 근거로 설정되는 위의 두 가지 문제는 조금 더 따져 보면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번째 문제인 개발과정에서의 소외의 문제는 충청이나 강원 지역도 해당되는데 왜 유독 호남인들만이 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느끼게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문제인 지배 엘리트의 충원 문제 또한 영남이 다른 지역에 비해 과대 진출한 것은 사실이나 이를 유독 호남에 대한 차별이 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아다. 그러므로 지역 갈등 문제의 핵심은 왜 '영남에 대한 특권'이 발생하였는가로 설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호남에 대한 차별을 부각시키는 논리의 비약 아래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영남에 대한 특권이 발생하게 된 까닭은 여러 가지 입장에서 접근이 가능하나 (예를 들면 산업 입지 조건) 여기에서의 논의와 관련해서 특별히 지적하고 싶은 측면은 한국 전쟁이 남한 사회의 구조화에 미친 영향이다. 최근의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 전쟁 당시 남쪽의 편에서 참전한 비율은 지역적으로 영남이 가장 높고 호남이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유석춘.이우영.장덕진10). 그런데 한국 전쟁 이후 구축된 남한의 사회 구조는 전쟁에 참여한 집단을 선택적으로 보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영남 출신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참전 세력이 중심이 된 지배 구조가 전쟁 이후 40여 년 간 지속되면서 영남의 특권적 위치는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전쟁 후에 구축된 남한사회의 정치적 권력 구조사회적 계층 구조경제적 분배 구조는 모두 영남의 특권을 담보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영남의 특권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의 정도가 호남인의 경우에서만 높게 나타나고 나아가서 적대감으로까지 전환되고 있는가? 이 문제의 설명에 빠질 수 없는 사건이 바로 광주 민주화 운동이다(김진혁, 1989). 광주 사건으로 상징되는 민주화 운동 과정은 기존의 지배 질서 즉 영남 중심의 참전 세력에 의한 사회의 구조화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6070년대를 통해 꾸준히 전개된 밑으로부터의 도전은 기득권을 가진 집단에게 일정한 위협을 느끼도록 한 나머지 종국에는 광주 사태라는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다. 물론이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호남인이었고, 그 사회적 결과는 영남의 특권을 보장하는 지배 질서의 정당성에 돌이킬 수 없는 도덕적 홈집을 가져온 것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호남인들은 그들의 상대적 소외 의식을 곧바로 영남 사람에 대한 적대감으로 전환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광주사태와 같은 특수한 경험을 겪지 않은 충청이나 강원 지역 출신은 영남인에 대한 적대감이 호남인만큼 강하지 않은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또한 광주 사건이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적대감의 형성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은 1980년 이전에 지역 감정을 연구한 문헌들에 의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1977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호남인들은 자기 자신들 이외에 제일 좋아하는 지역민으로 영남인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김진국1977 ·29). 그러므로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적대감은 사회 구조적으로 영남인의 특권적 위치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러한 지배 질서에 도전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운동 특히 광주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호남인이 됨으로써 발생하게 된 복합적인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2. 전국 사람들의 호남인에 대한 지역 감정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지역 감정에 비해 전국인들의 호남인에 대한 지역 감정은 상대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보다 심리적으로 보여진다. 먼저 전국 사람들이 호남인에 대해 느끼는 구체적인 거부감의 내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호남인은 믿을수 없는 사람이라는 '불신'의 감정이 가장 두드러진다(김 진혁198948). 이를 더 세분하면 '간사하다’ ‘타산적이다’ '이기적이다등의 형용사로도 표현된다(안신호, 1988이진환1988). 그렇다면 왜 호남인들은 이러한 내용의 편견을 받게 되었는가? 그 원인은 흔히 지적되듯이 고려 왕건의 훈요십조 혹은 삼국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만(민현구1990), 그 시대에 위정자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호남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현재처럼 확산되어 있음을 증명해 주는 사료는 없다(송복1990; 정경희, 1990).

 

 

오히려 호남인에 대한 편견은 제3공화국 이래의 정치 과정특히 선거 과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생성 및 확산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이상우1985). 1963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자기 지역 출신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성이라는 원초적 감정에 호소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박정희와 김대중이 경쟁한 19기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점차 상대방 후보의 출신 지역에 대한 원색적 비난으로 상승하였다. 이러한 과정이 심화되면서 유권자들은 자기 지역 출신 후보를 스스로와 동일시하면서 상징적 대표성을 부여하게 되었기 때문에, 마침내 1987년과 1988년의 양대 선거에서는 지역주의적인 선거의 결과가 극단적으로 표출되게 되었다(유석춘·서원석, I989; 차종천MSB). 그런데 이러한 선거에서의 승자는 늘 영남이었고 그 상대자는 호남이었기 때문에 집권 세력이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호남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지배 이데올로기의 하나로서 선거 과정을 통해 전국적으로 유포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

 

그러나 호남인에 대한 전국적인 편견이 발생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 입장도 있다. 이 견해는 인구 이동의 사회 경제적 기반을 중시한다. 즉 근대화에 따른 농민층 분해 과정에서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는 주로 사회 경제적 지위가 취약한 농민임을 주목하는 것이다. 호남 지역은 조선조에 조세가 집중적으로 부과됨과 동시에 대규모 지주제가 강력히 형성되어 농민층에 대한 고도의 착취가 자행되었고지역간 이동에 필요한 교통이 편리하여 중앙(서울)으로의 보다 많은 인구 이동이 가능하였다. 따라서 호남으로부터 대규모로 유입하여 온 가난한 농민들은 서울에 사는 기존의 사람들에게 호남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사회적 거부감을 야기시키게 되었다는 설명이다(송복1990:254-266). 이러한 논리는 60년대 이후의 산업화 과정에 수반한 도시화의 과정에도 똑같이 수용될 수 있다. 즉 영남지역은 부산이나 대구와 같은 거점 도시가 존재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농촌 탈출 및 서울 진입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서울 생활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고 사회적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데 반하여호남은 거점 도시의 상대적 부재로 인하여 아무런 준비 과정이 없이 농촌으로부터 서울로 직행하게 됨으로써 서울에서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열악하게 되어 호남 사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생성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김만홈, 1987). 이러한 주장은 서울 시민의 계층적 지위를 출신 지역에 따라 분류할 때 호남 출신이 가장 낮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뒷받침하고 있다(김진혁1990). 호남인에 대한 편견은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거부감에 비해 현실적으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적은 심리적인 속성의 편견이라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원인을 단정적으로 해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호남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의 발생 원인이 무엇이던간에 중요한 사실은 편견은 일단 형성되면 경험적 인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 및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한 심리학자는 "어떤 사람에 대한 심리적 범주가 완고하게 되면 그 범주의 속성들은 불변이며 그에 반대되는 증거는 거부된다고 말한다(Allport, 1980: 172), 그러므로 2차적인 인간 관계가 지배적인 현대의 도시 생활에서 불신'은 일반적인 현상일 수 있는데, 호남인에 대한 편견(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건간에 이미 존재한다면)의 내용이 불신이라면 똑같은 불신을 경험하더라도 호남인으로부터의 그것은 한층 더 강렬하게 수용되어 호남인의 당연한 속성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증폭될 수 있다. 다시 말해'불신이라는 부정적 느낌을 실제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남인으로부터의 불신을 경험한 경우 호남인은 "믿을 수 없다는 편견과 합치되어 이 편견이 유지 및 강화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편견은 편견을 가지게 된 사람 스스로 직접 그것을 경험하였다는 경험적 믿음으로 인하여 변화되기 어렵다.

 

따라서.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편견은 결코 영남인의 인성을 문제삼지 않고 구체적 가해자로서 영남인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현실적인 성격을 가지나호남인에 대한 전국적인 편견은 호남인의 인성을 문제삼는 심리학적인 것이며 상대적으로 해소가 어려운 성질의 것이라고 보여진다.

 

· 지역 갈등의 영향

 

여러 사람들이 피상적인 수준에서 지역 갈등의 부정적 결과(또는 영향)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는 바 그것은 분열주의를 조장하며 선거와 같은 합리적 선택이 요구되는 경우에 불합리한 연고주의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의 염려는 한마디로 지역 갈등은 "국민 화합에 걸림돌이 되고 국가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고흥화1989:7).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가 지역 갈등의 문제로부터 가장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 호남 사람을 중심으로 그들의 반응 양식을 살펴보고, 이러한 반응 양식이 한국 사회 전체의 수준에서는 어떠한 파급 효과를 가질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앞에서 지역 감정은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거부감과 전국 사람들의 호남인 에 대한 거부감으로 양분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이러한 지역간 거부감 의 중심은 물론 호남 지역이다. 호남은 전국적으로 편견을 받고 있고 또한 영남에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호남의 위치는 전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고립적이다. 이러한 호남의 고립을 보여 주는 하나의 지표로서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호남인을 결혼 상대로 선택하는데 대하여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의 비율은 전국적으로 35%에 이르는데 이 수치는 타 지역이 2%에서 5%의 거부율을 받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무척 높은 수치이다(김진혁1989:49). 또한 각 지역민간의 결혼 유형을 실제로 살펴보면 호남 출신이 서울 거주민들 중 에서 자기들끼리 결혼하는 비율이 가장 높고 타지역과 결혼하는 비율이 가장 낮다는 사실도 드러난다(김용학.김진혁1990).

 

 

이와 같은 전국적인 차별 혹은 사회적인 고립에 대한 호남인의 반응은 무엇인가? 호남인에게는 대략 세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첫째로호남인들은 '탈출성향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호남 출신 중 본적을 서울 혹은 타지역으로 옮기는 사람의 비율은 영남 출신의 그것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김혜숙1988). 본적을 아예 타지역으로 옮김으로써 호남인임으로 인해 받는 불이익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둘째로자기 집단에 대한 충성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선거에서 자기 집단 후보를 편파적으로 지지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호남 출신 후보의 당선이 호남인이 받는 차별과 소외의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이 반응 양식은 호남인들에게 불만 해결의 궁극적인 방안으로 선택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1971, 19871988년의 선거 결과에서 강하게 나타났으며다가올 지방 자치 제도에 의한 각급의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날 것으로 예견된다. 그러나 호남인들이 편파적 충성에 대응하여 다른 지역(경상충청 지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충성이라는 반응 양식의 문제점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

 

셋째로호남인들의 '저항이 나타난다. 차별감과 불만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현실의 모순에 대한 비판과 대안와 추구에 매우 적극적일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기존의 지배 질서에 의한 사회 구조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호남인의 저항은 당연한 결과이다. 호남인의 이러한 경향은 타지역민에 비해 진보적 사회 변혁 운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다는 사실로 뒷받침된다. 한 예로서 학생 운동 관련 구속자의 수를 지역별로 비교하면 호남 소재 대학생의 구속자인 수가 영남의 그것보다 절대 수치에서 25% 가량 많으며전체 학생의 인구비로 따져 보면 50% 이상이 된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김진혁9:7). 이런 추세가 학생 운동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 운동에서도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진보적인 변혁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출신지별로 분석해 볼 때 호남 출신이 압도적일 것이라는 짐작은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사회 변혁 운동의 기반이 되는 사회적 불만의 원인을 분석한 한 논문은 지역 차별 의식이 계급 의식에 못지않게 높은 잠재적 위험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유석춘·심재범1989).

 

이상과 같은 호남인의 세 가지 선택을 전체 한국 사회라는 틀에서 보면 우선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선거가 합리적인 선택보다는 지역성에 의해 판가름나는 역설을 가져다 주고 있고다른 한편 진보적 사회 변혁이라는 커다란 흐름의 사회 운동이 얼핏 보기엔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지역 감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내 주게 된다. 따라서 지역 갈등의 문제그중에서도 호남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라는 문제는 한국 사회에 있어 시한 폭탄과 같은 위험성을 가진 인화 물질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적극적인 대처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 이다.

 

W. 지역 갈등의 극복 문제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적대감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영남인의 특권적 위치와 광주 사태로 대표되는 호남인의 구체적인 피해가 결합하여 비롯된 것이므로 이 문제의 해결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구 조건아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그 하나는 영남인의 기득권이 양보될 수 있도록 사회적 구조를 열려진 것으로 하여야 한다. 이 제안은 물론 우격다짐으로 영남인이 차지하고 있는 사회 경제적 지위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주장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공정한 경쟁을 통하여 기회의 평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절차상의 민주주의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서만 특정 지역 출신의 사회 지배층 독점 현상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호남의 피해에 대한 보상이 신속하고도 충분히 이루어 져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특히 광주문제에 대한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경제적 보상이 매우 시급하다고 보여진다. 또한 광주 문제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호남의 경제적 낙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다행 히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세계적 탈냉전의 구도 아래 북방 정책이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으므로 중국 대륙과의 연계에 거점이 될 수 있도록 서해안을 집중적으로 개발한다면 지금까지 영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호남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호남 출신 정치 지도자의 정권 수용이라는 미묘한 문제가 남아 있는데이는 호남인에게는 당연한 열망인지도 모르지만 타지역인들에게는 호남인에 대한 거부감을 오히려 증대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호남인의 피해 의식은 해소되더라도 타지역인의 호남에 대한 감정은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호남인의 피해 의식을 해소하고 구체적인 피해를 보상해 주는 것은 시급한 일이고 필요한 일이나이는 항상 다른 지역과와 관련 속에서 행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지역 갈등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전국 사 람들의 호남인에 대한 적대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국 사람들의 호남인에 대한 적대감이란 문제는 앞서 살펴보았듯 이 심리적인 뿌리를 가진 편견이라는 이유 때문에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편견의 해소를 위해서는 아예 편견이 나타나는 범주의 구별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즉 사투리 사용을 금하고 행정 구역을 개편하여 전라· 경상 등의 구분을 아예 없애 버림으로써 편견의 대상이 되는 범주를 없애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비현실적인 해소책일 것 이다. 다만 편견이 해소될 수 있도록 교통 수단 및 통신 시설을 확충하여 빈번한 접촉을 유도함과 동시에 가정을 포함한 사회와 학교에서의 적극적인 교육을 통 하여 편견의 벽을 허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차선의 대안이 될 것이다. 물론 편견이 정말 편견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는 학문적사회적 활동과 언론 매체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이상의 모든 해소책은 나름대로의 장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참된 민주화를 통해 억압이 드러나고 책임과 양심이 회복되고 정의를 알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비과학적이고 동화 같은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세세한 해결책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이같은 참된 민주화이며 이는 우리 모두의 몫인 것이다.

 

참고문헌

*고흥화1989,자료로 엮은 한국인의 지역감정, 성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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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1977, "한국대학생의 지역적 편견연구’’,「전국대학생 학술연구발표논문집 사 회과학분야.

*김진혁, 1989"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지역감정 연구”,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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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숙, 1988지역간 고정관념과 편견의 실상:세대간 전이가 존재하는가?’’,「심리학에서 본 지역감정」,성원사.

*민현구, 1990, "지역갈등의 역사적 설명에 대한논평,「한국의 지역주의와 지역갈등, 성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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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호1988"집단 고정관념형성에 있어서의 감정과 지성의 효과”,심리학에서 본 지 역감정」,성원사.

*이상우, 1985, "비극의 유산:불신과 지역감정신동아10월호.

*이진환, 1988, "타지역인에 대한 인상 및 태도”,심리학에서 본 지역감정」,성원사.

*유석춘·심재범, 1990, "한국사회변혁운동의 두 가지 기반:계급 의식과 지역차별의 식’V한국의 지역주의와 지역갈등, 성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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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학회1990,「한국의 지역주의와 지역갈등」,성원사.

*한국심리학회, 1989,심리학에서 본 지역감정, 성원사.

*차종천, 1988, "지역주의적 선거와 유권자:13대 대통령선거 후보지지에 대한 로짓분 석”,한국사회학22집 겨울호.

* Allport, G.W., 1954'The Nature of prejudice' Cambridge: Addison?Wesly.

 

 

한국의 유권자는 지역주의에 의해 투표하나 (박상훈)

 

정치·행정

 

한국의 유권자는 지역주의에 의해 투표하나 : 16대 총선의 사례

 

박상훈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parsh0305@hanmail.net

 

<국문요약>

이 논문의 목적은 20004월 치러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기존의 설명모델과는 다른 관점에서 분석하는 데 있다. 기존의 설명모델, 선거결과 지역적으로 매우 분절화된 정당-유권자 연합이 나타난 것은 유권자가 지역주의적 선호와 동기에 의해 투표결정을 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왔다. 이러한 설명모델에서는 한국사회가 지역간 대립과 갈등, 이질성이 강한 사회 혹은 비합리적 지역감정과 편견이 지배하는 사회로 정의된다. 이에 대해 본 논문은 기존의 설명모델이 인과적 충분조건을 만족시키는 논리적 구조를 갖고 있지 못한 한계를 밝힘과 동시에, 16대 선거결과를 사례로 대안적 접근과 설명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의 지역문제는, 기존의 설명모델이 강조하는 지역간 대립과 갈등이 심한 사회적 문제 혹은 지역감정과 같이 비합리적 적대의식이 매우 강한 문화적 문제가 아니라, 이념적 대표체제의 협애성, 정당의 사회적 기반의 취약성, 국가권력을 둘러싼 양극화된 경쟁성 등 한국정치의 여러 구조적 특성들이 만들어내는 정치적 문제라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규범적인 측면에서는 한국의 지역문제 극복의 과제는 유권자 의식개혁이나 지역간 화해와 협력 혹은 지역연합의 차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당과 정당체제의 포괄성과 경쟁성을 제약하는 여러 제도적, 제도외적 요소들을 민주화하는 문제, 요컨대 정치적 대표체제의 민주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 정치학회보 게재논문

 

 

 

서평 : 학제적 한계(정치적 문제라고 주장), 안목의 한계(협애한 구조틀), 성찰의 한계(인과적, 다면적 성찰 결여) 등이 가득한 그릇된 주장

더민주당의 선전 = 선택지 탓인 반사이익

 

 

더민주당의 총선결과에 대한 위상은 한 마디로 반사이익이다.

 

더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닌 새누리당의 닭짓으로 인한 반사이익 +

 

신생정당 국민의당에 대한 선택지가 없어 울며겨자먹기식의 전략적 투표로 인한 반사이익일 뿐이다.

 

 

영남패권주의 이슈는 선거철에만 반짝 빛나는 1회용 종이컵이 아니다. 영남패권주의는 한국인 모두를 옥죄고 있는 일상의 굴레요 멍에이며 부정의의 흔적이다.

 

 

만약 영남패권주의 이슈가 공공에게 소비되어 일반화되면, 그리하여 한국사회의 질곡안 영남패권주의를 자각하게 되면 더민주당의 입지는 사상누각이 요, 풍전등화가 될 것이다.

 

 

자유를 위한 민주화와 경제민주화는 별개 몸뚱아리가 아니다. 그런데 더민주당의 운동권 애들은 그것이 딴 몸인양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다름아닌 지역주의 양비론이다.

 

 

우리가 다르냐! 우리의 정당한 몫을 교정하라는 호남 민심을 외면한 그들의 가증스럽고 천박한 민주화경력의 포장지가 이슈로 부각되면 치욕스럽게 정치생명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위선자들의 심판은 머지 않았다. 그 어떤 수단도 진실과 정의를 영원히 덮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데 혁혁하게 기여한 김종인을 영입한 문재인의 안목은 한마디로 천박하다. 경제민주화의 지향점 하나가 곧 과거의 불공정한 퍼주기식 불균형 경제정책의 교정이고 그것이 호남 민심이 아니겠는가!.

 

 

김종인의 사탕발림이나 문재인의 사죄방문이 응답받지 못한 까닭이 바로 그 것이다.

 

 

노빠들은 본질을 호도하며 견강부회하지 말고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노빠들은 더민주당을 진정한 국민의 당으로 추동할 정치적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빠들 역시 치욕스러운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영남패권주의 척결!

 

유일하게 그 선봉에 누가 서느냐가 관건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영남패권주의 척결은 시간문제일 뿐 반드시 사필귀정으로 귀결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친일부역배를 압도적으로 혐오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공간인 호남, 그리고 그 곳과 연고를 가진 호남인

이 둘이 결합되면 소위 호남 변방인이 된다.


한국에서 파행적 산업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60년대 이후 

규모의 경제로 인한 수출주도형 대미,대일 의존적 영남 퍼주기식 경부축 경제성장정책이 선택되어졌다.

   거기다 친일부역배 독재자 박정희의 꼼수로 인한 장기집권의 일환인 정략적 지역소외가 가세해


급기야 지역격차는 심화되고 고착되어 버렸다.


이리하여 영,호남간 대립은 일상화되었는데...  곧 망국적 지역주의라고들 한다.

'우리가 남이가,  기왕 얻은 거 그대로 지켜내야 한다'는 영남 지역주의와

'우리가 다르냐! 왜 정당한 몫을 되돌리지 않느냐?! '라는 호남 지역주의의 대립을


한국사회는 지역감정, 지역정서, 지역차별, 망국적 지역주의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영호남 대립을 단순한 감정이니 정서니  혹은 정치적 색깔로만 다루는 것은 엉터리 역사인식이다.


정치외, 경제, 사회, 문화, 언론, 지식과 얽힌 복합적 관계이며 일상적 이슈이다.


이러한 한국사회에서 변방인 호남인들은 평상시에도 불리한 사회간접자본들 때문에 반 세기 넘게 불이익을 강요당하며

호남 몫이 영남에 투입돼 파행적으로 고착된 탓에 희생을 강요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즉 호남에서의 삶, 호남인으로서의 태생 자체가 영남에서의 삶 보다 사회적 비용이 더 들고 불리하다는 것이다.


호남의 몰표는 이런 불공평함을 적극적으로 교정하라는 열망인데,  이 열망을 등지고 몰염치하게도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인간이 민주화가 뭔지 알 만한 노무현이 택한 노선이 지역주의 양비론이다.  운동권이 택한 노선이기도 하고 좌파들이 택한 노선이기도 하다.


지역주의 양비론은 호남 지역주의를 영남지역주의와 동급으로 다뤄 '지역주의는 나쁜 거잖아!  모두 닥치고 조용'이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결국 기득권을 가진 영남만 만족하는 지역주의 양비론은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영남편들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가?



'72년도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었는데 호남고속도로는 2001년도에 완공됐다고 하지만서두 그럼에도 고속도로 지선으로 경부고속도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왜소하고 초라하다.  거의 1세대 뒤쳐진 SOC의 수혜가 경제학상의 산업연관효과로 따지면 천문학적 차이로 귀결된다.


한일합방전후의 영호남의 총체적 생산력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면 현재는 거의 더블스코어로 격차가 생겼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남인이 호남인보다 부지런하고 머리좋고 수완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한다면 심각한 선민의식이나 유사인종주의적 편견에 불과하다.



따라서, 호남인으로서 문재인류나 노무현, 노빠들, 좌파에게 우호적이며 지지하는 입장이라면

일제강점기때 약자인 동포를 짓밟고 강자에게 빌붙은 친일부역배와 다를 바 없는 영남패권주의자를 지지하는 것과 다름 없다.


계급적 이해관계 때문에 좌파를 지지하는 것보다 지역적 소외가 훨씬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다.  계급적 이해야 개개인의 차원이지만 지역차별이라는 이해는 공간과 결합돼 임의로 끊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대의 계급적 이해는 지역적 이해보다 선명하지도 않다.


즉, 호남인이 노무현류의 지역주의양비론자를  지지한다는 것은 자기 몫을 찾기는커녕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르는 어리석은 행태라는 얘기이다.  역사의식이나 호남인이라는 자아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자이다.  

오늘 이 시각에도 호남인이라는 자기정체성을 잃고 노빠짓꺼리를 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그 닭짓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의 영남패권주의가 만연하고 지속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문재인의 글을 통해 몇 가지 의미있는 소득을 발견합니다.

 

영남패권주의(정희준이 부정한개념을 문재인의 입을 통해 유통시켰다는 점친노(정희준이 부정한 그 개념)가 존재한다는 점을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하,원문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 형태로 줄이며 밑줄그으며 인용하기로 한다.)

 

영남에서 지지 받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이었고참여정부였습니다그런데 정작 호남에서는 영남 패권주의라고 비난받는다면그야말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화 세력이 다시 굳건하게 손을 잡을 때만이세 번째 민주정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호남만으로도 안 되고이른바 '친노'만으로도 안 됩니다.

 

 

 

형용모순적 글쓰기

 

벌레 파먹고 상처입고 설익은 사과를 스케치북에 그려넣는다그 못난이 사과를 어떻게 서술하는 지 아래를 읽으며 그려 보도록 하죠.

 

···정치인으로서당의 전 대표로서또 그 이전에는 대선주자로서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 한 번도 제대로 승리의 기쁨을 돌려드리지 못했··· 호남에 고립감과 상실감만 안겨드렸··· 강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고정권교체의 희망도 드리지 못했··· 당의 분열을 막지 못했고후보 단일화도 이루지 못했··· 반드시 이겨야 할 국면에서 분열로 인한 패배를 걱정하게 만들었···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저와 당의 부족한 점을 메우느라 정신없었던···

 

위와 같이 실컷 못난이 사과를 그려놓고서는

 

이렇게 오해와 불신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라고 말합니다못난이 사과를 그려놓고 일거에 그것을 오해라고 부정합니다.

이러한 형용모순적 글쓰기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또 구경할 수 있습니다.

 

 

저의 모든 과오를 짊어지겠습니다그러나 한 가지제가 가져갈 수 없는 짐이 있습니다.

 

모든 과오를 짊어지겠다고 한 후 과오인 짐 한 가지를 빼겠다고 합니다그러므로 모든 과오를 짊어지겠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 됩니다거짓말을 한다는 자각조차 없는 부도덕의 극치입니다.


노무현이나 문재인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입니까다름아닌 우리가 남이가똘똘 뭉쳐 기득권을 지켜내자라는 영남패권주의와, ‘우리가 다르냐차별말고 시정하라!’는 호남지역주의를 모두 잡음으로 여기는 입장즉 지역주의 양비론입니다.

호남 변방 소외민들의 동의없는 영남 편중 개발을 방치하고 묵과하는 것은 곧 호남인에게 덧씌워진 멍에와 질곡을 방치하고 부당한 영남기득권이 유지되도록 결과하는 명백한 호남차별입니다그런데···

 

저에게 덧씌워진 '호남 홀대' '호남 차별'이라는 오해···그 말 만큼은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치욕이고 아픔입니다

 

라며 오해라고 말하는군요오해란 어떤 자료가 유통과정에서 그릇되게 소비된 상태입니다위에서 지적했다시피 호남차별은 오해가 아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문재인은 과거의 자기를 부정하는 행태를 반성하고 초월해야 하는데도 수치를 모르고 호남차별 한 적 없다고 거짓말하고 있습니다.

 

 

호남의 4.13 정치 지형의 대립구도를 문재인은 다음과 같이 파악하는군요.

 

호남인에게 지역 정당이란 불명예를 안기면서까지 그들만의 영달을 쫓는 세력

VS.

신성한 호남 땅···을 사수하는 새누리당과 맞서 정권교체 해낼 정당 더불어 민주당의 모든 호남 후보들

 

즉 위와 같은 대립구조에서 문재인이 선택한 후자문재인 안목으로는 신성하고 순결한 후보들을 정치의식 수준이 문제 있는 호남 사람들이,

순결하고 신성한 노무현이나 문재인류를 더럽게 분칠하는 거짓말에 휘둘리는 존재로서 오해나 모욕을 가한다는 투의 천박한 수준의 이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호남민심에 대한 대단한 모욕입니다과거의 모욕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덧붙이는군요.

 

 

결론적으로 노무현과 문재인은 ‘(은폐된 투항적영남패권주의자입니다거짓말쟁이라는 것지독히도 엉망인 한국어 구사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빠진 노빠들이 지지하는 문재인의 수준.... 딱 그 수준입니다.

 

 

 

-----------------이하 문재인의 오락가락 전문 ----------------

 

다음은 문 전 대표의 '광주시민들께 드리는 글전문이다.

광주시민 여러분뵙고 싶었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언제라도 이곳으로 달려오고 싶었는데말리시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정치인으로서당의 전 대표로서또 그 이전에는 대선주자로서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호남 분들의 전폭적 지지를 밑거름 삼았던 제가여러분에게 한 번도 제대로 승리의 기쁨을 돌려드리지 못했습니다.

호남에 고립감과 상실감만 안겨드렸습니다강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고정권교체의 희망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당의 분열을 막지 못했고후보 단일화도 이루지 못했습니다반드시 이겨야 할 국면에서 분열로 인한 패배를 걱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실망을 하셨는지잘 알고 있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못난 문재인이 왔습니다여러분에게 직접 야단을 맞고직접 질타를 듣기 위해서안 된다는 당을 설득해 이제야 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그리고 그간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여러분의 분이 풀릴 때까지제 얼굴 맞대고호되게 꾸짖어 주십시오.

저와 당의 부족한 점을 메우느라 정신없었던 사이호남 분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이렇게 오해와 불신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이제라도제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죄송합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그러나 이제제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우리 더불어 민주당은 과거의 혼란을 딛고 새롭고 유능한 인재들로 넘쳐 납니다저에 대한 섭섭함 때문에이 유능한 인재들의 면면을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제가 다 담지 못했던 호남 분들의 요구와 열망을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국회에 퍼 나를 인재들입니다.

차기차차기 이 나라를 이끌어가기에 충분한 인재들이 호남의 더불어 민주당 후보들 속에 있습니다정권을 탈환하고대권을 꿈꿀 만한 훌륭한 씨앗들이 뿌려졌습니다.

더불어 민주당은 이렇게 새로운 인재들로 다시 태어났습니다호남 기득권 정치인의 물갈이를 바라는 호남의 민심에 우리당은 호응했습니다.

이 분들에게 기회를 주십시오자신 있게 기대감을 가지고 힘을 주십시오더불어 민주당 기호 2번의 새롭고 활기찬 후보들이야 말로호남의 정신과 열정을 한 지역에 가두어 두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장시켜 갈 인재들입니다.

호남 정신의 지평을 전국으로 넓히면서 지역 경제문화에 새 바람을 이끌 주역들입니다그런 전문성과 인적 인프라를 충분히 갖춘 인재들입니다.

시민 여러분.

호남을 볼모로 자신의 기득권에만 안주했던 구시대적 정치호남 민심을 왜곡해서 호남을 변방에 가두어 두려는 분열적 정치인여러분들은 그런 정치인들에 대한 강한 교체 의지를 가지고 계실 겁니다더불어 민주당의 후보들을 통해 바로 그런 구시대적분열적 정치인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호남인에게 지역 정당이란 불명예를 안기면서까지 그들만의 영달을 쫓는 세력이 이 신성한 호남 땅에서 더 이상은 발붙이지 못하도록더불어 민주당의 모든 호남 후보들은 끝까지 싸워 나갈 것입니다시민 여러분이 그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광주시민 여러분.

 

저에 대한 여러분의 실망과 섭섭함에도 불구하고더불어 민주당에 대한 여러분의 애정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아무리 부족하고 서운한 점이 많아도그래도 새누리당과 맞서 정권교체 해낼 정당은 우리 더불어 민주당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애정에도 불구하고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저는 미련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습니다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습니다.

호남의 정신을 담지 못하는 야당 후보는이미 그 자격을 상실한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호남의 뜻이라면저는저에 대한 심판조차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호남 유권자 여러분.

저의 모든 과오를 짊어지겠습니다그러나 한 가지제가 가져갈 수 없는 짐이 있습니다.

저에게 덧씌워진 '호남 홀대' '호남 차별'이라는 오해는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그 말 만큼은제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치욕이고 아픔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모욕입니다저와 당과 호남의 분열을 바라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휘둘리지 말아주십시오그것만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엄혹했던 5공 군부독재 정권 시절부산의 민주화 운동은 '5월의 광주'를 부산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87년 6월항쟁 전야 5노무현과 제가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연 광주 비디오 관람회를 보려는 부산 시민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 열기는 6월항쟁으로 이어졌고부산 가톨릭센터는 명동성당처럼 부산 6월항쟁의 중심이 됐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민주화는호남과 호남 바깥 민주화 세력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3당 합당으로 호남이 고립됐을 때도그에 반대한 영남의 민주화 세력은 지역 내에서 전라도니 빨갱이니 핍박받고 고립되면서도 호남과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결합이 김대중 정부를 탄생시켰고노무현 정부를 탄생시켰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노무현과 제가 걸어온 길이었습니다영남에서 지지 받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이었고참여정부였습니다그런데 정작 호남에서는 영남 패권주의라고 비난받는다면그야말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참여정부가압도적인 지지로 출범시켜준 호남의 기대에 못 미친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대북송금 특검도 있었고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도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광주가 정치적인 고향'이라고 말할 정도로 호남을 사랑했어도호남사람처럼 호남의 정서를 알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호남이 듣기에 섭섭한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결단코 호남 홀대는 없었습니다오히려 역대 어느 정부보다 호남을 배려했다고 자부합니다.

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화 세력을 이간하여호남을 다시 고립화시키려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휘둘리지 말아주십시오호남과 호남 바깥의 민주화 세력이 다시 굳건하게 손을 잡을 때만이세 번째 민주정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호남만으로도 안 되고이른바 '친노'만으로도 안 됩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호남 바깥에서는 잘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이번 총선에서도 부산에서경남에서울산에서대구에서경북에서강원에서 더 늘어난 승리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호남이 손을 거둬들이지만 않는다면정권교체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광주시민전남북 도민들께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총선이 끝나면 곧바로 전당대회를 통해 더불어 민주당 지도부도 새롭게 선출됩니다물론 저는 앞으로 당권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더 이상 국회의원도 아닌 만큼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서 정권교체의 역량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광주시민 여러분저를 믿고 더불어 민주당에게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주십시오.

자주 오겠습니다총선이 끝나면더 여유로운 신분으로 자주 놀러 오겠습니다정치인 문재인이 아니라 미운 정 고운 정다 든 못난 아들놈처럼 맞아 주실 거라 믿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사랑합니다.

프레시안]문재인은 충장로에서 무릎을 꿇어라! 억울하더라도…

우선 글을 비평하기 전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제완은 영남패권주의자이다.

 

김제완의 그릇된 인식

 

김제완의 이념적 지향을 살펴보기 위해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료들을 인용하기로 한다.

(이하 김제완의 서술을 밑줄로 인용함)

진실의 언어는 그렇게 거칠지 않다김욱 교수의 문제 제기 방법이 너무나 공격적 도발적이기 때문이다노무현이 영남 패권주의자라는 말조차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나아가서 전두환의 영남 패권과 동일시하는 김욱 교수의 발언에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된다토론의 격렬함은 현실의 반영이다.

 

영남 패권 논란을 이제 중지하고··· 그리곤 영남 패권이 호남 민심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은 결과라면 나는 내부에서 찾아보겠다보수화모욕감,당파성이란 세 개의 키워드로 호남 민심을 규명해 보려 한다.

 지켜볼수록 피곤해지는’ 초점을 벗어난 소모적인 영남패권주의 논쟁을 중지시키고 호남민심을 규명

하는 것···일까?


마치 중립적 관점을 유지하는 듯 서술하는...김제완으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한 주된 동기는 무엇일까

 

김제완은 한국사회의 질곡에 대한 영남패권주의 담론을 평가절하하고 아울러 호남 민심을 한갓 감정적 차원으로 거론함으로써 호남 민심을 왜곡하려 한다.

 


김제완이 거론하는 세 가지 키워드(보수화모욕감당파성)와 관련된 문장들을 인용하며 들여다 보도록 하자.

 

1. 보수화 관련 서술

호남이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대통령을 원한다. '광주 정신'에 의해 억눌려왔던 호남인들 일부 보수 성향이 커밍아웃하는 것 아닐까.”

 

김제완의 진단인 보수화가 맞다면 더민주당에 대한 호남민심의 이탈이라는 변화의 선택은 급진적 선택이 된다이는 보수적 성향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선택이다.

 

2. 모욕감 관련 서술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 사람의 자존감을 다치게 했다이렇게 상처 주는 말들은 아주 오래 간다.

 

현재 호남민심은 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다김제완은 호남인들의 집단 의지를 감정적 배설로 호도한다그것이 진정 단순한 감정적 배설이나 반응이라면시간 경과에 따라 그 상흔이 희미해지거나 소멸했어야 한다가해 주체 노무현이 사라졌으므로 모욕감은 해소되거나 약화되어야 자연스럽다그러나과거와 달리 점점 불타오르는 반문재인 정서의 추동력의 배경을 단순한 감정적 반응인 모욕감이라 이해하는 안목은 절대 비현실적이다.

 

호남의 반문재인 정서는 다름아닌 대의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분노요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의 반민주적인 배신에 대한 극도의 혐오이며, ‘우리가 남이가의 영남패권주의와 우리가 다르냐의 호남지역주의를 모두 소음으로 여기는 지역주의 양비론에 대한 분노즉 반헌법적 작태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천명이라고 봐야 옳은 것이다.

 

3. ‘당파성’ 관련 서술

당파성이란 파당성과 다름없는 말로사회의 여러 복합적인 상황을 오직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태도이다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온 집단에서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된다노동 계급뿐 아니라 여성장애인도 이런 방법론적 편향을 사용해왔다김욱 교수의 영남 패권 주장이나 '호남 자민련여론도 호남 당파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잘 이해가 된다.

 

당파성을 키워드로 하는 식민사관즉 제국주의 사관이 연상되는 서술이다이조 시대의 무능한 지배계층의 이전투구식 당파싸움을 한민족의 민족성으로 대치시켜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려 했던 반민족적 역사학이 취하는 논리 그대로이다.

김제완의 인식여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호남인들의 지금까지의 정체성과는 너무 동떨어진 반민족적인 식민사관인 당파성을 호남 민심과 연계하여 이해하고 있다. ‘정당한 몫에 관한 얘기인 영남패권주의 논의를 중지하고 호남 민심을 한갓 진영논리에 매몰된 부당한 몫 챙기기라고 매도하는 김제완의 태도는 영락없이 약자를 등지고 강자에 빌붙은 친일부역배의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영남패권주의 부정적 경향의 한 단서

 

"옳고 그름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그런 정서(반문재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그렇게 하지 않으니 더 확대된다."

 

반문재인 정서에 대한 원인을 따져 단순한 감정적 배설인지 혹은 합리적인 의사 표명인지를 따져 묻지 않는 태도는 영남패권주의의 부정적 경향의 한 양상이다작금의 한국사회에서 공정함정의를 따지며 살라고 훈육하는 것은 곧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혀 살라고 가르치는 저주와 다름없다.  이것이 현실이다안타깝게도 영남패권주의가 작동하는 그 혐오스러운 세례를 김제완이 흠뻑 받았음에도 그것을 자각하지도 못한다.

 

이런 류의 맹목적 친노가 더민주당을 타락시키는 더러운 연료가 된다노무현과 그 추종자들의 정치적 타락은 비판적 지지를 견지하지 못하고 광신도가 돼버린 맹목적 노빠가 크게 기여한 것이다.

 

 

이렇게 편파적이며 굴절된 안목의 글이 프레시안에 실렸다는 것은영남패권주의에 대한 기왕의 프레시안의 시도가 진지함이 아닌 일회적 흥미본위의 소비적 태도였지 않나하는 우려가 기우일까?

김욱 서남대 교수

- "영남인들이 폭압적인 정치권력을 통해 호남인들을 차별·배제하는 전략으로 전국적 규모의 경제적 지배 관계를 확대 재생산하고 이러한 지역적 지배 관계에 대해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은밀하게 이데올로기적 동의를 얻어내는 극우 헤게모니“

 

 


활강 이경렬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영남출신이라는 요소 하나만으로 그들이 기득권을 쉽게 누릴 수 있도록 <불공정 경쟁 조건>을 짜놓은 체제이며, 또한 그 체제가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력조차 말살해버리는 새로운 가치체계까지를 생산해낸 <이데올로기>이다. 

  영남패권이데올로기는 그 사람의 영남출신 여부와 전혀 상관없이 아무 지역 출신이더라도, 그가 {예컨대 정치 권력층, 정부 관료, 행정부 고위층, 사법부 종사자(특히 변호사), 전체 공무원, 재벌, 대기업 임원, 기업가, (한)의사, 경제적 기득권층, 은행과 금융기관 임원, 정당인, 언론사(신문사, 방송사, 유수잡지사) 사주, 편집진, 기자군, 방송국 임원, 드라마피디, 시사교양연예피디, 작가(소설, 드라마, 교양물) 대중음악인, 고수입 연예인, 고전음악 영화 연극 공연 미술 등 단체의 리더그룹, 시민단체 리더그룹, 노동계 리더그룹, 기독교 신교와 구교 지도부, 신부, 목사, 각 종파 원로, 사학재단 이사진, 모든 대학교수군, 사회과학, 자연과학, 테크날러지 등의 연구직 종사자, 초중고교 임원과 보직교사 등} 현재 대한민국 사회 체제를 견고히 떠받들고 있는, 즉 서민과 기층민을 제외한 사람으로서 이 사회의 안정과 질서 유지에 실질적 리더 혹은 오피니언 리더로서 일반 서민보다 더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공히 인정받고 있다면, 그 사람들 개개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지위로 말미암아 이 영남이데올로기 체제 속에서 그만큼 덕을 봐왔던 자이며, 영남패권이데올로기란 체제가 대한민국에서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부지런히' 기여해온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 500년간 한반도를 지배했던 무능한 양반들의 흔적들···,

첫 단추를 잘못 꿴 이승만의 민족정기 훼손, 경제개발계획의 실행을 좌초시킨 친일부역배 박정희의 쿠데타, 이어진 정상배들과 경제학도들이 추동한 파행적 경제성장으로 빚어진 한국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그 과실을 탐하며 양극화를 조장·고착시키고 있는 영남패권주의,

 

헬조선 ···

 

가치전도의 일상화와, 자원 낭비로 귀결되는 극심한 기호적 소비’,

사회적 자본의 편재(偏在)로 인한 지역격차 및 폐쇄적 계층구조의 고착···

 

 

 

정상배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한국의 정치지형도 자본주의라는 제국의 일원으로서 영락없이 정치자영업자들이 득세하여 유권자의 선택의 폭이 좁아졌고 투표할 때만의 정치참여가 된 지 오래이다. 정치가들의 어깨는 수많은 유권자들의 기대, 즉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무거운 가치가 짐지워져 있는 틀림없는 공공재이다. 그러므로 정치판에서의 도덕적 흠결에 대한 관용은 사치이다.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고 고학력자가 넘치며, 대체재인 정치신인들이 넘치므로 더구나 그러하다.

 

정상배의 소비는 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과거의 우리(조상)가 저지른 잘못으로 오늘 우리가 질곡에서 허우적대고 오늘·여기의 잘못된 선택이 미래의 우리(후손)에게 당연히 파장을 미칠 것이므로 한 표 한 표는 그야말로 신성한 가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종인의 악어의 눈물

 

김종인류가 과거의 허물을 사죄한다며 5.18 묘역에서 무릎을 꿇었으나, 그 진정성이 관철되는 것일까?

 

정당하게 탈당절차를 밟고 신당을 창당하여 다른 길을 걷는 경쟁정당에게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모습, 이런 모습이 국제관계에서는 국가 자주권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양상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미화된 한국식 자본주의의 부정적 양상에 한 몫 거든 김종인의 반역사적 자취, ·를 넘나들며 양지만을 좇은 전력은 친일부역배들의 기회주의적인 처신과 대동소이하다.

 

 

 

범민주세력의 바이러스와의 연대는 불정의

 

의석수의 우열만 앞세워 연대를 강요하는 김종인류는 다수에 주눅들어 경쟁을 포기하고 투항하는 친일부역배의 사대주의, 패배주의와 다를 바 없으므로 새누리당으로 가든지, 폐당해야 한다. 또한 야권연대는 사실상 소수정당의 의미를 반영하기 위한 비례대표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며, 유권자의 선택을 임의로 배제하는 반민주적인 것이기도 하다.

 

, 야권연대의 후보자 옹립은 수의 다과가 기준이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남이가우리가 다르냐를 구별하지 못하는 지역주의 양비론에 매몰된 더민주당은 영남패권주의 정당의 입지를 결과적으로 강화할 뿐이며, 범민주세력의 도덕성까지 훼손하는 범민주진영의 바이러스적 존재라 아니할 수 없다.

 

 

 

김종인의 반역사적 자기부정

 

호남의 정체성은 호남이라는 물리적 공간과의 결합보다 정의로운 가치와 더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따라서 우리가 남이가의 지역주의와 우리가 다르냐의 지역주의 모두를 부정하는 지역주의 양비론자가 호남과의 지역적 연고를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자기부정이며, 기회주의적인 처신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부도덕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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